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14장 예수님 말씀] 오병이어의 기적(마 14:1-36)

체데크 2021. 11. 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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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에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과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과 예수님의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게네사렛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육으로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마 14:1-36)

1-12, 세례 요한의 죽음

[1-5] 그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 . . .

그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이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들 중 하나인 헤롯 안디바이다.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와 요단강 동쪽의 베뢰아 지방을 다스렸다. 다른 아들들로는 팔레스틴 북동쪽의 이두래와 드라고닛을 다스렸던 헤롯 빌립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렸던 헤롯 아켈라오가 있었다.

전에 헤롯[헤롯 안디바]은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헤롯 안디바의 처음 아내는 아라비아의 아레타스 왕의 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헤롯은 처음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나님의 사람 요한은 헤롯의 이 잘못을 용감하게 바로 지적하였고 그 지적 때문에 그는 옥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 하였으나 무리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였다. 마가복음 6:19-20에 보면, 실상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고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였다. 악인들은 자기 양심에 비추어 옳은 일을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고 그들의 말과 여론을 더 두려워한다. 일반 대중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는 자를 그 나라의 왕과 왕후가 죽이려 했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었다.

[6-8]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 . . .

헤롯은 생일을 맞아 잔치를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생일을 축하하며 잔치를 연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게 감사함이 없는 생일 축하는 무의미하다. 불경건한 자의 생일은 복이 아니고 지옥을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일이 영원한 천국의 삶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생일 축하는 의미와 가치가 없다.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은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다. 헤롯은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로 허락했다. 헤로디아의 딸은 자기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하였다. 왕은 허세(虛勢)로 한 자기의 맹세에 자기가 걸려 넘어졌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 요한을 미워하여 옥에 가두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9-11]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 . . .

왕은 근심하였다. 그것은 군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고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그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헤롯은 공의의 판단과 처리보다 자기의 명예와 체면을 더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권력을 남용하여 하나님의 사람 요한을 죽이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요한의 목은 잘렸고 그의 머리는 소반에 담겨 왔다. 사람의 독한 미움과 복수심은 기어코 이런 끔찍한 일을 만들고 말았다. 사람은 만물보다 더 악하고 부패한 존재이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옥중에서 목베임으로 그 생을 마쳤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한을 위해 작정하신 생애의 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영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을 것이며, 의로운 순교자의 죽음 후에는 영광과 큰 상급이 있다.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 . . .

요한의 제자들은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님께 고하였다. 세례 요한이 죽기까지 그를 따른 제자들이 있었다. 메시아가 오셨으나 그들은 아직 메시아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요한의 시대와 예수님의 시대는 얼마 동안 중첩되었다. 요한 자신이나 그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이 죽은 후부터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것 같다. 이제 한 시대는 갔고 한 시대가 왔다. 세례 요한의 시대가 끝났고 메시아의 시대가 왔다.

우리는 헤롯의 악행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음행하거나 간음하는 자,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생애가 하나님의 작정대로 됨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다 순교자는 아니지만, 세례 요한처럼 순교로 생을 마치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작정하셨든지 간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오직 믿음과 계명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13-21, 5병2어(五餠二魚)의 기적

[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 . . .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서 목베임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으셨고 헤롯이 자기를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는 소식도 들으셨을 것이다. 그는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가셨다. 무리들은 그가 어디 계신다는 말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그를 좇아갔다.

예수께서는 나오셔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구약교회는 부패되어 있었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들같이 근심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주께서는 그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의 신적 능력으로 그들의 병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15-18]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 . . .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나아와 말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저녁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오늘날 교인들과 달랐다. 제자들도 그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하지 않았고, 단지 식사시간이니까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말하였다.

그 방황하며 갈망하는 무리를 위해 주께서는 자리를 피하거나 그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히려 그들의 육신적 양식에 관심을 가지셨다. 그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말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것은 한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것이었다(6:8-9). 그 떡 다섯 개는 그 무리들에게 말할 필요조차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그 많은 무리들을 배부르게 먹이실 수 있었다.

[19-21]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 . . .

