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상을 걷는 삶(마 5:1-12)
얼마 전에 신문에 난 아주 재미있는 시를 읽었습니다. '구름'이라는 제목입니다. '구름' 하니까, 아주 고상하고 서정적인 내용의 시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별로 고상하거나 서정적이지 못하고 그저 생활의 한 부분을 노래 한 아주 짧은 시입니다. 제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구름아
너희에겐
말 안 듣는 자식이나
바가지 긁어대는 마누라가 없니!
참 속편하게 잘도 돌아다닌다.
구름아
어찌하면 만사를 잊고
훌훌 털고 훌쩍 떠날 수 있겠니
잔 일에 매인
내 슬픈 영혼아!"
마지막이 재미있습니다. 잔 일에 매인 내 슬픈 영혼아!
늘 일상의 삶에 숨쉴틈 없이 쫓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늘 여유롭게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구름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늘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일합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열심히 소유합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무엇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과 소유와 명예의 자리를 위해 쫓기는 삶을 살면서 불행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 방법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8가지 복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행복으로 가는 8계단이라고도 할 수 있고, 행복의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8개의 베이스캠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팔복을 통해서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참 행복의 모습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여야 그 복을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진정한 행복은 늘 천국을 소유하며 사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죽고 나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뿐만아니라 살아서 내 삶 속에 내 마음속에 천국을 지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했습니까? 마 5:3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물질과 지식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것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잘 알기 위하여 심령이 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심령이 부하다는 것은 자기 의와 자기 자랑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지식도 있고, 신앙도 있는 것 같아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부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오직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철저히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낮아진 겸손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배고프기에 늘 말씀을 사모하며 굶주리고 그 말씀을 듣고 읽는 자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굶주려 있어서 늘 주님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 심령에 하늘나라가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눅 17:20-21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대의 행복입니다.
2. 진정한 복은 늘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삶은 참으로 피곤합니다.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환난이나 곤고가 늘 있습니다. 슬픔과 아픔의 상처로 우리 영혼이 신음소리를 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목회하면서 보면 사람들의 중심에 외침이 있습니다. '나를 위로해 주세요' 이럴 때마다 진정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그 뿌리를 두고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위로받는 행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4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애통한다는 말의 뜻은 '스스로 슬퍼하는 의식 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당하는 슬픔이 아니라, 자발적인 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닌 것들에 대하여 아파하고,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순수해집니다. 세상에 대하여 애통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귀한 복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게 되며 또한 그것을 정말로 기쁨으로 누리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원래 이 말씀은 시 37:11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온유하고 하는 말은 잘 길들인 동물처럼 자신을 잘 다스리는 인격을 말합니다. 극단에 서지 않고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서 늘 겸손으로 나타나는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풍부함으로 즐겁게 진정 누리며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는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결과는 오직 시 37:16같이 됩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4. 배부른 자의 복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목마르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다는 복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2/3가 배고픔 속에서 잠자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배부름이라고 하는 것은 만족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하는 것은 늘 의를 추구하며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율곡선생은 '언제나 의를 행하라 죄 없는 사람 하나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 길을 가지 말라!' 의롭게 살려고 할 때 삶은 단순하여지고 강하고 힘이 있어집니다. 불의한 사람은 유치하게 됩니다. 가끔은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거짓말을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되는 피곤의 연속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를 추구하며 사는 가운데 완전하게 의롭게 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추구하는 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입혀주시는 의입니다. 이것이 수동적인 의입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마귀는 언제나 능동적인 의를 요구하고 그리스도는 수동적인 의를 요구한다'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가 의를 이루자, 의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덧입혀 주시는 의를 입고 살아야 합니다.
탕자---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의가 없어지니까 굶주림이 왔습니다. 찾아오니 옷을 입혀 주고 가락지를 끼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를 덧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만족이요, 배부름입니다.
의가 있으면 모든 것이 딸려 옵니다. 세상에서는 의롭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방법은 의롭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채우시는 배부름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하---어떤 사람이 그를 만났는데 살이 최근에 찐 이유를 물었습니다. 최근에 옛 임금들의 역사를 읽었는데 거기에 의로운 사람은 결국 잘 되고 불의 한 사람은 잘못된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리에 나가보니 불의한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많이 누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갈등 때문에 며칠을 고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자고 결심했더니 살이 쪘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심하는 순간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중요한 문제는 역시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복 받을 마음씨를 가져야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심령의 상태가 복을 받을 만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 빈 마음, 겸손한 하늘나라를 소유하는 행복이 임합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고 악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이 늘 위로를 받는 행복이 임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잘 온유하게 다스리는 자가 성을 차지하고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집니다. 의를 사모하고 그 의를 구하는 마음에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의 배부른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주석성경말씀] 예루살렘 비극에 대한 예레미야 탄식(애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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