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설교말씀 중에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언제 재림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면서 준비하고 있으면 때가 되매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영접하러 이 땅에 오신다고 했으니 영적으로 열려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17-21)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은 우리에게 “오실 예수”,“오신 예수”,“다시 오실 예수”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에 관하여, 오셔서 사역하신 예수님의 생애에 관하여, 그리고 다시 재림하실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셨고 33년 동안의 지상 생활을 통하여 인간 구원의 대속 사업을 완성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장면은 사도행전 1:9-11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승천은 환상이 아니라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신”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1:9-11을 보면 “저희 보는 데서”라고 했고,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라고 했으며, 12절에 의하면 승천하신 장소가 예루살렘 곁에 있는 감람산이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장엄하고 신비한 승천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우리는 사도행전의 승천 기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였고
둘째는, 사람들이 눈으로 목격했으며
셋째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셨고
넷째는,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갈릴리 사람이라면 어부, 목자 등 소박하고 평범한 서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권모술수나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본 사건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승천의 목격자가 되었다는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만일 권모술수나, 임기응변에 능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들이 승천의 목격자들이 되었다면 보나 마나 그들은 승천 사건을 하나의 환상이나 허상으로 왜곡하고 처리하려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하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했고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20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순박하고 정직한 갈릴리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다섯째는, 승천하신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11 하반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예수”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예수가 따로 재림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보고 있는 이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이고, 승천하실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은 역사적 사건이며 현실적 사건이며 불변의 사건이라는 설명입니다.
여섯째는, 말구유에 오셨던 초라한 초림과는 달리 승천 사건은 장엄했고 화려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전 세계 사람이 목격하는 우주적 사건이며 주님이 심판의 주로 오시는 실로 장엄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승천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제자들은 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1:10을 보면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라고 했고, 그래서 천사들이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11절)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새가 날고 바람이 왕래하는 그 하늘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영원한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텅 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이나 땅에서나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더구나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승천 현장에 있었던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승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틈만 있으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이며 고백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끝마침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하였습니다. 아람어로는 “마라나타”(maranatha)가 됩니다. 그 뜻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입니다.
성경은 메시아로 오실 예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재림하실 예수를 설명하는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납니다.
초림의 예수가 알파라면 재림의 예수는 오메가입니다.
즉, 요한계시록 1:8에서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은 예배 중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거룩하면 그는 올지어다. 누구든지 그렇지 못하면 그는 회개할지어다. 마라나타. 아멘.”
우리는 본문 17-21절 속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값없이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17절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생명수를 받아 갈증을 푸는 것입니다.
전국의 약수터는 매일 새벽이면 줄을 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생수업자들은 날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정수된 물(mineral water)을 사다가 마시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생수라고 믿고 마시는 물속에 대장균이 우글거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제 눈은 1.5 정도로 만드신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을 사물이나 활자나 거리를 식별하고 측정하기에 알맞을 정도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눈이 천리안이 된다든지 현미경이나 천체망원경처럼 된다면 그것은 불행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즉, 제 눈이 현미경이라면 그 흔해 빠진 상추쌈이나 냉면도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유는 현미경 렌즈 같은 눈을 통하여 오만 가지 불순물과 대장균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는 생명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날이면 날마다 샘을 찾아가 물을 길어다 먹기에 지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여인이었습니다. 과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주님을 소망하면서 기다리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여느 날처럼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우물가에서 쉬고 계시던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우물가의 대화는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하셨고 그녀는 이어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날 그 여인은 우물가에서 영원한 생수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7:17을 보면 우리를 생명수 샘 곁으로 인도해 주신다고 했고, 21:6에서는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돈 주고 사 먹어도 갈증 나고 또 오염된 것이 세상 생수입니다만,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값도 없고 또 영생하는 생명의 물입니다. 이 갈증 나고 오염된 세상에서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
누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실 수 있습니까!
본문은 듣는 자와 목마른 자와 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갈망하고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모하고 입을 벌려 받아 마셔야 합니다. 헐떡거리는 사슴처럼 헐떡거리며 생수인 예수를 사모합시다.
2.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가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8절과 19절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 외에 더하는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재앙이 임할 것이며 제하는 사람은 영생에 참예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즉 가감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말이나 사상을 더하면 재앙이 더해지고 빼면 영생에서 빠진다는 것이니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뒤흔들고 가감승제 하는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의 괴수들은 엄청난 재앙과 심판을 받는 것은 물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은 속히 오실 것이며 우리는 아멘으로 응답하고 대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했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응답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성탄 사건이 구원의 출발이라면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은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7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라고 하셨고, 12절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라고 하셨으며, 20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진실로 오셔야 합니다.
이유는 첫째,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는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재림을 믿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독교의 고백 자체가 허위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신실성과 예언의 성취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일 점 일 획도 틀린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예언은 일 점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림인 것입니다.
셋째, 심판은 꼭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살면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상급을 받고 불신과 행악을 일삼던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 역사의 마침표는 언젠가는 꼭 찍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최후 심판이 없다면 악과 불의와 죄가 승리하고 말 것입니다만, 최후의 심판은 의의 승리로 끝나는 것입니다.
넷째, 주님이 재림하셔야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영원한 왕국의 도래이며, 그날은 그리스도인의 개선의 날이며 입성식의 날입니다.
문제는 마라나타의 신앙을 확립하고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 오시느냐에 대하여 신경 쓰지 맙시다.
언제 오시더라도 마라나타의 신앙만 준비되면 됩니다.
베들레헴에 오셨던 예수, 부활 승천하신 예수,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예수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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