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담 설교문] “핑계 대는 인간”(창 3:12-15)

체데크 2020. 6. 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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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담 설교문 중에서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핑계 대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핑계 대는 인간”(창3:12-15)

 

 아담은 자신의 아내가 가져다준 선악과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도 않고 즉시로 먹어놓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여자가 나에게 줘서 내가 먹었습니다. 라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내가 먹은 것이지 처음부터 내가 먹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말입니다.

 

 죄지은 인간들은 항상 책임을 떠넘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 누명을 쓰게 하고 자신은 교묘하게 빠져나오는 이런 악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아담부터 시작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담 자신은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나에게 만들어 준 여자가 와서 먹으라고 해서 먹었을 뿐이지 만약에 이 여자가 없으면 나는 절대 죄를 짓지 않을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하셔서 물질을 많이 주시면 그것으로 죄를 짓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소홀하고, 예배도 소홀하고, 이렇게 살다가 갑자가 망하면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느냐고 불평하는 이런 신앙과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쉬울 때는 하나님께 한없이 울고, 붙들고 애원하다가 문제가 풀어지고, 내가 원하는 일들이 하나씩 해결이 되면 그때부터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하나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런 신앙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아담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죄악 된 근성입니다.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인이 하나님께 말하는데 즉시로 마음에 거리낌도 없이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회개는 전혀 하려고 하지 않고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핑계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기는 이런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라는 단어는 (נתן나탄)입니다. 맡겨두다, 던져 넣다, 청구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억지로 나에게 여자를 만들어 맡겨두시고, 던져 넣으시고, 이제 와서는 이 여자가 나에게 죄를 짓게 했는데 내가 잘못되었다고 청구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라는 마음이 아담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잠을 재우시고 아담의 갈비뼈로 갑자기 여자를 만들어 놓으시고 잠에서 깨어보니 여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여자를 보았을 때는 아담도 좋아했습니다. 아담이 이 여자를 보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라고 말해 놓고 이제 와서는 하나님 제가 언제 원했습니까? 라고 변명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아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도 똑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 받을 때는 신바람이 나서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하나님 원망을 하고 사람을 원망하면서 핑계를 대는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남에게 핑계를 대는 악한 근성은 이미 아담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있게 하신’이라는 단어는 (עמד임마드)입니다. 어근을 따라가 보면 깨닫지 못하다, 가리우다, 빛을 잃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나에게 이 여자를 주셔서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가려져서 진리의 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 여자를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하다 보니 영적으로 무뎌지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라고 하나님께 책임을 계속적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도 전에는 이런 모습이고, 결국 아담을 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이제 여자에게 말씀을 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가 먹지 말라고 한 과일을 먹었느냐! 라고 말씀하실 때에 여자도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뱀이 와서 나를 꼬임으로 내가 그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묻고 있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알고 계시고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핑계를 대지 말고 죄를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에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여자는 계속 책임을 지지 않고 죄를 하나님과 뱀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주님께 자복하면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죽는다고 말씀하지 않았고 죄가 없는 분이 전혀 변명하지 않고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신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아담의 원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지금 아담은 핑계만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핑계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께 나의 죄를 자복할 때에만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보혈로서 죄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꾀므로’ 라는 단어는 (נשא나샤)입니다. 히필, 완료입니다. 길을 잃게 하다, 유혹하다, 잘못 인도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자는 선악과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한 번 먹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시니까? 뱀이 나에게 접근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유혹하여 내가 먹었습니다. 라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히필은 사역능동입니다. 뱀이 시켜서 먹었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 번 죄를 지으면 다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구원의 역사에 들어오면 회복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 육신 하셔서 대신 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우리가 죽었던 인생인데 이렇게 살아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신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고 핑계를 대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죽음으로 지옥의 고통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던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주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렇게 여자를 꼬여서 선악과를 먹게 하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흙을 먹으면서 사는 저주를 받습니다. 뱀은 사탄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자와 원수가 되어 지금도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조종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는 안 되고 항상 영으로 깨어 말씀으로 분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흙을 먹을지니라’ 에서 ‘흙을’이라는 단어는 (עפר아파르)입니다. 먼지가 되다, 티끌을 날리다, 쓰레기 더미, 라는 뜻입니다. 뱀의 존재는 원래 날아다니는 존재였고 능력이 많은 존재였습니다. 나라마다 가보면 용은 승천한다고 생각했고 용의 그림을 보면 모두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뱀의 존재는 말도 할 수 있었고 능력이 있는 신비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힘을 잘못된 곳에 사용함으로 결국 티끌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먼지 같은 존재가 되고, 쓰레기 더미 같은 존재로 끝나버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뱀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권능과, 지식과, 지혜와, 능력과, 재물과, 건강과, 사업을 잘못된 곳에 사용하거나, 죄를 짓는 곳에 사용되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저주를 하셔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불타 없어지게 하시고, 존경 받는 인생에서 티끌처럼 사라지는 인생으로 전락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인생들은 이미 저주를 받아 이 세상에서는 큰소리치면서 살지 모르지만 결국 인생이 끝나는 날 티끌과 같은 존재로 끝이 나고, 먼지처럼 사라지며, 인생이 쓰레기 더미가 되어 남들이 찾지 않고 지옥의 불 못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구걸하는 그런 신세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인생은 비록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지 모르지만 나사로처럼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로 높여주실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렇게 저주를 받은 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자의 후손들과도 원수가 되게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후사들과도 원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라는 말에서 ‘상하게 할 것이요’ 라는 단어는 (שוף슈프)입니다. 칼, 미완료입니다. 숨어서 기다리다, 짓밟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기다렸다가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고, 짓밟아 버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능동적으로 행동이 끝나지 않은 미완료로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셨으니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남자의 씨로 오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온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1:18-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남자의 씨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에서 태어나시고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성령으로 잉태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는 모릅니다. 내가 본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라는 말에서 ‘발꿈치를’이라는 단어는 (עקב아케브)입니다. 뒤에 있다. 속여 넘기다, 비방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탄이 예수님을 유다를 통해서 은 30냥에 팔아 넘기고, 유대인의 제사장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비방을 하고, 욕하고, 뒤에서 물어뜯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에게 발꿈치를 심하게 물어서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시대에는 최고의 형벌입니다. 가장 무거운 죄를 짓는 사람을 처형하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절대 십자가 처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이고 수치스러운 처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국민들은 목을 치는 처형을 했습니다. 바울도 로마의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목을 치는 처형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도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이 가장 심한 방법으로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어 고통을 주었지만 결국에는 부활하셔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짓밟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예수님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약속한 말씀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조금 힘이 들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가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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