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신약성경 은사 원어 설교말씀] 왜! 은사자 훈련이 필요한가?(고전 12:1-3)

체데크 2022. 8. 22. 20:32
반응형

왜! 은사자 훈련이 필요한가?(고전 12:1-3)

 

현재 한국교회에 성령의 은사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은사를 성경의 원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을 우리가 배우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한다고 해서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감정을 터치하여 혼적인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정확한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경의 원어를 통해서 접근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의 은사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깨달아서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무분별한 은사를 행하는 것들을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들은 왜! 은사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내가 받은 은사를 바로 깨닫고 알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현재 받은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정확하게 받은 은사인지 아니면 나의 감정에 호소하여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은사를 받은 것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고전12:1-3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것을 알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령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우상에게로 끌려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것을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 말하지 않고 또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에(프뉴마티코스 4152 APGNP 형용사, 형용대명사, 소유격, 중성, 복수) 영적인, 초자연적인, 정신적인, 이라는 뜻이며 (프뉴마 4151) 생명, 성령, 호흡,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하늘의 신령한 것들에 관하여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신비스러움과 사람의 생각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정신적인 것들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깨달아야 하며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것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것에 소유되어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 하나님이 소유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은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임할 때에 은사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신령한 은사를 허락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신령한 것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은사를 받은 자라면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소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령한 것들에는 성령님이 소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큰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소유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은 거짓된 은사입니다.

 

끄는(아고 71 VIIPP2 동사, 직설법, 미완료, 수동태, 복수, 2인칭) 끌려가다, 이끌리다, 붙들다, 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신령한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말 못 하는 우상에게로 이끌리어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생명의 은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붙잡혀 말 못하는 우상에게 절을 하고 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실제로 우상에게 끌려갔습니다. 그것도 신령한 주님의 은사를 받지 못하니 계속해서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설법과 미완료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신령한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고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상에게 절을 하고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신령한 영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령한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니 이단과 우상에게 넘어가 인간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끌려 갔느니라’ (아파고 520 VPPPNMP2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2인칭) 끌다, 끌고 가다, 넘겨주다, 죽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포 575) ~로부터, (아고 71) 데리고 오다, 인도하다, 이끌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신령한 하나님에 관하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상들이 이끄는 데로 끌려가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이단자들은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받았다고 하는 능력의 은사를 가지고 미혹하여 결국 죽음으로 이끄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자들에게 걸리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미혹되어 우상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것도 현재 신령한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면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분사와 현재시제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면 반드시 우상에게 끌려가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령한 성령 하나님의 영적인 은사를 받아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신령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귀신이나 인간이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영으로 말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성령하나님으로 말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에포 2036 VNAA 동사, 부정사, 과거, 능동태) 말하다, 대답하다, 명령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어떤 누구도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절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술로 말하여 고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입술에 시인할 수 있는 명령의 고백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주로 시인했다는 것은 성령님의 신령한 영적인 것을 깨닫고 알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주로 시인하냐고 질문할 때에 예라고 대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주님을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주로 시인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부정사와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주님 앞에서 구원자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뒤나마이 1410 VIPNS3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포, 단수, 3인칭) 할 수 있다, 능히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능히 고백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며 자신의 능력으로도 절대 주님을 구원자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주님을 구원자로 고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설법과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임한 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님을 주로 시인할 수 있는 말씀을 붙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중수디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먼저 내 안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하나님이 임하는 것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여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지 인간의 자랑이나 높임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별하기 위하여 은사자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은사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받은 은사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나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용할 때에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많은 은사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도들이 무분별하게 은사를 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대로 말씀 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가장 좋은 길을 고린도 교회에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를(카리스마 5486 NANP 명사, 목적격, 중성, 복수) 은혜의 선물, 은사, 라는 뜻이며 (카리조마이 5483) 탕감하다, 놓아주다, 용서하다, 라는 뜻이며 이 단어의 어근은 (카리스 5485) 은혜, 칭찬, 칭송, 감사,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직접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원죄에 빠져 죽어있는 자들을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여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던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죄를 용서받고 죄가 탕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사를 행한 자들과 이 은사를 경험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높이 칭송하고 칭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복음을 깨닫게 되어 주님 앞에 나와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세상에서 죽어있는 자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은사를 나의 힘으로 열심히 구한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전적인 성령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사모하면서 주실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은사를 받는다고 한다면 사탄에게 미혹될 수가 있습니다.

