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11장 하나님 말씀] 바벨탑 사건(창 11:1-4)

체데크 2020. 4. 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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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1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서 교만하고 오만해진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교만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11:1-4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명제: 인간의 공명심은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인간들이 세상에서 부패되어 갈 때에 하나님은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교제하기를 원했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까지 세상의 죄악에 물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찾기가 너무나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나님의 마음은 이 세상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중에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이 노아가 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을 하셨고 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방주 안으로 노아의 8식구를 들어가게 하셨고, 정결한 짐승 암수 7마리와 부정한 짐승 2마리씩 방주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40일을 밤낮으로 비를 퍼붓고, 하늘의 창이 열리고 땅의 샘들이 터져 나와 온 땅이 홍수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홍수의 물은 365일 동안 있었습니다. 365는 영원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자들은 영원히 저주받은 기간이고 하나님을 섬긴 자들은 영원히 구원받은 기간입니다. 방주 안에는 8명이 들어갔습니다. 8은 다시 시작하는 수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노아의 8가족으로 세상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과 짐승 외에는 아무것도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영원히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헬라어로 Ιησους(이에수스 2424)인데 이 단어를 숫자로 합하면 888이 나옵니다. 이 숫자는 영원의 숫자이고, 부활의 숫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 부활을 것을 말씀하셨고, 영원히 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영원히 사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종말 때 주님의 심판이 일어나면 교회 안에서 구원받은 백성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때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공력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없어지며 오직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만 남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밖에서 구경만 하고, 마당만 밟고, 거지처럼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이런 신앙은 결국 마지막 때에 심판받아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 고통을 영원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저와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심판을 면하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죄인들은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지 아니하면 영원히 심판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듣고 마음에 믿어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주의 백성들은 주님을 구원자로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고 노아의 가족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아들 셈, , 야벳, 을 통하여 다시 민족들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고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많은 민족들이 생기게 되고 세상으로 퍼져나가면서 노아의 장남인 야벳의 족속들은 유럽 쪽으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물질과 번성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함의 자손은 아프리카 쪽으로 퍼져나가면서 국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의 저주로 인하여 힘들고 어렵게 사는 민족이 됩니다. 셈의 후손들은 종교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이 민족들은 아시아 쪽으로 퍼져나가면서 복을 받게 됩니다. 3대 종교가 셈의 후손에서 나왔습니다. 불교, 유대교, 기독교가 나왔습니다. 세 아들의 후손 중에서 하나님은 셈의 후손들을 들어 사용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도 셈의 후손에서 오셨습니다.

 

[사사 드보라 힘이 되는 말씀] 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개선가(삿 5:1-31)

사사기 5장에서는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승리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솔 왕 야빈에게 고통당했는데 사사 드보라를 통해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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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셈의 후손들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셈의 후손들을 크게 쓰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셈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주님이 나타나셨고 마지막 때에는 다른 셈의 후손이 있습니다. 이 후손이 바로 욕단입니다. 이 욕단 민족을 크게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10: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욕단 민족들이 점점 이동하여 동쪽 산으로 왔다고 했는데 러시아를 거쳐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근처에 까지 와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욕단 민족의 후예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이스라엘 민족이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국화는 무궁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지칭할 때에 샤론의 꽃이라고 합니다. 이 꽃이 무궁화 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무궁화는 중동지역이 많이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랍습니다. 우연이든 아니든 어째든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셈의 후예로서 종교심이 아주 강합니다. 무속신앙의 종교심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바뀌어서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크게 사용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민족들이 형성되어 갈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이라는 말은 아카드어로 하늘의 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이 지역은 이라크 지역입니다. 나중에 바벨론 민족이 자리를 잡는 땅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많은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에서 ‘동방으로’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קדם(케뎀 6924)입니다. 떨어지다, 대항하다, 도망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홍수 심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심판의 저주가 뇌리에 상처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생각에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하여 도망치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쪽으로 점점 자리를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난 곳이 바로 시날 평지입니다.

‘시날 평지’에서 ‘평’이라는 단어는 בקעה(비카 1237)입니다. 잘게 부수어지다, 쪼개다, 분노하다, 무너뜨리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견대로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날 평지에 자신들이 살게 될 성읍과 그 중앙에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성읍과 탑은 하나님에 의해서 잘게 부수어지게 되고, 쪼개지게 되고, 무너뜨려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분노만 일으키게 되는 일만 만들었습니다.

 

이 시날 평지에 우상을 세운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입니다.

