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시편 34편 강해설교] 다윗의 시편 34편을 보기 위한 서론

체데크 2021. 1. 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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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34편 강해설교 중에서 다윗의 시편 34편을 보기 위한 서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이 시편 34편을 기록하게 된 배경을 우리가 알면 다윗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 가드 땅에 들어갔을 때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쓴 시가 34편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시편 34편을 읽으면 다윗이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 34편을 보기 위한 서론

 

우리가 다윗의 찬양 시인 시편 34편을 통해서 히브리어가 얼마나 위대하며 하나님의 언어인지를 깨닫기 위하여 공부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책입니다. 오늘의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시가 22절로 되어있는데 1절부터 22절까지 시작하는 구절들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시편이 이렇게 하나님의 언어인 알파벳 순서로 되어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알파벳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있으며 상형 문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을 다윗이 깨닫고 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알파벳 순서를 통해서 다윗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지를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시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삼상21:10-15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입니다. 육적인 왕인 사울이 현재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더 이상 숨어 있을 수가 없어서 블레셋 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도 사울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업 친데 덮친 것처럼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의 장수인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면서 미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상황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혜를 주셔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행동 때문에 아기스는 미친놈이라고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하여 겨우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13절에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이들 앞에서 행동을 변하게 됩니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의 행동을’ טעם(타암 2940) 지혜, 행동, 판단, 이라는 뜻이며 טעם(타암 2938) 경험하다, 깨닫다, 구별하다, 인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윗은 순간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하다는 것을 판단하고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신을 온전하게 행동하면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빨리 깨닫고 상황에 맡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름부음 받은 자의 보호함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때에 따라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되고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하여שנה(샤나 8138 와우접속.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변장하다, 갈아입다, 다르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아기스와 그의 신하들의 행동을 보고 재빠르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듯이 그의 행동을 다르게 했습니다. 순간 위장술을 사용하여 미친 척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은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 왕이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가드 왕 앞에서 미친 행동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순간에 번쩍이는 지혜가 옴으로 즉시 행동과 말이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전과는 다르게 변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간질을 하는 것처럼 병자 시늉을 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에도 일부러 미친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미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피엘형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빌라도와 로마 병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갈대로 머리를 맞을 수밖에 없는 수모를 겪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수치를 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고 이방 왕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도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하여 이방인의 총독인 빌라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시게 되었습니다.

 

미친 체하고’ הלל(할랄 1984 와우접속. 동사, 히트파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자랑하다, 찬송하다, 칭찬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미친 체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본인 자신이 가장 낮은 자리에 떨어져 아기스 왕을 높이고 칭송하고 자랑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낮아지고 이방의 왕인 아기스를 높임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다윗이 미친 체하면서 아기스 왕을 높이고 칭찬을 즉시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다윗을 죽이는 쪽이 아니라 놓아주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최선을 다해서 아기스 왕을 높이고 칭찬하고 자랑했더니 다윗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쫓겨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은 수치를 받고 모욕을 당하는 결과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히트파엘형 강조 재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를 위해서 이방인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셔서 가장 비천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나를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나 때문에 엄청난 모욕과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적거리며תוה(타바 8427 와우접속.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그적거리다, 표를 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대문짝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아기스 왕은 마음에 미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윗은 대문짝에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글씨를 쓰면서 그적거리며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봄과 동시에 즉시 쓰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을 하든지 말든지 다윗은 문짝에 최선을 다해서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다윗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엘형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열심히 땅에 글씨를 쓰신 적이 있습니다.

 

요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하기를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냐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돌로 치라고 명령하면 지금까지 말하던 사랑이 없다고 말할 것이고 돌로 치지 말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은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열심히 글씨를 쓰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글씨를 쓰셨는지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씨를 썼을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서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국을 그리니’ καταγνυμι(카타그뉘미 2608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 단수, 3인칭) 꺾다, 부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자국을 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잡아온 간음한 여인의 죄를 심문하여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간음한 여인을 위하여 자신의 몸이 부서지고 바리새인들과 싸워서 죄악에서 승리하시고 간음한 여인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몸이 쪼개지고 부서져서 산산조각 나는 것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글씨를 쓰신 것은 간음한 여인을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여 죽고 이 여인을 살릴 것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의 죄를 대신 지실 것이 예정되어 있는 주님은 하나님께 감사의 글씨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확실히 살아서 구원을 받을 것에 관하여 쓰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실제로 땅에 몸을 굽혀 글씨를 쓰셨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법입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땅에 글씨를 쓰고 계셨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일어나셔서 먼저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이 여인을 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이 단어가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있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תוה(타바 8427)라는 단어로서 다윗이 문짝에 글씨를 그리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미친 척하면서 글씨를 쓴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에게 붙여주신 간음한 여인을 위하여 감사함으로 땅에 글씨를 쓰시고 표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은 구원받은 나의 딸이라는 표시를 땅에 그리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간음하다 걸린 여인들처럼 원죄 가운데 고통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사탄의 존재들에게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나에게 구원의 표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도 표를 주셨을 때에 사람들이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을 주셔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원죄를 꺾어버리시고 소멸시켜 주셨습니다. 내 안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인침 받은 표식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다시 사무엘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미친 척한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거짓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15절에 아기스 왕은 자신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너희가 다윗을 데려다가 자신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냐고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미치광이가שגע(샤가 7696 동사, 푸알, 분사수동, 남성, 복수) 미치다, 미치광이, 라는 뜻입니다. 아기스 왕은 미친 자가 부족하여 자신에게 이런 미치광이를 데리고 왔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블레셋에도 많은 미치광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복수를 썼기 때문입니다. 많은 미치광이들이 아기스 앞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다윗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기스의 눈에는 다른 미치광이와 똑같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미칠 수밖에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푸알 강조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강조 능동으로 열심히 미친 척을 했더라도 보는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지 않고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면 다윗은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기스의 눈을 가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푸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은 이방인들에게는 미친 짓과 같은 일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도 미친 짓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심하게 모욕하고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어떻게 구원하느냐고 조롱했습니다. 만약에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내가 믿어 줄게!라는 허풍까지 떨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미쳐 보이지만 믿는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고귀한 것입니다. 너무나 귀중한 사건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속죄로 인하여 모든 죄가 사라졌습니다.

 

다윗의 수치와 모멸감을 통해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블레셋 민족들을 평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수치를 당하셨지만 결국 부활하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의 손에서 벗어나고 나서 시편 34편을 짓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시로 찬양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이 시가 구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이것을 알파벳 상형의 의미와 단어의 뜻과 문법을 통해서 다윗의 감사의 심정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시를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아 갈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다윗이 아기스 왕에게 미친 척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통해서 모욕과 수치를 당함으로 비하된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도 깨달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다윗의 시를 통해서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기록된 말씀을 배우고 익혀서 깨닫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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