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야곱의 벧엘 설교문] “사닥다리 신앙” (창28:10-15)

체데크 2020. 7. 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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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야곱의 설교문 중에서 벧엘에서 꿈을 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닥다리 신앙” (창28:10-15)

 

♣명제: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다가 본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야곱의 신앙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야곱을 생각할 때는 사기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형의 축복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복을 받은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심도 있게 묵상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영적인 장자가 되기를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산 것입니다.

 

창25: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을 표현하고 있는데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라고 말씀하시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이미지를 보면 에서는 외향적이고 야곱은 내성적이라 장막에서 엄마의 품에 있는 마마보이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야곱의 이미지를 속임수를 쓰는 사기꾼이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믿음을 세우는 자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תם탐 8535) 온전한, 완전한 자, 라는 뜻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순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노아와 욥입니다. 이 사람들은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야곱은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히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씀하실 때에 약속의 땅에 거류할 때에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장막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한 것입니다.

 

‘거하였으니’ (ישב야샤브 3427) 거주하다, 앉다, 동거하다, 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이삭 아버지와 장막에서 함께 거주하고 동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 것입니다. 반면에 에서는 들사람이라 밖으로만 돌아다니다 보니 하나님의 기업을 배울 수가 없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귀한 줄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기를 기뻐해야 하고 천국에 대하여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야곱처럼 세상에서 온전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을 높이고 영적으로 원죄를 씻김 받아 하나님 앞에서도 흠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야곱은 신실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장막 생활을 하는데 에서로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축복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여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리브가가 야곱을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하면 에서와 같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핍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친 나이가 대략 75세 정도 됩니다. 그 이유가 야곱이 애굽에 들어가 바로 앞에 섰을 때의 나이가 130세라고 말합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40세입니다. 30세에 총리대신이 되고 풍년이 7년 지나고 흉년이 3년째 들어설 때에 야곱이 애굽에 들어오게 됩니다. 야곱이 요셉을 낳았을 때의 나이가 대략 90세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이렇게 늙은 나이에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 처량할 수도 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보통 60Km 정도 됩니다. 고대 근동에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걸어 다닐 때에 하룻길이 20Km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도착한 것입니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전 산입니다. 그런데 벧엘은 하룻길을 더 걸어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야곱은 이 거리를 하루 만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까? 야곱이 얼마나 긴박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에서를 피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벧엘에 도착했을 때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이 늙은 나이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야곱의 상태로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잠을 쉽게 잘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편안히 잠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창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도망을 쳐서 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청하려고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누워서 잤습니다.

 

‘한 돌을’ (אבן에벤 68) 돌, 보석, 바위, 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사람들이 베개를 삼을 때에 딱딱한 물질로 베개를 삼았습니다. 야곱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많은 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의 돌을 취하여 베개를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돌이 신의 현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에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단을 만들 때에도 돌로 만들게 됩니다.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십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아들인 산돌로 나아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개는 잠을 잘 때에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나와 연합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니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닥다리가’ (סלם술람 5551) 사닥다리이며 이 단어는 (סלל쌀랄 5549) 들어 올리다, 칭찬하다, 높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사닥다리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 주님을 높이고 찬양으로 칭찬하고 예배드리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음으로 높이 들어 올릴 때에 구원의 역사가 있고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께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닥다리는 십자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들려야 만이 선택받은 자들이 하늘에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들려야 하리니’ (נשא나사 5375) 들어 올리다, 용서하다, 메다, 제하여 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십자가를 메시고 골고다에 올라가셔서 자신의 몸이 십자가에 들어 올리게 되면 모든 죄가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아담 이후로 태어난 자들은 모두가 원죄가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원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구원이 취소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완전하게 나의 죄를 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들려야 하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택받은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려진 것은 자신 스스로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독생자를 들려 올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도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서 있는데’ (נצב나차브 5324) 세우다, 정하다, 놓다, 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땅에 세워졌고 이것은 정해져서 이 땅에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닥다리는 반드시 이 땅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하나님과 죄인들이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사닥다리를 세워 정해 놓으시고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중보의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곤욕을 당하고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이런 모습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고난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힘들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끌려가는’ (יבל야발 2986) 이끌리다, 끌려가다, 메어가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골고다로 이끌려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온갖 수모를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도수장으로 끌려가서 죽는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바로 많은 양들이 있지만 유월절의 어린양을 지명하여 죽이고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이 누워있는 이 땅을 자손들에게 허락해 주고 축복의 근원이 되는 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어디로 가든지 지키시고 이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약속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은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니 이런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교회만 나왔다고 모두가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갈 수 있는 통로는 예수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다른 것으로 통로를 만들려고 하면 절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히12: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의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동물의 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중보가 되어 하나님께 상달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중보자로 영접하시고 믿으실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의 이름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에 하나님과 사닥다리가 연결 지게 됩니다.

전에는 내 힘으로 구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닥다리를 놓아주셔서 쉽게 하늘로 통하여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올라가야 합니다. 야곱은 앞날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오지만 벧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함으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사닥다리처럼 하나님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이 시간 만나시고 체험하셔서 앞으로의 삶을 맡기시고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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