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5장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술람미 신부의 사랑이 식어지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에 대한 사랑이 식어진 적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할 일을 모두 하다가 나갔더니 신랑이 떠나고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주님이 왔는데도 내 할 일 다 하고 나중에 마중 나갔더니 주님은 떠나고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선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다른 것들이 우선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사랑이 식어짐”(아 5:6-9)
♣명제: 신랑이 신부를 찾아왔을 때에 신부는 신랑을 만나지 못했다.
♣목적: 그리스도의 신부가 신랑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신랑은 떠난다.
솔로몬 신랑이 술람미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머리에 이슬을 맞고 신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새벽이슬을 맞고 오직 신부를 만나기 위해 한 걸음으로 찾아와 문틈으로 손을 넣어 신부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신부는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었으며 잠잘 준비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신랑의 소리가 들리고 신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에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문제는 신부가 문을 열었을 때에 이미 신랑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까? 신랑이 왔음에도 안에서 준비한다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셨을 때에 꼼지락거리고 게으르게 자신의 일에 취해 있다가 정작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랑은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신부가 주님을 만날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이 시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5: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술람미 신부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지만 솔로몬 신랑은 벌써 가버리고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말할 때에 자신의 혼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신랑을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벌써 물러갔네’ חמק(하마크 2559) 떠나다, 배회하다, 방황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시간을 지체했더니 이미 신랑은 떠나고 없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만나기 위하여 기뻐서 그 밤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집안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 신랑은 밖에서 밤에 혼자 신부를 기다리면서 배회하고 방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신부가 문을 열었지만 신랑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신랑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문 밖에서 손을 내밀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나의 생각으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신랑 맞을 준비가 끝나면 열어주겠다면서 헛된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일주의에 빠져 신랑을 밖에 세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마친 후에 신랑을 맞이한다고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까? 이렇게 하면 신랑 되신 주님은 나를 떠나고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가 늦어도 되고 아직 준비가 미흡해도 상관없습니다. 신랑에게 초점을 맞추어 신랑이 나를 원할 때에 바로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신부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나으며 숫양의 기름보다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신부로서 신랑의 말에 불순종하니 결국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이 보자고 하면 바로 순종함으로 나가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내 일을 다 한 후에 만나겠다고 하면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내가 그를 찾아도’ בקש(바카쉬 1245) 간구하다, 살피다, 힘쓰다, 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신부가 솔로몬 왕을 맞이하기 위하여 문을 열었지만 이미 신랑은 사라지고 난 후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당황하여 신랑을 찾아보지만 신랑의 발자취는 없습니다. 열심히 간구하여 신랑을 불러보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신부는 힘들게 애타면서 신랑을 찾지만 어디에도 신랑을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신랑이 찾아왔을 때가 기회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기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기회가 언제입니까? 세상에서 물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기쁩니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도 물론 좋습니다. 질병에서 회복되어 건강하게 되는 기회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일 기쁘고 좋은 기회는 바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셔서 영혼의 구원을 얻는 기회가 인생에서 제일 좋은 기회입니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면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이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찾아왔음에도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의 일을 모두 마치고 아니면 사업이 정상화되면 내가 신랑을 만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때는 이미 신랑이 사라지고 난 후입니다. 술람미 여인처럼 신랑이 말할 때에 혼이 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솔로몬이 말할 때에 자신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신부인 나를 찾아오셨는데 나는 혼이 나가서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신랑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세상에서 망하고 나니 그때서 신랑의 소리가 생각나서 문을 열었더니 신랑은 문 밖에서 계속 서성이다가 밤새도록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신부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신부가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니 고달픈 것입니다. 신랑이 없는 분들은 빨리 영혼의 신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행복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5: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만나지 못하니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자신을 쳐서 상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자신의 겉옷을 벗겨 가졌다는 것입니다.
