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욥기 설교문 중에서 욥기의 말씀으로 부활 절기에 관한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죽음의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욥42:1-6)
♣명제: 욥은 회개하여 율법의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었다.
♣목적: 나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신앙인가? 아니면 부활의 신앙인가?
우리는 욥기를 대할 때에 고난 받는 욥으로만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고난을 받을 때는 욥기를 읽으면서 고난을 이겨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욥기의 내용을 보면 고난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욥이 고난 받은 것은 자신의 율법적 의를 나타냈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의 대 주제는 율법의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바뀐 것을 말씀하는 것이 욥기입니다.
생활의 고난이나 환경의 고난이나 육체의 고통에서 이겨내고 승리한 것을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든 욥기의 주제를 환경의 고난에서 탈피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는 것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율법적 신앙의 의를 하나님 앞에서 드러냈기 때문에 고난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하나님 앞에 율법으로 세워진 신앙은 반드시 무너지고 환란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욥기를 대할 때에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욥을 대할 것이 아니라 율법적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이와 같이 율법적 신앙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빨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욥이 율법적 신앙에 있었던 모든 재물과 가족들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율법적 신앙으로는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었을 때에 하나님이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적으로 열심히 내가 쌓은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불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축복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욥기를 보면서 욥이 열심히 환란을 이겼더니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다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었을 때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부활의 신앙으로 바뀔 때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율법의 신앙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바뀌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욥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전까지는 열심히 자신이 의롭다고 하나님께 열변을 토했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할 때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말씀하실 때에 욥은 아무것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이’ איוב(이요브 347) 욥이며 איב(야아브 340) 원수 되다, 악의, 적대시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욥이라는 이름의 뜻은 적대시하며 악의가 있고 사람들과 원수가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욥이 율법적 신앙에 있을 때에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만 의롭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적대적인 사람이 되며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욥처럼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현재 내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고 나만 보면 슬슬 피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나만 잘났다고 말하는 욥처럼 율법에 빠져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철저하게 율법에 빠진 신앙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의 세 친구들로부터 환난에 빠졌을 때에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의롭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욥입니다.
욥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때에는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상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으로만 알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과 은혜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은 어떠한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율법적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복음의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욥처럼 자신이 의롭다고 하나님께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신은 낮아질 것입니다.
욥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이루지 못하실 것이 없다는 것을 욥이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구원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못 하실 일이’ יכל(야콜 3201) 이기다, 승리를 얻다, 할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관하여 못할 것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이 율법적인 신앙에 있을 때에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시니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분입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승리하셨고 사탄을 이기신 것입니다. 욥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는데 바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달리도록 지명하셨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시므로 이 세상의 모든 죄악들을 물리치시고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는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승리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욥은 깨달은 것입니다.
욥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이 말하기를 자신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깨닫지도 못한 일을 하나님께 말하였고 자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욥이 율법적 신앙에 있을 때에는 복음을 깨달으려고 해도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내가 율법적인 신앙에 빠져서 자신 스스로 의롭다고 하나님께 나간다면 결국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욥처럼 율법적인 신앙에 빠져 있을 때에는 우리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였을 때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나도 욥처럼 복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영원한 원죄가 사라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내가 살아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욥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들으시고 또한 내가 묻겠사오니 주님 내게 깨닫는 영을 부어달라는 것입니다. 욥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주님께 고백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이 율법의 눈에 가리어져 있었으니 주님을 제대로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이것을 벗기어 달라는 것입니다.
‘내게 알게 하옵소서’ ידע(야다 3045) 동침하다, 깨닫다, 허락하다, 보여주다, 라는 뜻입니다. 욥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겉으로만 알았지만 이제는 동침하여 알 듯이 주님의 속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욥은 주님과 결혼한 상태가 되어 신랑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 스스로는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보여주실 때에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욥은 이렇게 하나님께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절히 알기를 원하는 욥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적인 신앙에 빠져 자신만 높이고 자신만 의롭다고 생각했던 신앙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욥처럼 율법적인 신앙에서 신랑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율법으로는 고통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욥이 복음을 간절히 깨닫기를 원하는 것처럼 나도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간절히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후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욥이 율법에 빠져있을 때에는 마음이 완고하여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청하여 이 수건을 벗겨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수건은 내 힘으로는 절대 벗겨낼 수가 없습니다. 이 수건은 하나님께서 벗겨주셔야 합니다.
‘벗겨지지’ ανακαλυπτω(아나칼륖토 343) 벗기다, 열다, 치워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빠져있는 신앙은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욥이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청하여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벗겨달라고 강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건은 어느 곳에 있든지 지금 덮여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벗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덮어 놓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수건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이 이 수건을 하나님께서 벗겨 내 달라고 강청하는 것입니다.
‘없어질 것이라’ καταργεω(카타르게오 2673) 폐하다, 무효로 하다, 제거되다, 라는 뜻입니다. 이 수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수건은 완전히 사라지고 무효가 되어 영원한 멸망으로 던져질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아니면 절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수건을 벗겨주시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의 수건이 사라지는 때는 지금 현재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이 수건을 벗겨내지 못합니다. 수동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닫고 부활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욥은 이것을 깨닫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면 율법적인 신앙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영원한 멸망 밖에는 없습니다. 빨리 십자가 복음으로 나와 부활의 새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욥은 이것을 알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면서 욥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뵙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귀로 들었다는 것은 율법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결국 율법에 빠진 신앙입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부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전15: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사망은 첫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원죄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죄의 죄악들을 속죄해 주시고 부활하셔서 새 생명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욥이 귀로만 들었다는 것은 자신은 아담으로 인하여 사망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고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욥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말했던 모든 것들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회개는 단회적 회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나이다’ נחם(나함 5162) 슬퍼하다, 애도하다, 한탄하다, 변하다, 라는 뜻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 회개는 지금까지 자신이 율법적 신앙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높였던 신앙을 슬퍼하고 한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으로 변화를 받아 다시는 율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의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자신은 옳은데 왜 나에게 이런 환란과 고통을 주시느냐고 대드는 신앙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순간 자신의 신앙이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회개하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닢알형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에서의 회개는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이 깨닫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은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율법입니까? 부활입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내가 구원을 얻고 부활의 소망에 동참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된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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