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가서 6장 강해설교문]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아 6:13)

체데크 2022. 8. 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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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6:13)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회상을 했습니다. 수넴 출신의 시골 처녀가 솔로몬 왕을 처음 보게 됨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 왕도 왕궁에 많은 왕비와 후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람미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처녀인 술람미 여인을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천박했던 인생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귀족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인생이 영원히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나에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술람미 여인을 보고 왕궁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술람미 여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보다 신분적으로도 떨어지고 외모로도 비교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니 예루살렘 딸들의 태도도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다가 예수 그리스도 신랑을 만나니 인정을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는 주님의 신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6: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왕비와 후궁들이 술람미 여자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술람미 여인을 보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대답으로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보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야(슐람미트 7759) 술람미 여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샬람 7999) 평안하다, 형통하다, 화친하다, 성취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자에게 자신들에게 돌아오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빨리 보고 싶다는 의도입니다. 그럼 술람미 여자의 무엇을 보고 빨리 자신들에게 오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 왕을 만나 평안한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골처녀의 삶은 고통으로 끝날 것인데 솔로몬을 만나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술람미 여인의 삶이 변화된 것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수넴 출신의 술람미 여인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나의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술람미 여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넴의 시골뜨기 처녀처럼 인생 자체가 앞길이 막막하고 어둠에 싸인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평안의 삶을 허락해 주셔서 형통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신랑을 통하여 신부인 내가 구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나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화친조약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술람미 여자와 같은 나에게 평안을 끼쳐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안과 형통을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마음에 근심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속죄의 평강입니다.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에게 평안을 주시는 목적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술람미 신부와 같은 내가 환난을 당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는 예수님의 신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해 모든 것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하자 2372 VQICXP) 우러러보다, 깨닫다, 이상으로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마음에 조급함이 생겼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빨리 자신들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솔로몬 신랑에 대하여 증거 했을 때에 신랑에 관하여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신랑이 술람미 신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술람미 신부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만 취급하고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더 신경을 쓰면서 우러러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술람미 여인이 잘나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을 통하여 술람미 신부가 높아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까요? 세상의 사람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선포했더니 세상의 사람들이 주의 신부인 나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신랑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으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닫고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주님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 신부인 내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신랑 되시는 예수님만 높이는 삶을 살면 됩니다.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메홀라 4246) , 율동, 무용,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발 56) 슬퍼하다, 애통하다, 근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의 딸들의 대답으로 마하나임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너희가 나를 보려고 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술람미 여인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마하나님은 어떤 곳입니까? 야곱과 연관이 있는 장소입니다.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나오고 나서 라반이 야곱을 쫓아왔습니다. 자신의 드라빔을 찾기 위하여 왔지만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과 라반이 서약을 맺게 됩니다. 경계를 두고 더 이상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헤어지고 라반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들을 보고 그곳 땅의 이름을 마하나임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마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의 형인 에서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마음이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에서가 자신의 군대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술람미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처럼 예루살렘의 딸들을 만나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외모적으로 보아도 더 낫고 학식과 지식 면으로도 더 뛰어납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딸들을 보려니 술람미 여인의 마음에서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이 현재 슬퍼하고 마음에 근심하면서 애통해하는 모습을 너희가 보려고 나를 오라고 하는 것이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도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에 두렵고 떨릴 수가 있습니다. 높은 권세 있는 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위축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두려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이런 사람들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애통해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나에게는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자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할 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눅12:11-12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더라도 무슨 말로 대답을 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할 말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가르쳐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세상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 신랑을 선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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