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장에서는 구원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사 12:1-6)
[1절]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 . . .
이사야는 말한다.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그날’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사 11:10).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감사하다’는 원어(야다)는 ‘감사하다’(NASB) 혹은 ‘찬송하다’(KJV, NIV)라고 번역된다.
성도들이 감사하며 찬송할 이유는 하나님의 노가 쉬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의 진노를 가라앉히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하였는데, ‘화목제물’이라는 원어(힐라스테리온)는 ‘유화제물’ 즉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물이라는 뜻이다. 또 그는 로마서 5:9에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증거하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의 그치심, 곧 진노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이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이다.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성도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뢰한다. 우리는 이 세상도,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 죄 가운데 방황하던 시간들을 끝내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주 여호와는 우리의 힘, 우리의 노래, 우리의 구원이시다. 죄는 하나님의 징벌로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왔으나, 죄사함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 힘과 기쁨과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는 구원을 우물에 비유한다. 우물은 물 저장고와 다르다. 물 저장고는 물이 줄어들지만, 우물은 계속 물이 나오는 곳이다. 우물은 물이 풍성하다. 그 물은 목마름을 해소시킬 만한 시원한 물이며 우리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만한 깨끗한 물이다. 그 물은 물맛도 좋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생명이다.
주 예수께서는 구원을 생수에다 비유하셨다. 그는 수가성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3-14). 또 그는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요한은 이 생수의 강이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설명하였다(요 7:37-39).
성도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의 감사와 찬송이다. 성도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다. 성도는 기쁘게 하나님을 찬송한다. 스바냐는 그 기쁨의 노래를 예언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습 3:14-15).
[4-6절]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할 것이다. 찬송은 일종의 전도가 될 것이다.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을 찬송할 것이다.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원어(게우스)는 ‘뛰어나신 일들’ (KJV, NASB) 뜻이다. 그것은 구원의 일을 가리킨다.
구원은 역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하였다(고전 15:3-4). 복음의 내용은 놀랍고 엄위하신 일들이다. 그러나 구원은 또한 개인적으로는 구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건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구원은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또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이다. 구원은 칭의(稱義)(롬 3:21-24)와 성화(聖化)(롬 6:19, 22)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딤전 1:1; 딛 1:3). 우리의 칭의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성화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하였다(고전 3:7).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릴 것을 예언했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의 위로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힘이 되신다는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들의 구원의 기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또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일, 또 우리 속에 주신 구원의 일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쳤고 우리는 죄사함의 구원을 얻었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다. 구원의 생명수는 우리의 심령에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주를 섬기며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만방에 전파하고 알리자.
[사순절 주일 설교말씀]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사도행전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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