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6장에서는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많은 여인 중에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주변에는 천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둔 여인은 술람미 여인입니다. 솔로몬은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술람미 여인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만 칭찬함(아 6:7-9)
♣명제: 솔로몬의 주변에 많은 여인이 있지만 술람미 여인만 선택하였다.
♣목적: 주님의 신부들도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를 선택하여 주셨다.
솔로몬 왕은 계속해서 술람미 신부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신부의 모습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신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살 신부가 술람미 신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단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주변에 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정말 사랑하는 여자는 술람미 여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주님은 나를 만세전에 선택하여 주셔서 주님의 신부로 뽑아주신 것입니다. 모든 주권은 신랑에게 있는 것이지 신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 왕이 사랑하여 선택하여 주었기 때문에 왕후가 된 것입니다. 그럼 구원받은 나도 주님께서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에 주님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칭찬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아6: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솔로몬 왕이 술람미 신부의 뺨을 보니 석류 한쪽같이 얼굴이 붉게 보였습니다. 이런 신부의 얼굴을 보고 솔로몬이 신부의 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울 속의’ (참마 6777) 너울, 면박,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어근사전에 (참맘) 단단히 묶다, 땋다, 짜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너울로 가려진 신부의 뺨을 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럼 왜 너울 속의 뺨이라고 솔로몬 왕이 신부의 뺨을 말하고 있을까요? 너울은 신부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얼굴을 가렸던 면사포와 같은 종류입니다.
창24:64-65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리브가도 엘리에셀과 함께 이삭을 만나러 오다가 멀리에서 이삭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자신의 주인이라고 말하자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신랑은 신부의 너울 속에 감추어진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술람미 신부의 얼굴을 너울 속에 감추어진 붉은 뺨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너울을 만들 때에 실을 서로 짜서 너울을 만들게 됩니다. 그럼 너울 속에 감추어진 신부의 뺨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너울을 서로 엮어서 짜듯이 신부는 신랑과 단단히 묶여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너울이 서로 짜져서 단단히 묶여있을 때에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못합니다. 그럼 영적인 신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함께 묶여있어야 합니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서로 주님과 짜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부들이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너울이 만들어져 함부로 외간 남자들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영적인 주님의 신부들은 너울을 함부로 벗어서 우상의 신랑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항상 너울을 벗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신랑 한 분에게만 자신의 정결한 얼굴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너울을 쓰고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항상 정숙한 여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석류’ (림몬 7416) 석류,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라맘 7426) 들어 올리다, 높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신부의 뺨을 석류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석류는 이스라엘의 과일로서 풍요와 번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석류를 볼 때에 끝 부분이 왕관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영광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석류는 다른 과일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과일 중에 아름다운 것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석류는 대제사장의 의복에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직분이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류나무는 유월절 날에 양고기를 굽는 꼬치 나무로도 사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석류나무가 수분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에 잘 타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신부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신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에 신부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것입니다. 석류나무를 유월절에 어린 양을 구워 먹을 때에 사용한 것처럼 우리는 어린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주님과 연합이 되어있지 않으면 절대 주님을 높이 들어 올리지 못합니다. 주님의 영광만을 높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양고기를 굽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들어 올려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랑에게 몰려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예수그리스도만 높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한 쪽 같구나’ (펠라흐 6400) 한 조각, 덩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팔라흐 6398) 부숴 뜨리다, 쪼개다, 꿰뚫다, 낳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신부의 뺨이 석류 한쪽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석류는 겉으로 보아서는 진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석류의 알맹이를 먹기 위해서는 겉에 있는 껍질을 부서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그 속에서 맛있는 석류 알맹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으로만 보아도 먹음직스럽고 아름다운 알맹이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신랑처럼 신앙 속에서 부서짐을 당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신부가 어려움 없이 너무 편안하게 살면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신랑이 어렵게 돈을 벌어다 주어도 자신은 쉽게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의 어려움에 동참하게 되면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됩니다. 신랑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신랑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면 그 속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못에 찔리시고 창으로 옆구리가 꿰뚫린 고통을 깨달으면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떠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석류의 껍질을 돌을 쳐서 깨면 그 속에서 빨갛게 아름다운 석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생명들을 잉태하여 낳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석류 알맹이가 많은 것처럼 고난 속에 많은 영혼들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영광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석류의 알맹이를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꺼운 껍질을 망치든지 돌이든지 내려쳐야 합니다. 이런 아픔 속에 영광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아6: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솔로몬은 술람미 신부를 말하다가 갑자기 화두를 바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왕궁에 있는 여인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비가 60명이고 후궁이 80명이며 시녀가 무수히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여인은 천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왕상11:3) 이것은 많은 여인들이 있기 전에 아가서가 쓰여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여인들이 있지만 단연 솔로몬의 마음에 들은 여인은 술람미 여인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나를 선택하셔서 주님의 신부로 삼아주시고 있습니다. 솔로몬 주변에 이미 왕비가 있고 후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인들에게는 솔로몬이 마음도 주지 않습니다. 오직 술람미 신부에게만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구원받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고전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또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솔로몬 주변에는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련하고 천한 술람미 신부를 선택하여 준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주님께서 미련하고 천한 술람미 여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나를 선택하셔서 주님의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쁨입니다.
