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한나와 브닌나 설교문] “율법의 신부와 복음의 신부”(삼상1:1-8)

체데크 2020. 6. 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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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한나와 브닌나 설교문으로서 브닌나는 율법의 신부를 상징하고 한나는 복음의 신부를 상징합니다. 둘의 관계를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율법의 신부와 복음의 신부”(삼상1:1-8)

 

명제: 브닌나는 율법의 신부의 표상이고 한나는 복음의 신부의 표상이다.

목적: 나의 신앙은 브닌나의 신앙인가? 아니면 한나의 신앙인가?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분배받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수아가 죽자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인도하셨는데 정작 주인을 버린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사사 말기의 영적 암흑기에 엘가나라는 인물과 한나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하여 알아듣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자도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사사 말기에 엘가나와 브닌나와 한나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시대도 영적 암흑기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에 나는 율법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 복음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사사시대처럼 복음의 말씀을 듣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무엇입니까?

 

첫째, 엘가나의 족보와 이름을 통하여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삼상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하나님은 사사 말기에 엘가나의 족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고 하나님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엘가나의 조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엘가나의 정통성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엘가나는 원래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레위지파 출신입니다.

 

대상6:26-28 엘가나로 말하면 그의 자손은 이러하니 그의 아들은 소배요 그의 아들은 나핫이요 그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의 아들은 여로함이요 그의 아들은 엘가나라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

 

역대상의 족보에서 보면 레위지파의 자손에 엘가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엘가나가 사무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에는 에브라임 지파인 것처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레위지파들은 모든 지파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때에 엘가나의 조상들이 에브라임에 들어와 정착했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족보는 레위지파 출신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 (אפרתי에프라티 673) 에브라임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רה파라 6509) 열매를 맺다, 번성하다, 무성하다, 창대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어근사전에는 (אפר아파르) 하찮다, 쓸데없다, 덧없다, 무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 말기에 엘가나를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명칭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현재 엘리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영적으로 무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도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는데도 무관심하여 벌을 주지도 않고 말씀대로 교육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사시대를 살릴 자가 레위지파에서 나오는데 엘가나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삶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자신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적 암흑기에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각성을 하고 회개하여 앞으로는 많은 영적 열매를 맺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가지들이 무성하게 기초를 만드는 인물이 바로 엘가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지는 메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나무가 무성할 수 없고 열매가 맺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엘가나라는 인물을 통하여 자신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가치하게 살았던 인생들을 이제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자가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입니다.

 

‘엘가나’ (אלקנה엘카나 511) 엘가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ל엘 410) 하나님, 이라는 뜻과 (קנה카나 7069) 세우다, 건립하다, 득남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엘가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암흑기에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탄생하게 하는 데 사용하는 자가 바로 엘가나입니다. 엘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적 암흑기에 빛으로 오셔서 자신의 몸을 헌신하여 십자가에서 불살라 주시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많은 영혼들을 번창하게 하셨고 영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신 분입니다.

 