 

단1: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바벨론의 신은 달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옛적부터 섬기던 신입니다. 갈대아 우르도 달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곳에서 하나님이 건져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날 땅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땅이 됩니다.

 

그럼 왜 인간들은 이 시날 땅에 정착하면서 자신들의 성읍을 만들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신전들을 만들었을까요?

 

1. 이 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매우 좋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과 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날 땅은 정말 좋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산이 없고 평지이기 때문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곡창지대입니다.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명이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발전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니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만사가 형통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상을 섬기는 쪽으로 많이 쏠리게 됩니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더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다가도 일이 풀리고 환경이 더 좋아지면 교회를 멀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 된 뿌리 깊이 박힌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아지고, 물질이 풍부해져도 주님을 붙잡고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신들의 과학과 문명을 알리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탑을 쌓을 때에 돌을 가지고 쌓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돌을 가지고 쌓았는데 이곳의 탑은 돌을 대신하여 벽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벽돌을 흙벽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에 구워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에서 ‘만들어’라는 단어는 לבן(라반 3835)입니다. 희게 만들다, 정결하게 하다, 자신을 드러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굽는 것은 자신 스스로 굽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벽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1인칭을 사용하면서 나의 공명심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벽돌을 만들면서 희게 만들어지고, 정결하게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벽돌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 스스로 구원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공로를 믿음으로 내가 정결하게 되고, 속죄 받고, 죄악에서 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로,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희게 만드는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공명심에 빠져 스스로 벽돌을 만들어 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렇게 자신 스스로 벽돌을 굽는 사람이 있습니다.

 

‘굽자’ 라는 단어는 שרף(사라프 8313)입니다. 이것도 ‘만들어’ 라는 단어와 꼭 같은 단순능동이고, 미완료입니다. 빨아들이다, 삼키다, 불사르다, 분향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빨아들이고, 삼키고, 불사르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받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죄악들을 내가 스스로 불사르려고 해도 절대 불태울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어성경 단어 성경공부] 거룩한 자(카도쉬)에 대한 히브리어 의미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은 거룩한 자입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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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분향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기도를 해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정욕대로 기도하면 응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자신의 벽돌을 열심히 찍어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벽돌을 만들고 있습니까? 자신을 위한 벽돌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 만든 벽돌은 영원할 것입니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라는 단어에서 ‘돌을 대신하고’ 라는 단어는 אבן(에벤 68)입니다. 반석, 보석, 바위,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반석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석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돌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돌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벽돌은 세월이 흐르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사라집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돌뿐입니다..

 

이렇게 돌을 대신하여 벽돌을 사용했다는 것은 인위적인 인간의 방법으로 탑을 쌓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과학의 힘으로 했다고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하면 보기에도 좋아 보이고 남들이 볼 때에도 너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 라고 하면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갑니다. 그러나 돌은 투박하게 생기고 보기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나의 지식과 지혜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이 풀어지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 반석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위에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인 벽돌과 같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돌 위에 보석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바위와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끝까지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라는 단어에서 ‘역청으로’ 라는 단어는 חמר(헤마르 2564)입니다. 발효시키다, 팽창하다, 부풀다, 큰 법석을 일으키게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진흙을’ 이라는 단어는 חומר(호메르 2563)입니다. 발효시키다, 들끓게 하다, 부어오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똑같이 부풀게 만드는 것은 꼭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흙을 사용하지 않고 역청을 사용했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발효시킨다는 것은 누룩을 넣었을 때에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부풀리고 팽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유익이 없으면 예수님을 얼마든지 버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흙의 신앙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을 쓰는 사람입니다. 진흙은 시멘트를 의미합니다. 시멘트는 굳기 전에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지만 한 번 시간이 흘러 굳어 버리면 정말 강한 존재가 되어 집을 짓는데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결합하기 전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과 성령님과 한 번 결합되고 나면 강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큰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역청은 우리가 잘 아는 아스팔트를 깔 때에 사용하는 검은 액체입니다. 이것은 원유 기름을 짜고 나서 마지막에 찌꺼기가 나오는데 이런 찌꺼기를 모아서 아스팔트를 까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과 결합하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찌꺼기 인생이 되어 구원도 받지 못하고 지옥의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서 돌 대신 벽돌을 열심히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수 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돌과 같은 신앙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진흙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고, 돈을 나타내고, 명예와 권세를 나타내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진흙처럼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니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단단한 믿음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스팔트에나 까는 찌꺼기 인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시멘트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에 사용될 것인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성전에 기둥이 되시고, 성전을 짓는데 쓰임 받는 도구로 사용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자와 창세기] 창세기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특별한 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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