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토기장이의 비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셨기 때문에 피조물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토기장이 비유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 말씀(렘 18:1-23)
1-17절, 백성들의 부정적 반응
[1-4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다.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보았다. 토기장이는 녹로(轆轤)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므로[손상되므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 ‘녹로’(轆轤, wheel)는 질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물레(돌리는 틀)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책으로 나아가서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5-10절]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 .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처럼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두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재앙 대신 평강을 주실 것이지만, 악을 행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평강 대신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11-12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요점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는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고, 그 말씀을 ‘헛된 말이라’(노아쉬)[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불신앙이요 매우 큰 죄악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계획과 생각대로, 자기들의 굳은 마음대로 악한 길로 나가려 하였다.
[13-17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심히 가증한 일을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허무한 우상에게 분향했다. 그러나 이것은 에녹과 노아가 걸었던 길,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 모세와 여호수아가 걸었던 길, 다윗이 걸었던 그 옛길, 우리가 가야 할 그 옛길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우상들은]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솸마)[황폐케 하고](KJV, NASB, NIV) 영영한 치소[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황폐케 되며 비웃음거리가 되며 다 흩어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등만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얼굴을 감추시고 그들을 구원치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이시면 우리는 그의 손 안에 있는 진흙과 같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세상과 인간의 근원을 아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악을 버리고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오직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아모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믿고 그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며 평강과 형통의 길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황폐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 세상에 흩어지며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18-23절, 예레미야의 고난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려 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거짓되었다. 악은 숨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그들은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레미야의 설교와 다른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의 차이이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말로 비방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말로 비난을 받았다. 고라 일당은 모세에게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하고 모세가 그들 위에 왕이 되려 한다고 비방했었다(민 16:3, 13). 고린도후서 6:8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영광도 받으나 욕도 받고 악한 이름도 가지며 아름다운 이름도 가진다고 증거했다. 또 디모데후서 4:14-15에 보면,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보였고 그의 말을 심히 대적하였다. 주의 종들은 때때로 비난을 받았다.
또 그들은 예레미야의 설교를 무시했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헛된 말로 여기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19-20절]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그들은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구덩이를 팠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이런 꾀, 비방, 무시, 구덩이, 올무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컸었다. 성경 시대에나 교회 역사에서나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이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은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대항하고 비방하고 무시하고 구덩이를 파고 올무를 놓은 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포한 말씀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선한 말씀이며, 그들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율법은 본래부터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21-23절]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戰場)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엎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호소한다. 이것은 단지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구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욕이나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과 생명으로 바로 깨닫자. 참된 선지자들은 책망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축복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들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욕이나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생명과 행복의 길임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함부로 비방하지 말자. 그들은 주께서 보내신 종들이다.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을 비방하면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2-13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달게 받고 힘써 지키자. 이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행복이 되며 영생에 이르는 정상적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다(신 10:12-13).
[이사야 12장 강해 설교문]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사 12:1-6)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성경 지명 원어설교] 그랄 Gerar(창 10:19) (0) | 2022.03.18 |
---|---|
[역대상 24장 주일 설교말씀] 제사장들의 24반차(대상 24:1-31) (0) | 2022.03.13 |
[사무엘상 10장 주일 설교말씀] 사울이 왕으로 선택됨(삼상 10:1-27) (0) | 2022.03.12 |
[사사기 16장 강해 설교말씀] 삼손의 실패와 마지막 기도(삿 16:1-31) (0) | 2022.03.12 |
[이사야 12장 강해 설교문]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 찬송함(사 12:1-6) (0) | 2022.03.11 |
[욥기 42장 성경 좋은 말씀] 회개 후의 축복(욥 42:1-6) (0) | 2022.03.02 |
[시편 75편 주일 예배 설교말씀] 재판하시는 하나님(시 75:1-10) (0) | 2022.03.02 |
[새벽예배 10분 설교문] 온유한 가족(시 119:71) (0) | 2022.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