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12장 아브라함 설교말씀] 떠나는 신앙(창 12:1-4)

체데크 2020. 4. 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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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12장 아브라함 설교말씀 중에서 아브람이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내용 속에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명제 :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떠나는 신앙이다.

목적 :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떠나는 신앙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떠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입니다. 이 아버지는 우상을 깎아서 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 남부에 위치한 성읍이며 달 신예배의 중심지이고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여기에서 אור(우르 218)라는 단어는 불꽃, 밝아지다, 영화롭다 광채가 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대아 우르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데라가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데라는 창세기 1131절에 보면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롯과 며느리 그리고 아브람과 사래를 데리고 살기 좋은 땅을 놔두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다가 하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데라는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습니다.

 

여기에서 הרן(하란 2039) 이라는 단어의 어근을 찾아가 보면 불태우다, 말라버리다, 타버리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데라는 아브람과 함께 하란에 머물면서 자신을 아브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을 불태운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면서 명예와 부를 태워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세상의 부귀영화를 불태우고 예수님께로 오는 신앙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란에서 데라와 같이 살고 있는 아브람을 하나님은 부르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이르시되’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문에는 ‘이르시되’ 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이 말을 강조하기 위하여 먼저 썼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하나님께서 칼 단순능동형으로 직접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끝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부르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람을 하란 땅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항상 여러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나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한 명씩 각자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돌로매, 레위, 12제자를 각자 부르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도 각자 부르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각자의 믿음으로 각자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 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도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부릅니다. 엄마가 자녀를 불렀다면 이유가 있습니다. 밥을 먹으라고 하든지, 심부름을 시키려고 하든지 반드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실 때에 목적 없이 부르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친척들이 모여 사는 씨족사회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힘을 합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놔두고 아들이 떠난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동이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런 것들이 많이 희석이 되었지만 과거에 우리나라도 유교문화에 젖어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3년 동안 무덤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너의 아버지를 버리고, 너의 고향을 버리고, 너의 친척을 버리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어디로 떠나야 합니까? 현재의 삶을 모두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라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ילך(얄라크 3212) 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칼형 능동형으로 사용되었고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명령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행하다, 섬기다, 준행하다, 청종하다, 동행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마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재산을 버리고, 아버지를 버리고, 본토 땅을 버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결단이 아니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대상 15장 설교 말씀] 미갈이 다윗을 경멸함(대상 15:1-29)

역대상 15장에서는 다윗이 오벧에돔에 집에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오려고 한다. 레위 사람들을 소집하여 법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 메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그때 다윗은 기뻐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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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강하게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든 결단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과 이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의 것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아브람이 결단했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마10:37-38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합당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은 구별시키기 위함입니다. ‘달 신이 득실거리는 우르와 하란에서 빼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보다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제일 사랑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상들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우상에서 속히 떠나야 합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보여 줄’ 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은 ראה(라아 7200)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필형으로 사역능동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람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완료 시제입니다. 보여주신 것이 완료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보여주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선을 즐기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 아브람은 심정이 답답합니다. 육적인 모든 것을 끊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기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땅을 지시하시고 아브람의 마음에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람은 가는 것입니다.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앞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순종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길을 나선 것입니다.

 

아브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길을 떠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이 약속을 받은 후에 아브람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번성의 약속입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재 아브람은 아들도 없습니다. 자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브람의 나이는75세입니다. 사래의 나이는65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나이로 따져보면 아브람과 사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전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상태에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복을 주어’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ברך(바라크 1288)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피엘형으로 강조능동으로 쓰여 졌습니다. 그리고 미완료시제이면서 단수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축복을 계속적으로 주시겠다는 것이고 2인칭으로서 너에게만 혼자 아주 강력하게 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바라크의 뜻에는 하나님께 기원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 무릎을 꿇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언제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께 찬양할 때, 무릎을 꿇을 때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을 때에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전혀 자식이 없을 때에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은 언제 옵니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복이 오지 않습니다.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름이 창대 하게 되는 복을 받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떠나기 전에 너의 이름이 온 천하에 창대 하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열심을 다합니다. 명예의 욕심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온 천하에 내기 시작합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악한 습성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이름을 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무너트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온 천하에 너의 이름이 창대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단어 ‘창대 하게’ 라는 단어는 גדל(가달 1431)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도 피엘형 강조능동형으로 사용되었고 미완료시제이며 1인칭 단수로 쓰여 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이름을 퍼지게 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뜻은 위대해지다, 커지다, 성장하다, 존경 받다, 강력해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위대해지고, 커지고, 존경 받게 되고, 성장하고,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려고 하면 쪼그라들고, 멈추고, 힘들고,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우리도 아브람처럼 믿음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셋째로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ברך(바라크 1288)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피엘형으로 강조능동형 분사로 진행형으로 쓰여 졌습니다. 복수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내가 복을 내리고’ 라는 단어도 ברך(바라크 1288) 입니다. 이 단어도 피엘형 강조능동형인데 미완료시제로서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에게 복을 강하게 계속적으로 내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남에게 복을 선포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기를 원해야 나도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강하게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잘되기를 기도해주고 복을 선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קלל(칼랄 7043)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도 피엘형으로 강조능동형으로 분사형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저주가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뜻은 하찮다, 시시하다, 보잘 것 없다, 가볍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저주는 사람을 하찮게 보고, 시시하게 보고, 보잘 것 없이 보고, 가볍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내가 저주하리니’ 라는 단어는 ארר(아라르 779) 입니다. 이것은 칼형 능동형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저주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남들을 저주하면 하나님은 능동형으로 바로 저주한 그 사람을 저주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고 복을 빌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을 얻을 것이니라’ 라는 단어도 ברך(바라크 1288) 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동사는 닢알형으로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3인칭 복수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료형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아브람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복을 받았고, 번성의 복을 받았고, 이름이 창대 하게 되는 복을 받았고 복의 근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브람이 받은 복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순종함으로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앞에 순종하여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75세에 자신의 아버지 데라를 놔두고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데라의 나이는145세입니다. 아브람이 떠나고 하란에서 60년을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본토와 친척집을 버리고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나이75세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을 따라 갔고’ 라는 단어도 나옵니다. 이 단어는 칼형으로 와우접속사로 이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로 행동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시로 행동에 옮겨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위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바로 영적인 삶을 위해서 떠나는 것입니다. 죄악가운데서 떠나야 합니다. 육적인 삶에서 떠나 영적인 삶으로 가야 합니다. 세상과 물질을 의지하는 삶에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으로 떠나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따라 떠나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물 설교] “에노스(אנוש에노쉬)”(창4:25-26)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 인물 중에 에노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에노스는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있는 사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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