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경배라는 단어가 있다. 경배는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높여야 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경배를 통해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
교회에서 사용하는 경배(敬拜)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경배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인간은 아담 이후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숭배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탄도 인간에게 숭배받기 위해서 자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주겠다고 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되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돌과 나무를 숭배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데 광야 길에 들어서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을 때에 밑에서는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했다. 인간은 누구든지 경배하고 있다. 그런데 경배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는 인간인 사탄을 숭배하게 된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면 나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인간이나 자연을 숭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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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옛날부터 샤머니즘 사상이 강한 나라다. 그래서 영매의 역할로 무당들이 많았다. 무당들은 연약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신과의 접촉을 통해서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여 많은 재물을 요구하여 굿을 하게 했다. 이런 샤머니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이와 같은 일들을 하나님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예언집회며 성도들을 미혹하여 예언해 준다는 식의 영매 역할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생활의 어려움과 삶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역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여 준다는 식으로 많은 헌금을 강요하여 강탈하고 있다. 이런 자들이 현대판 기독교식 무당이다. 하나님은 율법에 무당을 죽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혐오하신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이런 자들의 말을 따라가지 않을뿐더러 인간이나 자연을 숭배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인간을 경배하는 자인가? 아니면 오직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럼 하나님 앞에서 경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구약에는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경배를 배워보자.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경배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구약의 관점에서 예배를 말한다. 인간은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는지 인간을 섬기는지가 구별된다.
출24:1-2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여 시내 산에 올라오라고 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올라오게 하고 그들은 멀리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시내 산에 올라오는 자는 모세만 하나님께 가까이 올라오라고 했다.
여기에서 ‘경배하고’라는 단어가 (샤하 7812) 몸을 구부리다, 절하다, 엎드리다, 낮추다, 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자들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추어야 한다. 교만하고 거만하게 예배에 나오면 안 된다.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주님께 절하며 엎드리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장로 70명은 하나님의 위엄에 자신을 낮추어 땅에 엎드리게 되었다.
현재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고 있는가?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몸을 굽혀 절하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한다고 하면서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높이고 올려드리는 것이 경배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에서부터 별을 따라 메시아를 보러 왔다. 이 사람들은 별을 연구하던 사람으로서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우리가 동방에서부터 메시아의 별을 보고 예수님께 경배하려 왔다고 고백했다.
여기에서 ‘경배하러’라는 단어가 신약히브리어에 보면 (샤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예배에 나오면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의 의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주님께만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올려드리는 것이 경배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받은 자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누구에게 경배하는가? 사탄과 우상을 섬기게 된다.
출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패했다.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우상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주었고 아론은 이것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내 백성이 부패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고 말하기를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니 우상을 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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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예배하며’라는 단어가 (샤하)이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니 금송아지 우상을 예배하고 숭배하게 된다. 이런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사탄을 숭배하는 자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면서 안도감을 얻는다. 부패한 인간은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눈에 보이는 우상을 따라간다. 현재 많은 거짓그리스도들이 나타나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거짓그리스도의 말에 미혹되어 넘어간다. 하지만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
마4:9-10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서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 사탄은 예수님께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하시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하나님을 섬기라고 쓰여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경배하면’이라는 단어가 신약히브리어 성경에 (샤하)로 되어 있다.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사탄을 경배하는 시험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나도 사탄을 경배하지 않는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준다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나도 승리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약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자들과 같은 이 시대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사탄에게 경배한다. 거짓그리스도에게 경배하여 이 세상의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예배를 통해서 확실하게 구별된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서로 토론해 보자.
이렇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 어떠한 경배를 해야 하는가?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첫 아담은 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다. 이 죄의 대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고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다. 아담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의 근원인 땅을 갈게 하셨다.
여기에서 ‘갈게 하시니라’는 단어가 (아바드 5647) 일하다, 섬기다, 봉사하다, 경작되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열심히 땅을 갈게 하셨다. 이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경작하고 일하라는 뜻이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교회나 세상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일이다.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직장의 상사나 학교에서 교수나 선생님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상전에게도 복종하고 섬기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이 은사는 사람마다 각각 주셨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봉사하라고 주셨다.
엡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사도로 부르시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또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셔서 각각 은사를 다르게 주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세우고 하나님께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봉사’라는 단어가 신약히브리어 성경에 (아보다 5656) 노동, 일, 봉사, 섬김,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아바드)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신약에서 봉사하고 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교회에서 봉사함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가 있기 때문에 이 은사를 가지고 교회에서 열심히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경배하는 일이다. 현재 나는 세상의 일에서나 교회에서 나의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만약에 봉사하고 섬기고 있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토론해 보자.
우리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경배를 배웠으니 이제는 헬레니즘 관점에서 경배를 알아보자. 신약에도 경배라는 단어가 있다.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경배
신약의 헬라어의 개념의 경배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경배다. 헤브라이즘 관점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이지만 헬레니즘 관점은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찾아와야 하지만 경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직 주님만을 섬겨야 한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의 경배가 있다. 동방박사들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별을 보고 왔다.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경배하러’라는 단어가 (프로스퀴네오 4352)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프로스 4314) ~을 향하여, 라는 뜻과 (퀴네오) 입 맞추다, 라는 뜻의 합성어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와서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구원 주이신 예수님께 입을 맞추러 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경배다. 우리가 가룟유다를 생각하게 된다. 가룟유다는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입맞춤으로 팔았다. 자신은 외형적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에는 이미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진정한 경배가 아니다.
내가 예배에 나오면서 외형적으로는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님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경배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경배다. 외형적인 경건은 율법주의자들이 했던 행동들이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하여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기도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었다. 헬레니즘의 경배는 주님을 향하여 나와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행위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만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은 경건한 척만 하는 것이지 경건한 것은 아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나님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에게서 돌아서라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없으면서 종교심은 강하여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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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경건’이라는 단어가 (유세베이아 2150) 경건, 신앙심이 깊음, 하나님을 두려워함, 이라는 뜻이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두려운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기 위해서 경건한 척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경배와 헬레니즘 관점에서 경배를 공부했다.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고 예배를 드림으로 경배하며 내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타락한 생활을 한다면 이것은 경배의 생활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예배의 부름에 나와서 주님과 입을 맞추는 생활을 계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그러면 교회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오직 주님과 하나님만을 경배하게 된다.
[출애굽기 유월절 설교말씀] 유월절에는 누룩을 제거하라(출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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