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민수기 성경주석강해] 서원한 나실인의 성결 규례(민 6:1-7)

체데크 2022. 10. 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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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한 나실인의 성결 규례(민 6:1-7)

 

민수기 6장은 나실인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나실인들은 자기가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실인 서원을 했습니다. 나실인이 되면 독주나 포도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서도 안 됩니다. 자기 몸을 서원한 날까지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민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성 경: [6: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여호와께서...일러 가라사대 - 이 말은 이하 제시되는 모든 말씀의 신적 기원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성경은 여호와의 계시 말씀이 기록된 책이기에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고 오고 오는 성도들에게 참된 진리를 교훈해 주고 있는 것이다.

민6: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성 경: [민6: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남자나 여자가 -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그들의 규범(율법)은 대부분 남성 우위의 내용들로 가득 메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남자는 남녀 두 성(gender)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언약의 체결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책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2:15-17; 3:11). 그런데 '나실인'(Nazirite)에 관한 규정을 다룬 본문에는 특이하게도 남자와 여자, 두 성()을 동일한 위치에 두고 같은 의무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나실인 제도는 당 시대의 종교, 사회적인 관행(慣行)을 초월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자유로운 만남과 자발적인 헌신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나실인 제도에 나타난 바 이러한 남녀 동등이라는 파격(破格)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 앞에서는 인격적인 면에서 결코 성(性)차별이 있을 수 없다(그러나 기능적 구별은 인정해야 한다, 2:23; 3:16-19). (2) 각 개인은 누구에게도 예속됨이 없는 독립체로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3) 이러한 인간의 인식과 관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렇기에 이 자유로움은 인간의 권리 주장이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 특별한 서원 - 여기서 '특별하다'(팔라)'크고 경이롭다', '구별하다', '어렵다'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뒤에 연결된 서원(네데르) 곧 하나님께 대한 약속이 매우 성()스럽고 가치 있는 것이며, 아울러 그 서원 이행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임을 암시한 말이라 볼 수 있다.

󰃨 나실인(나지르) - 이는 '구별하다'(separate), '분리하다'(set apart)란 뜻을 지닌 동사 '나자르'에서 유래된 말로 곧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세상과 분리된 자'란 의미이다. 즉 세상적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나실인 제도가 정착되기 전의 구약 초기 시대에는 신성한 종교적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능을 부여받은 고귀한 신분(:요셉)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49:26). 그런데 후대에 와서 나실인 서원 규약이 율법에 의해 규정되고 표준화되면서 자신을 종교 도덕적으로 구별시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될 수 있었다. 혹자는 이 나실인 제도가 애굽이나 당시 이방 국가의 금욕 서원 또는 머리털 봉헌 서원 등의 관습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나(Spencer, Knobel), 근거가 없는 견해이다(Keil & Delitzsch, Vol. 1-3, p. 34). 한편 나실인 중에는 삼손(13:5)이나 세례요한(눅 1:15)등과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나실인이 되어 평생을 헌신한 자도 있었고, 사무엘처럼 부모의 서원에 따라 그렇게 된 자도 있었다(삼상 1:11). 물론 본장에서는 자원하여 나실인이 될 자들이 지켜야 할 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실인의 서원 제도는 다른 모든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이 그러하듯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완성된다(12:1-8).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이 하나님의 섬기는 것은 의식적 구별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구별되어 새로이 거듭난 심령으로 써이다(롬 7:5,6: 고후 3:6-11).

󰃨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구별하려면'(RSV, to separate himself to the Lord)이다. 이 말은 나실인의 헌신 대상 및 목적을 보여 주는 바 곧 그것은 순전히 '여호와를 위해서, 여호와께'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일정한 장소나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출애굽 여정 동안에는 주로 성막 중심의 봉사를 했던 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자신의 서원을 구체화했다. 한편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 자신을 구별하는 일에 타인의 조언(助言)이 필요치 않았다. 다만 헌신을 받으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바르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구별한다는 것은 (1) 항상 (2)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3) 속된 것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거룩한 삶을 일컫는다.

