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마리아 산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사마리아산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산은 우상을 숭배하던 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진노받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 때 가장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았고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기근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 영적으로 기근이 올 수 있습니다. 항상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 산 הר שמרון(하르 쇼므론)
♣명제: 사마리아 산은 거짓된 믿음을 가진 우상의 산을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거짓된 우상의 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마리아 산은 북이스라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입니다. 이 산은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되면서 타락의 극치로 달려가는 중요한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창건할 당시에는 사마리아가 없었습니다. 여로보암 후로 약 50년이 지난 후에 사마리아가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산을 사서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든 사람이 오므리 왕입니다.
왕상16:23-24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일 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남 유다의 아사 왕 31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오므리가 왕위에 12년 동안 있는데 디르사에서 6년 동안 다스리다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산에 성읍을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 이름을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산은 높은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 성읍을 적들이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오므리 왕은 적들로부터 방어하기 좋은 산을 사서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사마리아에 성읍을 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기까지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됩니다. 이곳에 수도를 만든 사람이 오므리입니다.
‘오므리’ עמרי(오므리 6018) 오므리, 라는 뜻입니다. 오므리는 ‘여호와의 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므리는 사마리아 산을 사들여 우상의 본거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인 아합을 신앙적으로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가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아합은 시돈의 이방 땅에서 아내를 데려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여인이 북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혼란하게 만들고 타락시킨 이세벨입니다. 오므리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신앙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의 신앙이지만 속은 우상으로 가득했던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상16:31-33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아버지보다 한 술 더 떠서 타락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도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데 아합은 이것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이것도 모자라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의 산에 바알의 신전을 건축하고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아세라 상을 만들어 다른 북이스라엘 왕보다 더 여호와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קלל(칼랄 7043 동사, 닢알,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멸시하다, 경멸하다, 저주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으로부터 마음이 빼앗길까 봐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여로보암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런 죄를 가볍게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을 경멸하는 행동입니다. 결국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하여 금송아지를 만든 것보다 더 큰 바알의 신전과 아세라의 신을 섬기고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큰 죄를 하나님께 지음으로 말미암아 아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합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본 것은 이미 그 마음에 버린 받은 자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받은 자라면 이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앙의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 신앙을 더 굳세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겨 더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의 마음에 버림받은 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경멸할 수밖에 없도록 환경과 상황이 되어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악하게 타락하여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원히 죽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닢알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하고’ שחה(샤하 7812 와우계속, 동사, 히트파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엎드리다, 경배하다, 절하다, 섬기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바알에게 경배하여 절하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우상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통탄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한 나라의 왕이 이렇게 영적으로 타락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백성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아합 왕 때에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비와 이슬을 3년 반 동안 내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아합처럼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처럼 예배하고 존경을 표하면서 이 신이 진짜 하나님인 것처럼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이는 죽어있는 신을 의지하고는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의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아합 왕 때에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합은 이방 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하고 즉시로 바알의 신전을 만들고 바알을 섬기게 됩니다. 이것도 한 번으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왕으로 집정하는 동안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합이 바알의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영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육적인 스펙만을 보면 꼭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배우자를 만날 때에 영적인 면을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당장의 욕심만을 가지고 배우자를 고르지 말고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합이 바알에게 예배하면서 섬겼던 결과가 무엇입니까? 아합 왕 시대에 영적으로 최악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3년 반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죄악만 저지르게 되었고 마지막은 전쟁터에서 전사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아합이 우상을 섬기게 된 결과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 복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자들의 결과는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항상 영혼의 쉼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거짓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암6: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아모스 선지자는 목양을 하는 자이며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남 유다 사람이지만 북이스라엘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파하는 자로 보냄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거의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선포되고 있습니다.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들은 모두 지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왕이 있는 곳입니다. 정치를 하는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남 유다는 예루살렘이요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의 신앙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니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이런 지도자들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שמרון(쇼므론 8111) 사마리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מר(샤마르 8104) 지키다, 준행하다, 살펴보다, 조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감시하시는 산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대표입니다. 이 성읍이 타락하면 북이스라엘 전체가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따르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사마리아 산을 살피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준행하여 따르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마리아 산과 같은 신앙을 하고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우리가 무시하고 어기면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우리의 영혼을 조심스럽게 진단하면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들은 더 점검을 하여 주님을 떠난 타락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세벨이 가지고 들어온 바알과 아세라의 신을 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의 나쁜 신앙이 처음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기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좋은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든든한 자’ בטח(바타흐 982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복수) 의지하다, 안전하다, 든든하다, 평안하다, 무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대신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김으로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마리아 성은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적들로부터 공격받을 때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사안일주의와 같은 태화 태평의 세월을 보내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육적인 것들을 바라보면서 환경을 의지하고 죽어있는 우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이 든든합니까? 물질이 많아서 마음이 든든합니까? 세상의 권력을 잡고 있다고 마음이 든든하십니까? 아니면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잘되고 있으니 태화 태평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은 것입니다. 물이 한 번 들어오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럼 우리는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주님의 반석 위에 집을 세우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무너질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모두가 모래 위에 쌓은 집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집을 세우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암4: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사마리아의 죄가 무엇입니까?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은 영적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이 타락하여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역을 짜내어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죄가 작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심판하셔서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서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영적 지도자들은 결국 하나님께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우리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들이 바산의 암소처럼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고 육신의 탐욕에 눈이 어두워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물욕에 쌓여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복음에는 눈이 어두워지고 세상 적으로는 눈이 밝아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을 보시면서 한탄하실 것입니다. 나는 현재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인지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왕하18:9-12 히스기야 왕 제 사 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 칠 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 육 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 구 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사마리아 산의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겼던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인 호세아 때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 년 후에 사마리아 성읍이 함락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강제로 이주시켜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듣지 않은 연고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을 강제로 붙잡아 다른 나라로 끌려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수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자만하거나 오만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됩니다. 이런 신앙은 절대로 잘못된 신앙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는 교회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을 증거 하지 않으니 세상의 흑암으로부터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산이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거짓된 믿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을 우리가 섬긴다면 반드시 멸망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현대 시대에 바알과 같은 우상은 무엇입니까? 바알은 번개를 내리게 하는 우상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는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신비주의에 빠져 병 고침을 받는다고 현혹하고 있습니다. 암을 고침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신비주의는 신앙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모두가 가짜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병 고침을 받게 해 준다고 돈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가짜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의지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고침을 받을 때에 이것이 진짜인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역사를 흉내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세라와 같은 우상은 어떤 것입니까? 아세라 신은 여신으로서 음행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인간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도 음란과 음행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따라가는 자들도 아세라 신과 같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에서 육체적 쾌락만을 따라가고 세상의 행복과 행운만을 따라가는 자들은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요행수를 생각하여 로또 복권을 사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인생의 한방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행운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막연한 인생의 행운을 따라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행수와 같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노력도 없이 얻은 복은 쉽게 사라지고 맙니다. 자신의 노력이 있을 때에 물질도 귀한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마리아의 거짓된 비 복음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의 복음을 따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지금 주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신앙으로는 마지막 심판 날에 영원한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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