사모하라(젤로오 2206 VIPAP2/VMPAP2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복수, 2인칭) 열정적이다, 열심이다, 갈망하다, 몹시 탐내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열정적으로 열심히 기도하면서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은사를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탐낼 정도로 은사를 사모하여 받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은사 받은 자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반드시 주님께 은사를 사모하여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지금 항상 은사를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명령법과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은사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자랑을 위해서 은사를 소망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갈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사모하고 구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은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은사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는지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받았으니까 나도 받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질투심에 나도 은사를 받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은사를 구하려고 한다면 은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망치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덕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기를 갈망하면서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은사를 우리가 받았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받은 은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받은 능력과 은사를 내 마음대로 분별없이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은사를 거두시는 것입니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았다면 각각 받은 은사대로 청지기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오직 주인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청지기의 직분을 맡은 자라고 생각했다면 서로 은사를 가지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받은(람바노 2983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취하다,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받아서 자신의 것으로 취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확실하게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한 명에게 몰아서 주시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지금 열심히 구한 것을 보시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각 사람들에게 잘 맞는 은사를 주시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과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 안에서 이미 은사를 받을 것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주실 것인지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의 성격대로 하나님께서 은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봉사하라(디아코네오 1247 VRPANMP2 동사, 명령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복수, 2인칭) 수종 들다, 섬기다, 일하다, 봉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받은 자들은 자기가 맡은 직분의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와 같이 교회에 봉사하고 서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았으면 주님을 섬기면서 교회에서 힘들어하고 어려운 자들을 수종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섬기듯이 주님의 지체들을 섬기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와 같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어제 했다고 오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지체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명령분사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받은 은사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곳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여 봉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은사의 교육과 훈련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건을 연습하기 위함입니다. 은사를 받은 자들은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매일같이 은사의 사용과 관리하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함으로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은사를 가진 자들이 교만하고 자만하여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거룩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은사를 잘못 받은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은사를 받은 자들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날 내가 은사를 받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는데 갑자기 자기 자신이 능력이 생기고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니 마음에서 교만함이 올라온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귀신들도 얼마든지 이런 은사를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이 들어왔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우리가 은사를 받았다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보통 은사를 받은 자들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자신 위에 아무도 없다는 허탄한 신화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내 자신을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베벨로스 952) 신성을 더럽히는, 불경스러운, 이단의 세속적인, 이라는 뜻입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신성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마치 은사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철저하게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주신 자의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은사의 능력이 나타나니 하나님 앞에서 불경스러운 짓들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단의 세속에 빠져 주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인간을 높이는데 은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사를 받았다면 철저하게 주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망령된 행위의 은사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허탄한(그라오데스 1126) 늙은 여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허탄한 신화는 늙은 여자가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허구적인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진짜 있는 것처럼 만들어낸 거짓된 복음의 이야기를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거짓된 복음을 버리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이야기를 따라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경건(유세베이아 2150 NAFS 명사, 목적격, 여성, 단수) 경건, 신앙심이 깊음, 하나님을 경외함, 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허탄한 신화인 거짓 복음을 버리고 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경건에 이르도록 노력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신앙이 깊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은사를 받은 자들이 경건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사를 행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는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경건이 사람에게 주님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내가 은사를 받았다면 경건하게 주님을 높이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명령하여 내 자신을 경건함에 이르도록 훈련하고 연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은사를 받기 전에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큰 능력의 은사를 받고 나면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교만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은사 자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은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배워야 교만함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은사를 사모하고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는 은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사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 올라갔던 엄청난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에 가시를 주셨는데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큰 은사를 받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남들이 없는 능력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교만해지게 됩니다. 이것을 항상 말씀으로 쳐서 복종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은사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자만하지(휘페라이로마이 5229 VSPPS1 동사, 가정법, 현재, 수동태, 단수, 1인칭) 스스로 높이다, 오만하다, 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큰 계시를 받았는데 자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오만하여 높일까봐!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큰 은사를 받은 자들이 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편입니다. 우리들도 큰 은사를 받고 교만해질까봐! 은사 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많은 시련과 연단을 주셔서 교만하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교만해질 수도 있고 교만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현재 교만해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육체에 가시를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시는 자신 스스로 빼내려고 해도 뺄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빼내려고 해도 도저히 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엄청난 계시를 받았다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은사를 크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감사하시고 교만해지려고 하면 말씀으로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은사 자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엄마가 되기 위하여 준비한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도 잘 양육하게 됩니다. 하지만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아이가 생기니 아이를 버리거나 방치하여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큰 은사의 능력이 임하니 교만해지거나 아니면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소멸시키고 사장시켜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 자 훈련을 말씀을 통해서 잘 받으면 은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을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도 않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은사를 받으셔서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가서 강해설교문]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모습에 감탄(아 7:1-2)

 

[아가서 강해설교문]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모습에 감탄(아 7:1-2)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모습에 감탄(아 7:1-2) 아가서 6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루살렘의 딸들은 솔로몬 왕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