민6: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성 경: [민6: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 여기서 '멀리하며'(야지르)란 말은 '분리하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의 사역형 능동태(Hiphil)의 미래 구문으로서, (앞으로 서원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멀리하라', '철저히 멀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실인은 모든 술을 절대 입에 대지 말아야 했으며 특히 포도나무에서 얻어진 어떤 종류의 소산물도 먹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실인의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제사장처럼(10:9) 마음의 청결과 절제를 유지하여 맑은 정신으로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명령의 더 깊은 의미는 술로 대표되는 '모든 육적인 유혹'을 전적으로 멀리하라는 데에 있으며(35:6, 7). 동시에 자신들의 '가장 큰 기쁨'은 오직 여호와께 두라는 데에 있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포도가 상징하는 바를 알아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즉 포도는 기쁨, 축제, 풍요 등을 상징했으며(10:19; 2:1-11), 동시에 그 발효된 알코올 성분으로 인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과 세상적인 사치(9:21; 28:7)를 상징했다. 그러므로 정신을 혼미케 하며 세상적 쾌락과 사치(삼상 25:18, 36; 3:1)를 조장하는 포도주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구별된 자의 당연한 도리였다. 사실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술(세상)이 제공하는 기쁨은 관심 밖의 일이 된다. 한편 '독주'(쉐카르)는 포도주와는 구분되는 기타의 독한 알콜성 음료로써 마시는 자를 혼미케 할 정도의 강력한 술(strong drinks)을 총칭하는 말이다(20:1; 28:7).

󰃨 포도주의 초 - 여기서 ''(호메츠)'신맛이 나다', '발효하다', '알록달록하다'는 뜻의 '하메츠'에서 유래한 말로써 '포도주'(헤메르)보다 알코올 농도가 낮은 신 포도주였을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빵을 먹을 때 찍어 먹는 양념으로 사용되곤 했다(룻 2:14).

󰃨 독주의 초 - 역시 '포도주의 초'와 동일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마시지 말며(로이쉐테) - '마시다'는 말은 단순히 '들이키다'는 뜻 외에 '술취하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앞의 '멀리하며'란 말과 동의어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강조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포도즙(미쉐라트 아나빔) - 원문대로 해석하면 '익은 포도를 넣고 발로 짓이겨 뽑아낸 즙을 가리킨다(13:15; 24:11; 5:2).

󰃨 건포도 - 이것은 호화롭고 부유한 계층이 즐기던 식료품이었다(삼상 25:18). 물론 이것을 섭취한다 해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 숭배자들이 추구하는 향락을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했다는(3:1) 점에서 구별된 자의 식물로는 적합하지 못했다.

민6: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성 경: [민6:4]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 나실인의 제한된 생활 규범은 서원한 기간 동안 철저히 이행되어야 했다. 만약 이 규범을 어기면 그는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서원을 해야 했다(12). 그러나 서원한 기간을 끝낸 후에는 그들도 포도의 각종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은 (1) 나실인도 그의 서원 기간이 종료되면 평범한 일반 백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2)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조건 일상의 생활까지 제한하실 정도로 지나친 분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실인의 금지 규례를 서너 가지로 정하여 주신 것은 흔히 이방의 금욕 종교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몸을 자학(自虐)하는 갖가지 금욕 규례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몸에 굴레를 덧씌우는 그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한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 씨나 껍질이라도 - 혹자에 의하면 팔레스틴에서는 포도의 씨와 껍질을 이용하여 술이나 기타 음식물을 만들었다고 한다(Pulpit Commenrtary). 여하튼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하찮은 소산물일망정 금하라는 것이다. 즉 나실인들에게는 포도나무의 모든 소산, 곧 그것으로 대표되고 상징되는 세상적인 모든 쾌락으로부터 '절대 성결'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은 조그마한 유혹의 가능성마저 배제해야 한다.