아6: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솔로몬은 술람미 신부를 자신의 비둘기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 앞에 완전한 자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낳은 외동딸이며 어머니가 귀중하게 키운 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솔로몬 신랑을 만나 복된 자가 되었고 많은 왕비와 후궁들이 술람미 여인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완전한 자는’ (탐 8535) 완전한, 옳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타맘 8552) 사망하다, 끊어지다, 궁핍하다, 소멸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완전한 자는 많은 여인들이 있어도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생각할 때에 옳은 자이며 완전한 여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사망하시고 나의 영원한 저주와 사망을 끊어지게 해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완전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은 주님의 신부인 내가 세상에서 살 때에도 근심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영육으로 궁핍한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와 궁핍을 모두 소멸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나의 신랑이 되어주셔서 원래는 부요하신 분이신데 신부인 나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신랑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신부인 내가 세상에서도 부요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가난을 십자가에서 모두 소멸하시고 영적으로 가난한 것도 소멸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신랑을 통하여 완전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귀중하게 여기는’ (바르 1249) 깨끗한, 청결한, 귀중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라르 1305) 택하다, 살지다, 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가 그의 어머니 외동딸로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부의 수업을 받으면서 열심히 신랑을 섬기는 방법에 대하여 배웠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 신랑이 볼 때에 그렇게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이미 예수님을 통하여 깨끗하게 죄가 씻겨져서 청결한 상태가 된 주님의 신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 귀중한 자가 되었으며 이렇게 주님의 신부들은 만세전에 선택함을 받아 구원을 얻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열심히 말씀을 먹어 영혼을 살지게 하며 칼을 갈 듯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신부들은 항상 신랑을 만나기 위하여 영육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목욕을 했다면 이제는 항상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들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복된 자라’ (아샤르 833 CW.VPIMZP.FZS) 올바로 인도하다, 안내하다, 감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 왕궁에 있는 많은 여자들이 술람미 여인을 보고 복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삶이 다른 여인들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솔로몬 왕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 여인들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은 즉시 술람미 여인을 복된 자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술람미 여인을 칭찬하면서 이 여인은 복된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역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르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때에 올바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입술에는 항상 감사의 고백이 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복된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를 칭찬하는구나’ (할랄 1984 CW.VPIMZP.FZS) 자랑하다, 빛나다, 칭찬 받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귀한 왕비와 후궁들에게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받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 신랑 때문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항상 신랑을 자랑하고 신랑을 높이고 신랑을 세워주었더니 귀한 분들이 술람미 여인을 칭찬하면서 높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최고로 칭찬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어디에 있든지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신랑을 높이고 자랑하고 주님의 빛을 선포하면 세상의 귀한 사람들이 신부인 나를 높여주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 신랑만 자랑하면 됩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와 나를 칭찬해 주고 사랑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술람미 여인도 솔로몬을 만나지 못했다면 시골에서 끝날 천박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만나서 인생이 귀족의 반열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십자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거름더미 같은 인생에서 귀족의 반열에 올라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을 만났기 때문에 나의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솔로몬이 술람미 신부를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나를 세상의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34편 성경 좋은 말씀] 알파벳 시-예수님을 앙망하라(시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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