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벧세메스 설교문 중에서 벧세메스로 법궤를 싣고 가는 젖 자는 암소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모든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삼상 6:10-16)
♣명제: 벧세메스로 향하는 젖 나는 암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목적: 젖 나는 암소는 나를 위해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잘 나타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복음의 눈이 멀었지만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블레셋 군대들에 의해 패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여호와의 법궤를 전쟁에 가지고 가기로 마음을 먹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와 함께 서있었습니다. 이제는 법궤가 있기 때문에 블레셋 군대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에게 패하게 되고 결국 여호와의 법궤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민족들은 신이 나서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법궤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섬기는 다곤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여호와를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곤 신전의 다곤의 머리와 손목을 끊어버렸습니다. 또한 법궤가 있는 도시에 종기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법궤가 옮겨지는 곳에 똑같은 재앙이 내리자 블레셋 민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회의를 하고 우리가 재앙을 받는 이유는 법궤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호와의 궤를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수레에 법궤를 싣고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와 함께 실어서 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젖 나는 암소 두 마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나를 위해 골고다로 향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가셔서 고난 받으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재앙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재앙의 저주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첫째, 재앙을 짊어질 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삼상 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종기의 재앙들을 피하는 방법으로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많은 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재앙을 막기 위해 수레를 메는 소는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메우고’ (אסר아싸르 631) 결박하다, 속박을 받다, 택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소 둘은 재앙을 짊어지기 위해 선택을 받아 도망치지도 못하고 결박당하여 벧세메스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들은 벧세메스로 가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수레를 끌어야 하는 속박을 받아 죽을 운명에 처해진 소들입니다. 이들은 즉시로 재앙의 수레를 끌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져 있고 계속해서 벧세메스까지 법궤를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책임을 마치면 죽음으로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선택된 죄인들을 위해 골고다의 언덕에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죄를 짊어지시고 올라가기로 선택된 분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리셨습니다. 그것도 지명하여 뽑아 예수 그리스도를 골고다로 올라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요 19:16-18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은 빌라도에게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받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골고다’ (גלגלת굴골레트 1538) 두개골, 해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לל갈랄 1556) 옮기다, 떠나가다, 맡기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해골이 많이 있는 골고다는 부정한 곳이라고 생각하던 장소입니다. 이런 곳에 예수님께서 의로운 분이 부정한 자가 되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모든 재앙을 옮겨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 영원한 죽음의 재앙을 떠나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세전에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죽음의 재앙이 떠나가고 영원한 생명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벧세메스로 가야 하는 소들의 운명도 이렇게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레를 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십자가를 메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나를 위해 담당하셨다는 것을 이 시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재앙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삼상 6:11-12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수레에는 여호와의 법궤와 금 쥐와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함께 실었습니다. 현재 블레셋에 재앙을 내렸던 것들의 형상을 함께 담은 것입니다. 재앙을 짊어진 자가 재앙을 짊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수레에 여호와의 법궤를 실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에 대해서 아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또한 재앙을 상징하는 금 쥐와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실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죽음의 죄들을 몸소 짊어지시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럼 이 소들이 수레를 싣고 향하던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벧세메스입니다.
‘벧세메스’ (בית שמש베이트셰메쉬 1053) 태양의 집, 이라는 뜻입니다. 젖 나는 소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벧세메스로 향하였습니다. 태양의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태양은 빛을 발산하는 물체입니다. 태양은 어둠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집은 안식을 주고 평안을 주는 곳입니다. 이 소들이 벧세메스로 가서 마지막 하나님께 번제로 올려지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가심으로 죄악 된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빛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쉼을 얻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바로 행하여’ (ישר야샤르 3474) 좋게 여기다, 기뻐하다, 바로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암소들은 벧세메스를 향하여 곧바로 출발했습니다. 집에 송아지들이 있었지만 울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목적지까지 달려갔습니다. 이런 소들의 모습을 통해 볼 때에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십자가의 사역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영화를 위해 뒤를 돌아보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생각하셨고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지를 아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좋게 보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역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을 위해서 하셨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들은 즉시로 벧세메스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 때문에 자신의 새끼들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묵묵히 벧세메스로 수레를 끌고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모든 죽음의 재앙을 짊어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셨던 그 발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들은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에 도착하지만 자신의 송아지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제물로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로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만 짊어지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삼상 6:13-14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법궤를 실은 수레가 벧세메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밀을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밀을 수확하는 시기는 5월과 6월 사이에 추수를 합니다. 이 시기의 절기는 칠칠절에 해당합니다. 오순절기가 있는 때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밀을 추수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많은 영혼들을 추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에 말씀을 상징하는 여호와의 법궤가 태양의 집이라는 장소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죽었던 영혼들이 추수되는 것입니다.
‘암소들을’ (פרה파라 6510) 암소,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ר파르 6499) 황소,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젖 나는 암소들은 수레를 끌고 와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재앙의 수레를 벧세메스로 끌고 와서 헌신하였고 이제는 마지막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불태워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위해 죽음의 재앙을 짊어지시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화목 제물로 드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벧세메스로 법궤를 메고 가는 암소를 통해 예수 그리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으며 채찍을 맞으시고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앙들을 몸소 짊어지시고 묵묵히 죽음의 장소로 가셨습니다. 정작 십자가에 달려야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암소가 태양의 집이라는 곳에서 번제로 올려 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제물이 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부정한 곳의 골고다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을 받고 영원히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간 바로 내가 이와 같은 기적을 체험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되어 주님의 고난을 통해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나의 모든 진노의 재앙은 이미 십자가에서 주님이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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