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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보아스 설교에서 고엘의 은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엘의 은혜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시대 초기쯤이다. 영적으로 타락하고 이방민족들에게 계속 공격당한다. 그러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고 다시 우상을 섬기면서 300년 동안 사이클로 돌아가고 있다. 이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게 된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말론과, 기룐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베들레헴 (בית לחם베이트 레헴) 집과 떡(빵)이라는 말이 합쳐서 생긴 바로 빵집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영적인 양식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이미 예언된 장소이다.
시 132:5-6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엘리멜렉 (אלימלך엘리멜렉크)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뜻이다.
나오미 (נעמי나오미) ‘나의 기쁨, 나의 기뻐하는 자’ 라는 뜻이다.
말론 (מחלון마흘론) ‘병들다, 슬퍼하다, 병든 자’ 라는 뜻이다.
기룐 (כליון킬론) ‘파멸, 쇠하다’ 라는 뜻이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자 모든 재산을 팔아버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믿음의 사람이 처소를 떠나면 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압으로 간 엘리멜렉은 두 아들을 모압의 여인들과 결혼을 시킨다.
룻은 (רות루트) ‘우정, 친구’ 라는 뜻이다. 결국 엘리멜렉은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서 죽고, 두 아들도 죽게 되었다. 나오미 혼자만 모압 땅에 남았는데 베들레헴에서 풍년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두 며느리 중에 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가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말할 때에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마라는 (מרא마라) ‘쓴, 괴로움’ 이라는 뜻이다. 나오미의 인생사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결국 하나님의 기업을 버리고 잠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가면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도 잃고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와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보아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 (חיל하일) 힘, 능력, 부, 재산, 이라는 뜻이다. 력한 (גבור깁보르) 강력한 자, 용사
보아스 (בעז보아즈) 민첩, 재빠름, 이라는 뜻이다.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보아스는 아버지가 살몬이고 어머니가 라합이다. 살몬은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들어갔던 사람 중에 한 명이며, 유다지파이다. 라합이 살몬을 여리고에서 숨겨줌으로 살려주었다. 살몬은 구속사적으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방인인 라합과 결혼함으로 이방인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증표로 보여주셨다.
친족으로 (ידע야다) 동침하다, 깨닫다, 알게하다, 라는 뜻이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주는 고엘로서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푸알, 분사수동으로 되어있다.
룻과 나오미는 과부이며 가난하기 때문에 추수 때에 이삭을 주워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일꾼들이 작업하는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었는데 이 모습을 보아스가 보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이곳에서 주우라고 말한다.
보아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의로운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돌보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병든 자와, 죄인의 친구이며, 가난한 자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보아스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날개 (כנף카나프) 겉옷자락, 옷, 광선, 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겉옷이 중요하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밤이 되면 겉옷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겉옷을 전당 잡혔을 때에 그 날 돌려주라고 율법에 명시되어있다. 날개 아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겉옷으로 덮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보호함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병든 자가 의로운 자의 겉옷을 잡으면 고침을 받는다고 하는 생각이 유대인들에게 있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잡았는데 바로 겉옷을 잡은 것이다. 그 이유가 의로운 랍비의 겉옷을 잡으면 병이 치료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서의 광선이 바로 겉옷을 말하고 있다. 이 겉옷을 통해서 치료의 은혜가 임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겉옷은 너무 중요하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보아스를 만나라고 명령을 한다.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고 잠을 잘 때에 보아스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룻 3:2-5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 이유가 무엇인가? 대를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보아스는 고엘로서 가장 유력한 자였기 때문이다. 대를 잇지 못하면 명예가 실추된다.
창 38:12-18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다말도 대를 잇기 위해서 유다의 막내아들 셀라가 장성하기까지 기다렸지만 유다가 주지 않자 다말은 대를 잇기 위해서 유다와 관계를 맺게 된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자녀를 갖지 못하고 대를 잇지 못하면 수치로 여겨졌기 때문에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오미도 마찬가지로 유력한 보아스를 통해서 대를 잇기를 원했다. 그래서 룻을 보아스에게 보낸 것이다. 이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신부 되는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1. 목욕을 해야 한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רחץ라하츠) 씻다, 목욕하다, 라는 뜻이다. 칼, 완료로 되어 있다. 성도들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씻김 받아야 한다. 원죄를 씻김 받은 성도들이 주님을 맞을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목욕을 한 자는 손과 발만 씻으면 된다고 했다.
