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민수기 33장의 짧은 설교 중에서 이스라엘 진 경로의 장소인 욧바다, 아브로나, 에시온게벨, 가데스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욧바다
민33:33 홀하깃갓을 떠나 욧바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굴이 많은 지역인 홀하깃갓을 떠나 욧바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전을 세상의 도구로 가득 채운 것을 의미하는 홀하깃갓을 떠난 것입니다. 이곳에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하여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던 곳을 예수그리스도의 성전으로 바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면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새롭게 채워 영적으로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욧바다에 진을 친 것을 보면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욧바다’ יטבתה(요트바타 3193) 욧바다, 라는 듯입니다. 이 단어는 יטב(야타브 3190) 안전하다, 기뻐하다, 복을 누리다, 은혜를 얻다, 아름답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욧바다는 시내가 많은 지역으로서 물이 풍부했던 장소입니다.
신10:7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욧바다에 진을 쳤을 때에는 그 땅에는 시내가 많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메마른 땅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내가’ נחל(나할 5158) 시내, 창수, 강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נחל(나할 5157) 택하다, 상속하다, 더럽히다, 수치를 당하다, 누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욧바다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창수를 이루듯이 뜨거운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장소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이며 이곳에서 안전하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은혜를 얻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영육으로 피폐해지고 은혜가 떨어져 있었다면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욧바다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면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영혼에 생수가 강물처럼 부어져 택함 받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욧바다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더럽혀져 수치를 당함으로 우리를 선택하여 주셔서 영원한 천국을 상속시켜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영화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 가운데서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안전한 곳으로 나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고난을 당한 자라면 주님의 영원한 생수로 나오게 된 것이며 영혼이 갈급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렘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며 여호와를 떠나는 자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입니다. 뜨거운 광야 같은 인생을 살면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다면 주님께서 수치당하신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며 영혼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원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광야에 있다면 빨리 생수가 넘쳐나는 욧바다의 장소로 와야 합니다. 이곳에 오면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시내가 있어서 더위에도 걱정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물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더위에도 걱정하지 않으며 철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시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생수에 심긴 우리는 절대 인생의 광야에서도 걱정하지 않고 물 때문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은 마른다고 해도 욧바다와 같은 시내가 많은 장소는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생활도 욧바다와 같은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로나
민33:34 욧바다를 떠나 아브로나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욧바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영적으로 갈증 났던 것들을 흡족하게 채운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욧바다에서는 마실 물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땅을 파면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 수는 없습니다. 가나안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아무리 영육이 만족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 땅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삶이 좋다고 해도 천국만큼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미련을 두고 사는 자들은 영원한 천국의 삶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욧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광야입니다. 정착의 삶이 아니라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욧바다를 떠나야 만이 가나안 땅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미련을 버려야 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아브로나’ עברנה(에브로나 5684) 아브로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בר(아바르 5674) 건너가다, 통과하다, 용서하다, 동행하다, 끌어내다, 배반하다, 제거함을 당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치면서 아브로나에 온 것은 이제 가데스로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하여 건너가야 하는데 아무나 건너갈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지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럼 아브로나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천국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해야 만이 천국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로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들을 가르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이 장소를 통과하지 않고 지나가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지 않는 양들은 모두가 절도며 강도라는 것입니다. 양들은 반드시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죄를 주님께서 담당하시고 용서함을 받아 주님과 동행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들어가는 자들은 주님을 배반하는 행위이며 이들은 구원에서 제거함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영혼의 꼴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브로나의 장소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의지하여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아브로나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인지 버림받은 백성인지를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가는 자들은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자신의 의로 나가서 문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브로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율법의 의로 나가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나가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인정하셔서 광야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에시온게벨
민33:35 아브로나를 떠나 에시온게벨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로나를 떠나 에시온게벨에 진을 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에시온게벨은 항구로서 바다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곳입니다. 이 장소에서 솔로몬과 여호사밧 때에 배들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왕상9:26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왕상22: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에시온게벨’ עציון גבר(에츠욘 게베르 6100) 에시온게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צה(아체 6096) 척추, 견고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 라는 뜻과 גבר(게베르 1397) 장정, 대장부, 뛰어나다, 강성하다, 견고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결론적으로 에시온게벨의 뜻은 용사의 등, 거인의 척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시온게벨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아브로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나온 자들은 영적으로 강성해지고 거인의 척추처럼 힘이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인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척추입니다. 이 척추가 손상을 입으면 힘을 쓸 수가 없고 움직일 수도 없게 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낸 12지파의 수장들이 그곳에 있는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민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 사람들은 육적으로 네피림 후손으로서 거인 족속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갔던 10명의 수장들은 겁을 먹고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거인족속들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 영적인 거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과하여 왔기 때문에 견고하고 강력했습니다. 척추가 강한 영적인 믿음의 거장이 된 것입니다. 반면에 10명의 정탐꾼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강성하지 못하고 영적인 거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으로 거인인 아낙 자손들을 보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삼상17: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사울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맞붙었을 때에 블레셋 진영의 골리앗인 거인 장수가 나와 사울의 군대의 장수와 맞붙어 싸우자고 제안을 했을 때에 사울의 군대들은 두려워나가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능력을 무시했습니다. 그래도 한 명도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골리앗의 외모와 거인이라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네가 모욕하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처단해 주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다윗은 에시온게벨에서처럼 영적으로 거인의 척추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니 외형적인 거인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매를 돌려 육적인 거인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아브로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면 에시온게벨에서는 영적인 거인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물리치며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도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권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실 때까지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능력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힘으로 할 때는 실패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할 때는 영적 거장이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큰일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영적으로 거장의 삶을 살고 교회에서도 척추와 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데스
민33:36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 광야 가데스에 진을 치게 됩니다. 가데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40년 동안 광야를 유린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던 장소입니다.
민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나서 하나님의 허락하신 땅을 악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 갈렙만 빼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40년 동안 광야를 유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돌아다니다가 38년 후에 다시 가데스인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광야생활을 38년 동안 하면서 뼈아픈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땅을 악평함으로 결국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천국을 보고 악평하여 무시하고 모욕하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무시하거나 믿지 않으면 결국은 이 땅에서 고통의 삶을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 광야’ צן(친 6790) 찌르다, 라는 뜻입니다. 신 광야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가나안 땅을 악평했던 것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악평의 사건 때문에 자신들의 삶은 고통당하고 찔림 받는 인생으로 전락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가나안 땅을 악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들 스스로 모두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놓은 것을 거부하고 믿지 못하면 영적으로 고난을 당하고 인생 가운데 찔림 받은 인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인생의 고난과 영혼의 고통을 모두 십자가에서 가져가셨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인생 자체가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의 연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데스’ קדש(카데쉬 6946) 가데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קדש(카다쉬 6942) 거룩하다, 성별하다, 예비하다, 준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 전에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광야에서 고통의 삶을 살 것을 통보받았습니다. 이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성별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데스에서는 가나안 땅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기고 준비하여 성별 된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신 광야에 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으로 온몸을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셔서 고난당하시고 피를 흘려주신 이 고통 때문에 내가 거룩해지고 성별 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3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 받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거룩하게 성별 되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데스에서 거룩하게 성별 되고 준비하여 천국으로 입성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거룩한 행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면서 주님의 행실의 거룩한 것들을 본받아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데스에서 마지막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가데스의 삶을 살면서 주님의 거룩함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거룩해지지 않으면 천국이 나의 천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보혈 안으로 들어와 가데스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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