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여호와 이름] 여호와 로이(יהוה רעי)(시 23:1)

체데크 2020. 8. 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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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호와 이름 중에서 시편 23편 설교 중에서 여호와 로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 로이(יהוה רעי)(시 23:1)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않은 돌발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위험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험입니다. 만약에 예상했던 일이라면 이것은 위험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고 감지 못한 상황에서 일이 발생했다면 이것은 위험입니다. 한 매체에서 반려견과 함께 주인이 산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가는데 갑자기 반려견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을 했습니다. 늘 가던 길인데 갑자기 그 길을 피하여 다른 길로 가려고 보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반려견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몰랐지만 반려견이 가자고 하던 길로 따라서 갔는데 조금 지나서 갑자기 시내버스가 폭발을 했습니다. 바로 그 시간 자신이 늘 다니던 곳입니다. 만약에 반려견이 길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반려견이 자신을 살렸다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하면서 감사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이 반려견은 이미 위험을 감지하고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생에도 많은 위험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위험한 곳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나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셔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려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감지하고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하는데 하물며 나를 창조하시고 만세전에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어떤 위험한 요소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함께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광야는 그야말로 혼자 있으면 위험한 곳입니다. 많은 강도 떼들이 있고 많은 포악한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곳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한시라도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런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어주시면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윗은 양을 치고 있습니다.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양들은 자신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동물들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고 먹을 꼴이 없으면 꼴로 인도할 것이며 마실 물이 없으면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 확실하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다윗에게 생겼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인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양과 같습니다. 양은 광야에서 목자가 없으면 한시라도 살 수 없습니다. 일단 뜨거운 광야에서 마실 물을 찾지 못하면 죽습니다. 목마름이 있기 때문에 생수를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리고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짐승들이 있습니다. 양은 힘이 없기 때문에 늑대들에게 잡혀 먹힐 수밖에 없습니다. 목자가 없으면 양은 무조건 잡혀 먹힙니다. 다윗도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 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더 큰 위험한 요소들이 다윗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어주시니 원수의 목전에서 살아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인생을 지켜주시고 앞으로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면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는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이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물질이 많아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건강해서 부족함이 없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권세와 권력이 많다고 해서 부족함 없이 살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게 됨으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위험한 곳으로부터 피하게 해 주시고 필요할 때마다 공급해주시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나의 목자시니רעה(라아 7462 동사, , 분사능동, 남성,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풀을 뜯기다, 먹이다, 사귀다, 친구가 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치고 있는 양들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고 있습니다. 자신이 양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풀을 뜯기고 있습니다. 양들이 마음 편하게 풀을 뜯을 수 있도록 자신은 위험한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나를 이와 같이 인생 가운데 보호하시고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사귀어 친구가 되어주시고 인생 가운데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해결해주시며 위험한 일이 있다면 미리 아시고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에 확실히 개입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죽을 상황도 많이 겪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피할 길을 인도하셔서 목숨을 살려주십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목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분사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도 함께 하셔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인생의 광야에서 마음 편하게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 목자는 양도 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를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을 쳐서 이리들이 양을 물어가고 헤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טוב(토브 2896) 좋은, 선한, 즐거운, 이익, 번영, 복지,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자라는 단어도 רעה(라아) 라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좋은 목자가 되어주시고 양들이 건강하고 기뻐하면 주님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목자는 양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양과 같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의 영적인 이익과 번영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생각은 오직 양들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모든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양들의 육적인 복지를 위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육적으로 고통을 당하실 때에 함께 우셨고 병들어 있을 때에는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배고파할 때에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 주셔서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주님은 이렇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목숨을 버리거니와נתן(나탄 5414 동사, ,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주다, 택하다, 구원하다, 끌어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생명을 양들에게 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원죄에서 영원히 죽었던 자들을 이끌어내어 구원시켜주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하지만 삯꾼 목자들은 모두가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도망을 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리가 와도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위험한 상황에 버리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내가 원죄의 구덩이에서 고통당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버리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나에게 주시고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계속해서 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 계속해서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현재 우리는 영원한 위험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원죄라는 고통의 울타리의 위험에서 빠져나왔고 앞으로는 이런 곳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길을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는 나를 종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종은 율법주의자를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시려고 한다고 말씀합니다. 친구ידיד(예디드 3039) 사랑하는, 사랑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은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선택받은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 주셔서 가장 사랑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친구라고 부르신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표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구원의 이야기를 나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선택받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내가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은 자였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친구는 주님께 가장 사랑받은 자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다윗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주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 부족함이חסר(하세르 2637 동사, ,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부족하다, 필요하다, 감소하다, 핍절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부족해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셔서 그때마다 채워주시고 떨어질 만하면 하나님이 아시고 곤핍해지지 않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영적으로 곤핍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양식으로 채워주셔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가뭄에 밀가루와 기름이 없어서 한 끼를 해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를 만나 대접하고 가뭄에 통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다윗도 마찬가지로 자신도 계속해서 이런 은혜를 받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뭄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먼저는 영적으로 메마른 영혼을 살려주십니다. 복음이 없는 자에게 복음의 양식을 주셔서 주리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천국복음을 선포해주셨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절대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육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으려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정욕적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영혼을 살려주시고 영원히 지옥에 갈 인생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어주셔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는 것은 세상에서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돈 많이 벌어서 윤택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더 어려운 환경과 곤경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한 끼를 고민하면서 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나를 포기했다거나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어려운 문제를 그냥 보고 있다고 해서 나의 목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먼저 나의 영혼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내 영혼의 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영혼의 문제는 뒷전이고 육신의 문제를 더 해결 받으려고 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면 나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무조건 자신의 육적인 문제에 개입하여 돈 많이 벌고, 사업 잘 되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속 썩이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가 잘 되면 이것이 목자가 되어주신 것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이 안 되고 문제가 생기면 주님이 목자가 되지 않으신다는 이런 생각들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은 먼저 나의 영혼을 치료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난 후에 그때에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육적인 축복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육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영적인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그때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면서 늘 감사의 고백이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아도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에 적재적소에 주시면 그때에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셨다는 사실을 삶 가운데 확신하시고 주님과 항상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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