2. 기름을 발라야 한다.
기름을 바르고 (סוך수크)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 라는 뜻이다. 칼, 완료이다. 신부로서 화장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결하게 하라는 뜻이다. 신랑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면서 준비하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자범죄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원죄를 목욕함으로 완전히 씻은 사람은 기름을 바르면서 자신의 행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 하라라는 것이다.
3. 의복을 입어야 한다.
의복을 입고 (שמלה시믈라) 의복, 외투, 싸는 것, 의 뜻이다. 칼, 완료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반드시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맞이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의 옷을 입고 주님을 맞이한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피흘리신 의의 옷을 입으면 수치를 당하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될 일이다. 이것을 나오미는 룻에게 준비시키고 보아스를 만나게 했다. 타작마당에서 보아스가 잠을 자고 있을 때에 룻이 살짝 들어가 누운 것이다. 이때에 보아스는 자신이 룻을 통해서 기업 무를 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기업을 무를 자가 자신보다 더 먼저인 친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유보시킨다. 그래서 먼저 기업 무를 자가 포기하면 내가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룻에게 말하고 있다.
룻 3: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보아스는 새벽에 일어나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왜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보리는 양식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주식이다. 이것은 앞으로 너에게 양식을 채워줄 것이다. 라는 의미가 속해 있다. 보아스는 부자이다. 권세도 있다.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의미로 보리를 준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하는 의미이다. 주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왜 여섯 번일까? 숫자 6은 불완전한 것을 의미한다. 7은 완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7번을 주어서 완전하게 채워주지 않고 6번을 주어 불완전하게 했을까? 그 이유는 보리 여섯 대를 주고 나머지 한 대는 바로 내가 너에게 기업을 무를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다.
6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채워야 한다. 계시록에서도 666은 사람의 숫자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부족한 1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바로 나의 신랑이 되어 주시면서 완전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면 고엘이라는 제도는 무엇인가?
기업 무를 자 (גאל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라는 뜻이다.
기업무를 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1. 결혼한 형제가 무자한 채 사망한 경우(종족보존)
신 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종족을 보존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반드시 고엘은 후손을 잇게 해야 한다. 만약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침 뱉음을 받았다.
신 25: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2. 가난한 친족이 땅을 팔았을 경우
레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친족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다면 가까운 고엘이 이 땅을 사주어야 한다. 책임이 고엘에게 있었다.
3. 가난한 친족이 노예로 팔렸을 경우
레 25:47-48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가난한 친족이 노예로 팔렸을 경우에 고엘이 대신 돈을 주고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고엘 제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만약에 고엘 제도가 없다면 구속사를 이을 수가 없다. 중간에 대가 끊겨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수가 없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고,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에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부요함을 주셨다. 예수님은 원래 부요하신 분인데 우리의 가난을 가져가시고 우리를 부요하신 것이다.
보아스는 먼저 율법에 친족인 기업 무를 자에게 묻는다. 이것은 절대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어기시거나 폐하지 않으셨다. 기업을 무르는 사람은 자신의 것이 없다. 모두가 기업을 이어주는 자의 것이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엘이다. 자신은 사라지고 남을 위해서 대를 이어 주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이 희생은 자신의 재산과, 명예와, 씨를 넘겨주는 것이다. 우리는 오난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형의 씨가 될까 봐 땅에 설정했다. 하지만 보아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 기업을 무를고 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해 기업을 무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천국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이다.
(גאל가알)의 히브리적 의미는 진리의 말씀을 날라서 하나님께 통제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해 주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통제하시고, 가르치시며,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기업 무를 자가 욕심이 생겨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가장 큰 수치를 당하게 된다. 침을 뱉고 신발을 벗어서 증표를 삼았다.
엡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신은 복음을 의미하고 있다.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겠다. 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복음을 듣지 않고 거부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 때에 수치를 당하게 된다.
[모세 설교] “호렙 산 떨기나무에서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출3:1-5)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호렙산의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호렙 산 떨기나무에서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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