그 기초를 세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았다면 선택받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사시대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었던 그때에 엘가나라는 레위지파 한 명을 세워 사무엘이라는 빛을 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이 시대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구원의 기초를 세우시고 건립하셔서 많은 선택받은 백성들을 탄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가나의 족보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엘가나가 그때 당시에는 빛으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가나를 사용하셔서 사사시대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빛으로 오게 하시기 위하여 엘가나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올 때에 영적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무가치하고 하찮으며 쓸데없던 인생이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살 수 있고 쓸모 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쓸모없고 하찮은 인생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인생일지 몰라도 예수님을 만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가 그때 당시에 한 줌의 재가 된 것처럼 이 시대는 예수님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십자가에 속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확실하게 믿고 신앙생활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브닌나와 한나를 통하여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삼상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엘가나는 두 아내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고 또 한 명의 부인은 브닌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셔서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브닌나’ (פננה페닌나 6444) 브닌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נין파닌6443) 산호, 진주, 루비,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이 단어는 어근사전에 보면 (פנה파나 6437) 권고하다, 추종하다, 섬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엘가나의 아내 브닌나는 외형적으로는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외모를 치장하는데 산호와 진주와 같은 귀한 보석들로 치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모는 명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명품이 아니라 짝퉁입니다. 똑같은 명품을 베꼈지만 실제로는 값어치가 없는 제품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명품처럼 보이지만 속은 텅 빈 하나님 앞에서 진노받을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어떤 신앙입니까? 율법적인 신앙입니다. 브닌나는 하나님께서 권면하셔서 말씀대로 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탐욕을 추종하여 따라가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섬기고 우상을 섬겨 결국은 하나님께 진노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브닌나처럼 썩어져 가는 겉 사람에게만 치장하고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만 치장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브닌나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현재 내가 브닌나와 같은 신앙을 하면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따라간다면 빨리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닌나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 이제는 영적으로 진주와 산호와 루비와 같은 자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나’ (חנה한나 2584) 한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נן하난 2603) 은혜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간구하다, 은혜를 받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아이를 주시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현재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없습니다. 정말 신실한 영적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마음은 애가 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한나도 아이가 없음으로 저주받은 여인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한나는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아이를 달라고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구하면서 애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나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현재 영적인 암흑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이 아이가 없어 애타는 마음과 같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이를 주시면 삭도를 대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로 키우고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럼 한나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복음의 신앙입니다. 한나는 복음의 신부이기 때문에 먼저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모든 것을 복음의 신부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아들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줄 아들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한나는 안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한나와 같은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이 시대에 나의 욕심에 찬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의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간구가 나의 세상적 욕심을 위한 기도라면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뜻과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부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복음의 신부인 한나와 같은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삼상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한나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니 사무엘을 낳고 하나님께서 한나를 돌보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면 이와 같이 큰 복을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복음의 신부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바로 복음의 신부들입니다.

 

셋째, 브닌나와 한나의 생활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삼상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우리는 브닌나의 신앙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한 것을 알고 한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가지고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격분하게 하여’ (כעס카아스 3707) 속 타게 하다, 자극하다, 격노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낳았는데 한나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를 볼 때마다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도 낳지 못하는 저주받은 여인이라면서 속을 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나는 속에서 분이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한마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깐족거리면서 속을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남의 약점을 가지고 놀려대는 자들이 제일 나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하나님께 진노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브닌나는 율법주의자들의 표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남의 약점을 가지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남의 수치를 드러내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폭로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입니까? 함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율법의 신부들입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율법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복음의 신부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신앙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삼상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엘가나가 한나에게는 제물의 분깃을 갑절이나 주었습니다. 또한 엘가나가 사랑한 부인은 한나입니다. 현재 임신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엘가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한나입니다.

 

‘그를 사랑함이라’ (אהב아하브 157) 사랑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 즐기다, 라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브닌나 보다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나를 보면 엘가나가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한나의 마음과 행동이 엘가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복음의 신부들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으로는 비록 브닌나와 같은 자들보다 부하지는 못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집니다. 한나와 같은 자들이 주님의 복을 받아 브닌나와 같은 자들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부들입니다.

 

현재 나는 율법의 신부입니까? 아니면 복음의 신부입니까? 나의 신앙생활이 남의 약점만 파고들어 괴롭히고 정죄하고 있다면 나는 율법의 신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평만 늘어놓고 자신의 의만 교회에서 나타내려고 한다면 율법의 신부입니다. 외형적으로만 남에게 나타내려고 하고 영적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 구원에 관하여 생각하지도 않고 성경책만 끼고 돌아다니면서 겉으로는 신앙 좋은 척 하는 이런 신앙은 현재 율법의 신부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서 돌아서면 내 마음대로 사는 이런 신앙도 율법의 신부입니다. 현재 내가 이와 같이 하고 있다면 빨리 복음의 신부로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을 제대로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는 복음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복음의 신부는 어떻습니까? 현재 내가 육적으로 부족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입술에서 불평과 불만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육적인 고난이 와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복을 갑절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복음의 신부들은 신랑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핍박이 찾아오게 됩니다. 율법의 신부들이 핍박을 하고 환난 가운데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으면 핍박이 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빛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흑암의 권세 자들이 공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신부로서 주님을 증거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율법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복음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만을 사랑하고 신랑만 높이면 됩니다. 그러면 신랑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신부가 혼자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 힘들고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신랑 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신랑이 알아서 척척 모든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신부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의를 나타내는 복음의 신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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