‘나를 쳐서’ נכה(나카 5221) 때리다, 공격을 받다, 찌르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후회하고 신랑을 찾기 위하여 성 안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성 안을 순찰하던 사람들이 술람미 신부를 보더니 마구 때리는 것입니다. 이유도 없이 때리고 공격하여 괴롭히고 있습니다. 신부는 영문도 모르고 죽도록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술람미 여인을 때리고 모욕하고 괴롭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공격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렇게 사탄의 공격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괴롭힘을 받게 되고 영육이 이들의 공격으로 찔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서도 괴로운 인생을 살아야 하고 교회에서도 괴로움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랑이 신부를 위해 대신 공격을 받아 죽어야 되는데 신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괴롭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신랑이 신부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찔려주시니 나는 성 안의 순찰하는 자들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에게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허물을 위해 찔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랑의 몸이 신부인 나의 몸에 박힐 고통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신부인 나는 신랑의 몸이 고통을 당하고 대못이 찔려 죽음으로 신부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신랑이 채찍에 대신 맞음으로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신부는 이런 신랑을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이런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루빨리 만나야 합니다. 얄팍한 내 이성의 지식으로 신랑을 판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의 겉옷을’ רדיד(라디드 7289) 웃옷, 너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רדד(라다드 7286) 진압하다, 정복하다, 항복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옷은 여인들이 입는 얇은 보자기와 같은 너울로서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 옷을 입고 신랑을 만나러 갔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벽을 지키던 자들이 술람미 신부를 보고 겉옷을 빼앗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신랑이 곁에 없으면 세상의 권세 자들에게 결국 자신의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랑이 없으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신부인 나를 공격하여 나의 것을 탈취하여 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방해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면 공격하는 자들이 와서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 혼자 열심히 사업을 해보려고 할 때에 어느 정도 불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지면서 불난 곳에 소방 수들이 몰려와서 물을 뿌려 불을 진압하듯이 나의 사업에 물을 뿌려 활활 타오르던 사업과 일들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의 인생은 세상의 권세 자들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고 이들에게 정복당하여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신랑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잠시 신랑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내가 갖고 있는 것에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감각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갖기를 원하여 열을 올리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랑이 내 곁에 있을 때에는 감사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신경을 덜 쓰게 되고 이 신랑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영적으로 감각이 무뎌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경을 세상 쪽으로 돌리고 사업에 육적인 일에만 온 정성을 쓰니 영적인 감각도 떨어지고 신앙도 무감각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사탄의 무리가 공격하여 나의 겉옷을 빼앗아 가버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19: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예수님의 신랑이 내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로마 군인들이 신랑이신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각각 나눠가졌습니다. 그리고 속옷도 취하였습니다. 신부가 받아야 할 것들을 신랑이 대신 고통당해 주셨고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웃옷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신부로서 가장 중요한 웃옷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5:8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술람미 여인은 이제야 정신이 든 것입니다. 신랑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신랑이 있을 때에는 신부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호해 주었는데 신랑이 없으니 자신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고통을 당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솔로몬 주변의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랑하는 솔로몬 신랑을 만나거든 내가 신랑을 너무나 사랑함으로 사랑 병이 났다고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려무나’ נגד(나가드 5046) 선포하다, 가르치다, 대답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만나지 못하자 왕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수치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이 찾아갔을 때에는 자신의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신랑이 떠나니 그때서 정신을 차리고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자 다른 여인들에게 자신이 솔로몬 왕 때문에 병이 났으니 꼭 나의 상황을 왕에게 가르쳐서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직접 만날 수가 없으니 나의 이 상황을 선포하여 왕의 대답을 가져다 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신랑이 나를 찾아오셨을 때에는 딴청을 부리다가 모든 기회 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신랑 때문에 병이 났으니 제발 신랑에게 말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하고 있다면 이것은 신부의 수치입니다. 내가 신랑을 만났는데 신랑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고난을 당한 후에 그때서 정신을 차리고 신랑을 만나겠다고 세상의 사람들이나 아직도 믿음이 덜 성숙한 자들에게 자신이 신랑 때문에 상사병에 걸렸으니 제발 좀 신랑에게 말하여 대답 좀 들려달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도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랑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으로 신앙과 믿음이 시들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다시 회개함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다시 찾고 믿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5:9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부탁을 했더니 이들이 술람미 여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가운데 예쁜 자라고 술람미 여인에게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들도 솔로몬 왕을 사랑하고 있는데 너의 사랑이 특출 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네가 우리에게 부탁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술람미 여인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솔로몬의 주변에 있는 천 명의 여인들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여인들도 정략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솔로몬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의 마음은 술람미 여인에게만 꽂혀있는데 어떤 여인이 질투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잘났으면 직접 가서 말할 것이지 우리에게 부탁할 필요가 무엇이겠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주님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랑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는 자들에게 부탁하여 신랑을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고 자신이 사랑의 병에 걸렸으니 신랑에게 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 신부들의 수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랑이 찾아왔을 때에 완전히 나의 신랑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랑이 나에게 찾아왔는데도 딴청을 부리면서 자신의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예수님을 나의 심령의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랑은 밤늦게 머리에 이슬을 맞고 찾아왔습니다. 나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셨는데 나의 생각으로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아니면 지금은 내가 쉴 시간이니 다음에 오시라고 한다면 이런 신부는 미련한 신부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미련한 신부가 아니라 슬기로운 신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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