민6: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성 경: [민6: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삭도를...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 여기서 '삭도'(타아르)란 '발가벗기다', '없애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에서 유래한 말로써 주로 면도용 칼을 의미한다. 한편 나실인이 왜 머리를 깎아서는 안되었으며, 반드시 길러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랑게(Lange)는 나실인이 머리털을 기른 것은 생명의 고상한 힘, 곧 하나님의 주권과 승리의 화환(花環)을 상징하는 머리털(고전 11:3-7)을 기름으로써, 자신을 주장하는 자가 세상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의 관념으로 머리털은 피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상징했기 때문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행위는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경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Fairbaim, Baumrarten). 한편 길게 자란 머리를 '힘과 충만한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Keil). 왜냐하면 살아 있는 존재만이 머리카락을 생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실인의 머리를 기른 것은 '자신의 여호와에 의해 조성된 그분의 소유로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 바쳐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표식으로써, 머리털은 곧 여호와를 위하여 쓴 관()이라 생각할 수 도 있다. 실례로 평생 나실인이었던 삼손 같은 경우, 그의 머리털은 카리스마적인 신적(神的) 능력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16:17). 결국 나실인이 머리를 깎지 않은 것은 (1) 자기 위에 유일한 경배 대상임을 나타낸 것이며 (2) 또한 하나님만이 자기 생명과 힘의 유일한 근원임을 인식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그는 거룩한즉(카도쉬 이헤에) - 직역하면 '성결하게 되었으니', '봉헌되었으니'라 할 수 있다. 즉 서원한 기간 동안 그는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것도 아니었고, 또한 여타의 주권자도 있을 수 없었다. 오직 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했다. 이러한 요구는 오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실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영적 나실인인 것이다.

󰃨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 이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대머리와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리는 것은 수치스럽고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으며(왕하 2:23). 죄로 오염된 이방 문화의 부산물로 받아들여졌다(레 21:5). 반대로 머리를 전혀 깎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나실인과 같은 특정인에게만 허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44:20). 사실 히브리인들은 애굽과 같은 고대 다른 이방 족속들과는 달리 수염과 머리를 깎는 관습이 있었다(Keil).

민6: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민6:7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성 경: [민6:6,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 나실인은 그 정한 기간 중에는 비록 가장 친한 친지들(부모, 형제, 자매 등)이 죽었을지라도 그 시체와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나실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곁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는 정결케 하는 날 곧 제7일에 머리를 깎아버리고 제8일에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려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제해야 했다(9-12). 왜냐하면 주검(시체)은 결국 죄악이 빚어낸 결과이므로(6:23) 의식상 부정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실인이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의미상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을 제사장 성별 규례에 대한 기록인 레 21장과 비교할 때, 나실인은 심지어 대제사장에게 요구되는 사항까지(21:1-12) 자신들의 의무 조항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마저 금지시킨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부모, 형제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지 결코 부모, 형제와의 정리(情理)를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뜻은 아니다(8:21,22; 10:35-38).

󰃨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 이 말은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 하여 온전히 봉헌한다는 외적이고 상징적인 표시로써 깎지 않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그 머리에 관유로 기름부음 받아 성별 된 제사장의 머리(21:12), 또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씌어진 ''()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29:6; 슥 6:11). 즉 나실인의 긴 머리털은 하나님의 소유됨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인식표였다. 한편 '구별하다'란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화관'(花冠)이나 대제사장의 ''()을 뜻하는 단어 '네제르'가 파생된 사실(29:6; 21:12)은 위의 견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머리'가 부정케 된 것은 그의 전인격이 부정케 된 것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시체로 오염된 자는 구별된 자로서의 표식이자 전인격의 상징인 머리털을 깨끗히 밀어냄으로써 부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9).

[요나 2장 강해설교말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욘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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