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신약성경 산 설교] 예수님의 산상수훈 ‘그’ 산 ορος(오로스)

체데크 2021. 2. 1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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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성경의 산 중에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가르쳤던 그 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산은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쳤는데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그 산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쳐주신 것을 묵상하면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산 ορος(오로스)

 

명제: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성화의 삶을 가르치기 위해 올라가신 산이다.

목적: 우리들도 이 산에서 가르쳐주신 말씀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오르시게 됩니다. 이 산에 오르셔서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올라 처음으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셔서 앉으시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게 됩니다.

보시고οραω(호라오 3708 동사, 분사, 과거, 능동, 주격, 남성, 단수) 보다, 알리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산에 올라가셔서 무리들에게 천국에 대한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신 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무리들을 보시고 있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αναβαινω(아나바이노 305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 단수, 3인칭) 올라가다, 향하다, 생각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산을 향하여 예수님이 올라가시는 것은 많은 생각을 가지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맹목적으로 산에 오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국복음을 무리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시면서 산에 올라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이 산에 올라가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가르치실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아시고 어떻게 하면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가르치는 말씀과 다르고 쉽게 가르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 올라가셔서 무리들을 향하여 앉게 되는 것입니다.

 

앉으시니καθιζω(카디조 2523 동사, 분사, 과거, 능동, 소유격, 남성, 단수) 앉다, 머물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산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산에 머무르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에 대한 말씀들을 무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앉으셔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무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에 앉으시니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천국의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가르쳐διδασκω(디다스코 1321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 단수, 3인칭) 가르치다, 배우다, 교훈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입을 열어 천국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산에 있는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이 세상에서 살아갈 큰 교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에게 듣지 못했던 신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산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모든 비밀들을 무리들에게 가르치실 때까지 전파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은 하나님의 비밀에 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나에게도 말씀이 유효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천국에 대한 비밀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말씀이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3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또한 육신적인 것에 관한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관한 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팔복에 관한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팔복의 핵심구절을 본다면 10절에 있습니다.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를δικαιοσυνη(디카이오쉬네 1343 명사, 소유격, 여성, 단수) 옳음, 올바름, 정의, 공정,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 죄인들을 위하여 공명정대하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올바르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 죄인들을 위해 죽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옳은 죽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의를 따르다가 핍박을 받은 자들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핍박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의 의가 없으면 절대 고난을 당하거나 핍박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있다면 반드시 나는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은 자는διωκω(디오코 1377 동사, 분사, 완료, 수동, 주격, 남성, 복수) 박해를 받다, 몰아내다, 따라가다, 추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추구하고 따르는 자들은 박해가 나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예수님의 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있다면 박해가 나를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는데 피할 수 없는 박해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이 엄청난 핍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핍박을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핍박이 내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자들은 이미 세상으로부터 핍박이 나에게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따라 사는 자들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은 바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복의 핵심은 핍박을 받아도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의 최종 목적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천국이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 안에 빛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우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우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욕하고’ ονειδιζω(오네이디조 3679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 복수, 3인칭) 모욕하다, 비방하다, 꾸짖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나의 실수 때문에 상대로부터 욕을 먹고 비방을 당하면 아무런 상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따라가다가 모욕을 당하고 진리를 수호하다가 꾸지람을 당하면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둠의 자녀들로부터 모욕을 당할 수도 있고 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내 안에 없다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따르다가 모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비방을 당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께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미 믿음의 선배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고χαιρω(카이로 5463 동사, 명령, 현재, 능동, 복수, 2인칭) 기뻐하다, 평안하다, 즐겁다, 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너희에게 예수님 때문에 핍박이 오거든 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늘에 상급을 쌓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은 나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마음에 평안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육체의 삶에 고통이 있지만 영적인 삶은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라αγαλλιαω(아갈리아오 21 동사, 명령, 현재, 중간태, 복수, 2인칭) 몹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자신 때문에 이런 핍박이 오거든 몹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정신병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나의 삶이 고난이 있고 고통이 따르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육체의 고난은 있지만 영적인 은혜는 더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삶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낙담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기억하면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을 하셔서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반드시 영적인 은혜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많은 상급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팔복에 관하여 말씀으로 산에서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자는 큰 상급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자신과 율법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절부터 20절까지 말씀은 율법과 복음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율법을 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핵심 구절은 17절입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려고 왔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과 예언서들이 모두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폐하러’ καταλυω(카탈뤼오 2647 동사, 부정사, 과거, 능동) 무너뜨리다, 헐다, 폐지하다, 파괴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예언을 폐지하여 완전하게 헐어버리려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무너뜨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폐지하지 않으시도록 이 땅에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율법의 말씀을 완성시키도록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완전하게 하려πληροω(플레로오 4137 동사, 부정사, 과거, 능동) 이루다, 충만하다, 풍족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충만하게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절대 행동에 옮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만 사셨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완성시킨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을 완성시킬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직접 십자가에서 완성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율법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산에서 예수님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예수님이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만 너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님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προσευχομαι(프로슈코마이 4336 동사, 가정법, 현재, 중수디포, 복수, 2인칭) 기도하다, 간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기도하지만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간구를 할 때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하는데 선택받지 않은 자들은 사람을 의식하면서 기도하게 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지금 당장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들을 응답하여 주시므로 기도할 때에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들은 이미 자신의 상을 사람들에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απεχω(아페코 568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 복수, 3인칭) 멀리하다, 삼가다, 끊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외식하는 자들이 상을 이미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없도록 멀리 끊어져 구원과 상급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이미 자신의 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없는 것이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과 상급에 관하여 멀리 떨어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빠져있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람들을 향하여 잘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면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있는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εισερχομαι(에이셀코마이 1525 동사, 명령, 과거, 능동, 단수, 2인칭) 들어가다, 참여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큰길 어귀나 회당에서 기도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는지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은 반드시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면 사람의 영광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응답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시는βλεπω(블레포 991 동사, 분사, 현재, 능동, 주격, 남성, 단수) 보다, 바라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골방에 들어가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시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어떻게 응답해 줄 것인지 또한 어떠한 상을 주실 것인지를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 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교회에서 기도하든지 집에서 기도하든지 직장에서 기도하든지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함께 하시며 보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현재 내가 기도하는 것을 아시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에 개입하시고 기도를 들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관하여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무리들이 바리새인들의 가르치심과 달랐기 때문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외모를 보면 절대 이런 말씀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서기관들과 같지 않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의 해석을 통하여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자들이 놀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산에 올라 가르쳤던 말씀의 핵심은 하늘에 관한 상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의 해석을 다른 각도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율법사들이나 서기관들이 가르쳤던 것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 없이 말로만 하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직접 자신이 몸으로 실천하시면서 말씀을 가르치기 때문에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해석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 받을 상급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 행동도 함께 포함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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