주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축사한다는 원어(율로게오)감사한다는 뜻이다. 주께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음식물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그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주었다. 사람들은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주님의 떡 기적은 겨우 배고픔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고 무리에게 배부름을 주는 것이었다.

떡을 먹은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다. 장년 남자만 약 5천명이었다. 원문에는 ’(호세이)이라는 말이 있다(KJV, NASB). 오늘날과 같이, 그 당시에도 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거기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리는 만 명이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숫자이다. 그 많은 무리들이 그 저녁에 놀라운 떡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이 일에 산 증인들이었다.

본문의 내용은 분명히 떡 기적이다. 그것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문자적으로 떡 기적 사건이었다. 본문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 만 명 이상을 먹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한 알의 씨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 된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시다(42:2). 예수께서 떡 기적을 행하신 것은 그가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으로 사셨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떡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자.

둘째로, 떡 기적은 하나님께서 영육의 양식을 풍성히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증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계의 생물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섭리자이시다(시 104:25-29). 그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6:11).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6:31-33).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성경의 풍성한 교훈과 육신의 양식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을 주실 것이다.

22-33, 바다 위로 걸어오심

[22-24]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 . . .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 그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육신적으로는 피곤하셨을 것이지만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저물었고 그는 아마 여러 시간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산에 혼자 계셨다. 그는 신성(神性)을 가지셨으나 기도하기를 힘쓰셨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얻는 길이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 있었다. 24절에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라는 구절은 헬라어 전통본문에는 바다 가운데 있어라고 되어 있다(KJV). 갈릴리 바다는 타원형 바다인데, 남북의 직경은 약 21킬로미터 즉 합정동에서 안양까지이며, 동서의 직경은 약 11킬로미터 즉 합정동에서 뚝섬까지인 큰 바다이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서 거센 바람과 흉흉한 물결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전날 놀라운 떡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이 그 기적의 감격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었던 때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 바다는 항상 안정이 없다. 세상은 항상 안정이 없고 평안과 환난이 번갈아 찾아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훈련 과정이다.

[25-27]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 . . .

밤 사경(四更) 즉 새벽 3시부터 6시 즈음에 예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그는 밤새 산에 계셨고 새벽녘에 제자들에게 오신 것이다. 그는 어려움 당한 제자들을 위해 급히 바다 위로 걸어서 오셨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증거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바다 위로 걸어오게 하실 수 있으시다.

제자들은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고 말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질렀다. 예수께서는 즉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잠시라도 그들을 놀라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거센 바람과 물결로 인해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도우려고 오신 것이었다.

[28-31]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 . . .

그때에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청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소박한 베드로의 믿음의 요청을 거절치 않으시고 그에게 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잠시 바다 위로 걸었다. 그는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물 위로 걸어본 자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얼마 걷지 못하여 ‘거센’(전통본문)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며 외쳤다. 예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주시며 그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성도가 세상의 어려운 현실만 보면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낙망하며 시험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32-33]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 . . .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다. 그러자 바람이 그쳤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바른 고백이었다. 제자들을 돕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확신하자. 바다 위로 걸어오실 수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경의 진실한 증거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어려운 일이 많은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과 예수님만 믿고 살아가자. 제자들을 위해 물 위로 걸어서라도 오셨듯이, 주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오실 것이다(41:10; 43:1-2).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굳게 믿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산 기도와 철야기도를 힘쓰신 것을 본받아, 연약한 육신을 가진 우리는 기도하기를 힘쓰자.

34-36, 옷가에 손대는 자들을 다 고치심

[34-36]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곳 . . . .

그들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그곳 사람들은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고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었다.

예수께서는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육신에 병든 자들도 많이 고쳐주셨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의 능력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지!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그 불쌍한 여인만이 아니고,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했고 손을 댄 자는 다 나음을 얻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거한다.

[누가복음 헬라어 성경 강해] 마리아가 하나님께 찬송함(눅 1:46-56)

 

[누가복음 헬라어 성경 강해] 마리아가 하나님께 찬송함(눅 1:46-56)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아이를 잉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메시아를 낳게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큰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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