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만나 설교문] “만나의 형상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출16:14; 16:31, 민11:7)

체데크 2020. 7. 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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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만나 설교문으로서 만나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만나의 형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출16:14; 16:31, 민11:7)

 

명제: 하늘에서 내린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양식을 상징한다.

목적: 십자가 복음은 교회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양식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를 지나 마라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마라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을 하자 한 나무를 지시하셔서 물에 던지라고 하시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림에 진을 치게 하셨고 여기를 떠나 홍해 가에 머무르게 하신 후에 신 광야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신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만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육적 양식이지만 구원받은 나에게는 영적 양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출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는데 이때가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סין신 5512) 신, 이라는 뜻이며 가시 잡목과 진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 광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신 광야에 인도하시고 처음으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광야는 교회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들어와서 하는 행동은 어떻습니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에 있었던 때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불과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고기 가마 옆에 있었다고 말하고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시가 달린 말을 하면서 율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흙투성이와 같은 더러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곳에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와 떡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떡과 고기는 율법적인 것이며 고생의 떡과 고기였습니다. 자신들이 열심히 일을 해야 만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신 광야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는 인간의 의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내려주시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올 때에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양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만나는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 주는 영의 양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만나’ (מן만 4478) 만나, 라는 뜻이며 (מה마 4100) 무엇, 어떤, 어떤 것,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가 만나를 거둘 때에 생전 처음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것이 신기하여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만나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들도 처음에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생소했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고 알 길도 없었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았을 때에 이것이 바로 영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라고 대답을 들은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물어볼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죄를 사해주신 분입니다. 라고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요6:49-50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먹는 자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만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만나를 매일 같이 먹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의 형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양을 찾아보겠습니다.

 

출16: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만나는 새벽에 이슬과 함께 내렸습니다.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내렸던 것입니다.

 

‘그 이슬이’ (טל탈 2919) 이슬, 이라는 뜻이며 (טלל탈랄 2926) 덮다, 숨기다, 가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만나는 이슬과 함께 내렸습니다. 이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건기에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밤에 내리는 이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슬의 축복을 이삭이 야곱에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슬은 만나와 함께 내려서 만나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만나를 덮어서 숨기고 있습니다.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만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만나는 아무나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슬 속에 감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슬이라고 생각하여 지나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은 이슬 속에 감추어진 만나를 보게 되어 먹게 되는 것입니다.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기는 자들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슬 속에 감추어졌던 만나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나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만나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고는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이슬이 거친 후에 진정한 만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복음 안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작고’ (דק다크 1851) 가는, 여윈, 미세한, 이라는 뜻이며 (דקק다카크 1854) 부수다, 분쇄하다, 찧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만나가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가는 것이라는 단어도 (דק다크)입니다.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 여의고 작게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에 흠모하고 영광스럽게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흠모할 만한 모양도 없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서 십자가에서 선택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이 부서지고 분쇄되어 고운 가루로 찧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는 광야에서 거두어들인 그대로는 먹지 못합니다. 이것이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분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가 되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작게 이 땅에 오셔서 흠모할 만한 모양도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분쇄되고 찔림을 받아 부서졌기 때문에 나의 원죄를 해결해 주신 양식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찢기지 않았다면 나는 원죄에서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위해 가장 작게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양식을 먹고 영원히 살아난 것입니다.

 

‘둥글며’ (חספס하스파스 2636 동사, 푸알, 분사수동, 남성, 단수) 껍질을 벗기다, 라는 뜻이며 어근은 (חשף하샤프 2834) 발가벗기다, 드러내다, 뜨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만나의 모양이 둥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만나를 먹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겨내야 합니다. 이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는 맷돌에 들어가서 갈려야 합니다. 이렇게 갈리고 나면 껍질이 벗겨져 양식으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려 모든 옷이 벗겨지고 밤새 고문을 당하셔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갈기갈기 찢기신 살이 드러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웃으면서 십자가에 매달아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의 벗겨진 모습을 통해서 우물에서 생수를 퍼 올리는 것처럼 영원한 만나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의 모양을 보니 둥글게 생길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푸알 강조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만나의 모양이 스스로 둥글게 된 것이 아니라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계획된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옷도 입지 못하시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만나의 껍질을 벗겨낸 것과 같은 고난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고난에 동참하게 된 자들은 영의 양식인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서리 같이’ (כפור케포르 3713) 큰 잔, 서리, 라는 뜻이며 (כפר카파르 3722) 속죄하다, 속량하다, 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만나의 모양이 서리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서리와 같다는 것은 큰 대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고난에 차셔서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시면서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면서 자신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나가 서리 모양과 같다는 것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에게 속죄 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십자가 제물을 통하여 속량함을 받았고 모든 원죄가 폐하여졌으며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것들을 모두 닫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입니다. 만나의 서리와 같은 모양에서 이미 하나님은 주님이 십자가에 제물이 되실 것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출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다음으로 만나의 모양을 깟씨와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깟씨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깟’ (גד가드 1407) 고수풀, 이라는 뜻이며 (גדד가다드 1413) 자르다, 치다, 상처를 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수풀은 미나리과의 풀입니다. 만나의 모양이 깟씨와 같다는 것은 어근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상처를 받고 로마 병사로부터 채찍에 맞아 고통을 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몸이 베어짐을 당함으로 인하여 만나와 같은 영적인 음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없이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깟씨는 주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생명의 씨앗이 되어 하나님께서 선택한 후손들에게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들도 깟씨와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원죄가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희고’ (לבן라반 3836) 흰, 흰색의, 라는 뜻입니다. 만나가 하얗게 생긴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아무 죄도 없고 거룩하고 깨끗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원죄가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죄를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이지 주님이 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현재 아무 죄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나가 흰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며 희고 아무런 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만나를 먹는 자들은 어떠해야 합니까?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계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나를 먹는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원죄가 깨끗하게 씻겨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마포 옷을 입고 올바른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민11: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만나는 진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진주는 남아라비아산 나무의 향기롭고 투명하며 황색을 띠는 보석입니다.

 

‘진주’ (בדלח베도라흐 916) 베델리엄, 이라는 뜻이며 (בדל바달 914) 끊어버리다, 구별되다, 분별하다, 갈라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만나가 진주와 같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 성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을 의미합니다. 이 보석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만나를 먹는 자들은 세상의 것들을 끊어버리고 율법적인 삶과 절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택한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구별되어 갈라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주와 같은 보석이 있는 자들은 주님의 만나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먹는 것을 가지고 구별하게 하셨습니다. 부정한 것은 먹지 못하고 정한 것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진주가 있는 자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하늘에서 내린 산 떡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만나를 먹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의 모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습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렸고 광야에 있을 때에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교회에 나올 때에 영적인 만나를 먹게 됩니다. 이 만나를 먹는 자들은 천국 갈 때까지 먹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만나가 그쳤습니다. 천국에 가면 영원히 주님과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십자가 복음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영원히 주님의 복음의 만나를 먹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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