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시편 34편 성경 좋은 말씀] 알파벳 시-예수님을 앙망하라(시 34:5)

체데크 2022. 7. 1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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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편은 다윗의 시로서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알파벳 시입니다. 22절이 한 구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5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헤는 숨구멍을 상징하는 상형문자입니다. 다윗이 헤로 시작하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숨구멍이 열려서 교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영혼이 복음을 듣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혼은 죽게 됩니다. 원죄의 죄인은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매일같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숨구멍이 열려서 항상 영혼이 숨을 쉬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알파벳 헤는 창문이라는 상형에서 온 글자입니다. 고대근동의 사람들은 장막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숨구멍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장막의 꼭대기에 구멍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공기가 순환하여 장막 안에 공기를 정화시키는 작용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 헤라는 글자는 사람이 하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를 드려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헤는 죽었던 자들이 숨을 쉬고 살아나기 때문에 숨결, 호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계시하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헤는 영원히 살아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나타내는 단어에 쓰이고 있습니다. (헤이칼 1964) 성전, 궁전,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곳인 성전도 헤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로 죽어서 숨을 쉬지 못했던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숨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4: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5절 히비투 엘라이브 베나하루 우페네헴 알 예흐파루

주를 앙망하라(5)

 

명제: 주를 앙망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도 주님을 앙망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다윗은 주님의 십자가 문을 통과하여 들어와 안식을 누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악의 두려움과 육체의 두려움에서 자신을 건져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십자를 통과하면 죄악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제 5절을 시작하면서 헤라는 알파벳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숨을 쉴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주를 앙망하게 된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숨구멍이 열려 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영원히 죽었던 인생들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흡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앙망하고’ (나바트 5027 VHACZP 동사, 히필,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보다, 바라보다, 우러러보다, 살펴보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주변에 있었던 자들이 주를 앙망하면서 우러러보고 살펴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유심히 주목하여 보는 것을 나타낼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심히 주목하여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 불평할 때에 불 뱀이 이들을 물어 죽이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불 뱀을 달라고 명령하셨고 모세는 믿음으로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이 놋 뱀을 바라본 자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쳐다본즉’ 이라는 단어가 (나바트)입니다. 이들은 놋 뱀을 유심히 관찰하여 쳐다봄으로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여기에서 놋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를 앙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게 하는 자가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구원은 아무나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놋 뱀을 바라보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히필 사역 능동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라보게 한 자들만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바라보았던 뱀도 히필형을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보게 한 자들이 놋 뱀을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 이들은 확실하게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며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구원받은 자들이 주님을 앙망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숨구멍이 열린 자들이 숨을 쉬고 호흡하여 살아남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5절을 시작하면서 숨구멍의 상형에서 온 헤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원죄의 죽음에서 주님의 죽으심 때문에 숨구멍이 열려 주님을 앙망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로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핍박하게 됩니다.

 

광채를 내었으니(나하르 5102 VQACZP 동사, ,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모여 들다, 빛나다, 빛을 발하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고 바라보는 자들은 주님의 빛이 임하여 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구원을 받아 영적으로 살아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발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광채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전할 때에 영혼이 죽었던 생명들이 빛을 보면서 몰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광채를 내는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에서도 빛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주님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성막에는 메노라라고 하는 금등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성막의 기구입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백성들도 예표 하는 기구입니다. 이 등대는 올리브기름을 계속해서 공급받아야 만이 빛을 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공급받을 때에 계속해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 발산되는 것입니다.

 

금등대가 교만하여 자신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금 등대 자체로는 스스로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기름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기름이 내 안에 공급되면 빛은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얼굴에서 광채가 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두 번째 돌 판을 가슴에 품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두 번째 돌 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상징하고 있는 돌 판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내 심비의 판에 새겨져 있으면 얼굴에서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하페르 2659 VQIMZP 동사, ,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무안을 당하다, 수치를 당하다, 낭패를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앙망하고 바라보는 자들은 얼굴에서 빛이 나와 무안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실수를 하면 무안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창피를 당하여 수치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상태가 언제입니까? 죄악 가운데 있었을 때입니다.

 

롬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수치를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카타이스퀴노 2617 VIFPS3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 단수, 3인칭) 모욕을 주다, 욕되게 하다, 부끄럽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원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사탄으로부터 정죄를 받아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모욕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모욕과 부끄러움을 십자가에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예수님을 믿으면 부끄러움과 모욕받는 것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 사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믿었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래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에 모욕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는 내 힘으로 부끄러운 수치를 씻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지금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앙망하면 계속해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원죄의 고통과 부끄러움과 수치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숨을 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린양의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은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22: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임금이 혼인잔치를 준비했는데 임금이 준비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준비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와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사환들에게 말하여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지옥의 불 못에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마포 옷을 입지 않은 자들은 이렇게 수치를 당하여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숨구멍이 열려 호흡하는 자가 되었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을 앙망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계시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부터 주님과 호흡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원어성경 해석법] 술에 취해 하체를 보인 노아의 영적 의미(창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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