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6장 노아 인물 설교말씀 중에서 노아의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은 신앙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합니다.
창 6:8-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명제 : 노아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
♣ 목적 : 나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발견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은 노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과연 노아는 어떤 사람이기에 창세기에 다섯 장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노아를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특별한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만나주시는 인생, 특별히 생각하는 존재가 될 때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특별히 인정을 받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가를 오늘 이 시간 노아의 삶에서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보시고 한탄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딸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들과 결혼했습니다.
창 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과 자신 마음대로 세상의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아내를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도 타락의 길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내를 판단할 때 믿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눈으로 보고 육신의 아름다움에만 홀딱 반해서 아내들을 삼고 있으니 결국 결혼을 해도 가정은 불신자들로 채워지고 자녀들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대부분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결국 남자들의 신앙도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후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함께 하지 못하고 빛과 어두움이 사귀지 못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함께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는 모두가 세상의 쾌락과, 육신적인 즐거움에 빠져 살면서 영적인 하나님의 일에는 한 명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에노스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신앙과 믿음은 사라지고 육신적인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악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십니다.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한탄하시고 라는 단어는 נחם(나함 5162)입니다. 슬퍼하다, 애도하다, 불쌍히 여기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보시고 즉시로 한탄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들 때문에 한탄이 나오는데 슬퍼하는 마음과, 애처로운 마음과, 불쌍한 마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는 단어는 עצב(아차브 6087)입니다. 몹시 슬퍼하다, 섭섭하게 하다, 슬픔에 잠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로 인간을 보고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인간을 보면서 섭섭하게 되고, 몹시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던지 그것이 자기에게 다시 슬픔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한탄하게 하거나, 나를 통해서 마음에 근심하게 하시는 이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는 말을 한다거나 내가 세상을 좋아하여 세상의 육신적인 쾌락에 빠져 살면서 영적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런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은 나를 보시고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황이 이럴 때에 하나님은 다시 세상을 돌아보고 계십니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자가 없는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자가 없는가? 하고 세상을 둘러보고 계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노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라는 단어는 נח(노아흐 5146)입니다. 이 단어는 נוח(누아흐 5117) 평안함을 얻다, 강림하다, 안식하다, 휴식,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노아는 이렇게 이름처럼 영적인 평안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노아를 구원시키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안식하는 복을 얻게 됩니다. 노아의 인생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 영원한 휴식을 누리는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을 사는 우리도 노아처럼 주님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면서 살 것을 말씀하고 있고,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안식하면서 휴식을 갖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노아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께’ 라는 단어에서 ‘께’라는 단어는 עין(아인 5869)입니다. 눈, 시력, 주목하다, 바라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안에’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 안에 노아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쓸어버리기 전에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없는가를 둘러보았는데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를 주목하여 보았고,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발견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께 발견되게 된 것입니까?
‘은혜를’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חן(헨 2580)입니다. 은혜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보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시고, 노아만큼은 살려주시기로 작정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 편에서는 모두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노아만큼은 죽이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노아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고 할지라도 나만큼은 살려주시는 그런 행실과, 믿음과,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노아를 살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입었더라’ 라는 단어는 מצא(마차 4672)입니다. 도착하다, 얻다, 획득하다, 받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는데 완벽하게 받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노아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서, 구원을 얻게 하시고, 획득하게 하셔서 노아가 구원을 받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단독 사역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노아가 의롭게 살려고 노력도 했고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보셨기에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요, 강권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인생이라면 노아의 삶처럼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럼 노아는 어떻게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의 눈에 발견된 것일까요? 이것을 알고 우리도 그렇게 노아처럼 인생을 살면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게 하는 것이고,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이 되는 것이고,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의인이라면 어떠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까? ‘의인’ 이라는 단어에서 ‘의’는 צדיק(차디크 6662)입니다. 올바르다, 의롭다, 정결하다, 정당한 이유를 가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노아의 삶은 항상 올바른 삶을 살았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든지 안보든지 상관없이 열심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을 지켜나간 사람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노아를 보고 한심한 사람이고, 미련한 사람이고, 인생을 참 힘들게 산다고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사업을 운영하는데 자기는 철저하게 세금을 계산하여 한 푼도 탈세하지 않고 국가에 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탈세하면서 사업을 운영하여 많은 돈을 모으고 있지만 노아의 신앙과 삶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때로는 답답하고, 멍청하다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초지일관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고, 의롭게 살려고 힘을 쓰고, 자신을 항상 정결하게 살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살다 보면 영적인 것은 무뎌지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떨어지고 기도로 되지 않고, 말씀은 나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노아는 이런 영적으로 해로운 것들은 절대 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깨끗한 것을 받으셨습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 흠 없는 것을 드리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항상 영적으로 깨끗한 흠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예수의 피로 항상 나의 죄를 씻고, 세상의 문화에 빠져 살지 말고, 육신을 더럽히는 그런 잘못된 음주문화, 이런 것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영혼을 망가지게 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발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항상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놀림받지 않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행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신앙적인 행동들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감동 주는 이런 언행일치의 삶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이렇게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 발견된 것입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 라는 단어에서 ‘완전한’ 이라는 단어는 תמים(타밈 8549)입니다. 완전한, 흠 없는, 진실한, 정직히, 라는 뜻이 있습니다. 노아의 삶은 항상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가 되기를 노력했습니다. 신앙 면에서도 사람을 바라보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흠 없는 삶을 살기를 늘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니 인생을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 되게 살고, 정직히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패악하고, 죄를 짓고, 탈세하고, 세상의 욕심에 빠져 살면서 교만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자신들이 나타나고, 자신들의 명예를 높이고, 권세를 높이고, 집을 높이고, 부를 높이면서 살 때에 노아는 영적으로 살기를 원했고, 세상에서 부귀영화가 없더라도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높이기에 힘을 썼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해서 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인생을 사니 하나님께 발견된 것입니다. 노아의 삶이 얼마나 귀한 인생입니까? 우리도 노아의 삶을 본받아서 이렇게 살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지금 노아와 같은 사람을 찾듯이 우리를 찾아내어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는 단어에서 ‘동행하였으며’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חלך(할라크 1980)입니다. 걸어 올라가다, 걸어 내려가다, 돌아다니다, 걷다, 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삶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데 자기에게 유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 다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곳마다 노아는 따라다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가는 것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절대 맞지 않아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에도 순종할 수가 있었습니다.
노아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것을 버리고 늘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려고 노력했더니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노아처럼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서 사는 인생이 아니고, 세상의 쾌락과 욕심을 위해서 사는 인생도 아니고, 영적인 삶을 위해서 사는 인생,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갈지라도 나는 오직 주님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는 언행일치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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