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바댜 설교문 중에서 오바댜서를 통해서 교만이 가득 찬 에돔 족속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교만이 가득찬 에돔 족속”(옵1:1-4)
● 명제 : 에돔은 높은 세일 산에 거주함으로 교만해졌다.
● 목적 : 에돔과 같은 자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교만해진다.
오바댜서는 에돔 족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 족속의 교만을 들추어내면서 하나님이 에돔 족속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합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서 세일 산에 거주하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창36:8-9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야곱의 형 에서는 세일 산에 거주합니다. 세일 산에 있는 에서의 후손들은 에돔 족속으로서 에서가 조상이 됩니다. 세일 산은 사해 남단 동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악지대를 말하며 산의 정상이 해발 1,094m이며 산지 대부분이 구릉으로 된 고산지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에돔 족속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사는 위치가 요새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제로서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형제 나라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혀갈 때 기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족속에게 악한 감정의 골이 깊이 있게 박혀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어로 살펴보겠습니다.
‘세일’ (שעיר세이르 8165) 세일이며 (שעיר사이르 8163) 털이 많은, 숫염소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שער사아르 8175) 몹시 두려워하다, 소용돌이 치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세일 산에 거주하고 있는 에돔 족속들이 왜 교만했는지를 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털이 많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개념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서는 몸에 털이 많았습니다. 또한, 세일에는 숫염소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숫염소는 힘이 센 권세 자를 의미합니다.
단8:21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다니엘서에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 왕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말합니다. 세일 산에 거주하고 있는 에돔 족속은 자신들은 힘이 세고 살고 있는 장소가 요새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협할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여 교만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두려움과 공포가 있습니다. 제일 높이 올라간 사람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합니다. 마음이 폭풍우가 치는 것처럼 소용돌이치듯이 겁이 나고 두려워합니다. 현재 에돔 족속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그럼 현재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이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고 권세가 높고 재물이 많아서 세일 산과 같은 곳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구원받았다고 태연한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폭풍이 치듯이 심판받을까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현재 교회에서 율법주의자의 신앙이 에돔 족속과 같은 신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요새를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교만한 에돔 족속을 보면서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돔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탈락된 자들입니다. 에돔 족속은 구원을 자신의 행위와 능력으로 받으려고 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교만하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 구덩이로 던져지게 됩니다. 형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던 자들입니다. 선택받은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더 핍박하던 자들이 에돔 족속과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오바댜서를 통해서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옵1:1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오바댜의 묵시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돔에 관하여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말하는데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에돔과 싸우자 한다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바댜’ (עבדיה오바드야 5662) 오바댜이며 (עבד아바드 5647) 섬기다라는 뜻과 (יה야 3050) 여호와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오바댜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바댜는 신약에서 종의 형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오바댜서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싸워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돔 족속이 교만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이방 족속과 함께 힘을 합쳐 공격했던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에돔 족속과 같은 사탄과 싸워주셨습니다.
‘사자가’ (ציר치르 6735) 사자, 괴로움, 고통이며 (צור추르 6696) 대적하다, 공격하다, 도륙하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라들 가운데서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에돔 족속과 싸워서 그들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줄 사자를 하나님이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들 가운데서 보냄을 받은 사자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에돔 족속과 대적하여 공격해서 에돔 족속을 도륙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사자는 신약에서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에돔 족속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죽이고 핍박했던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구원받은 백성들 앞에서 대신 싸워주십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희희낙락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고통이 되고 눈에서 눈물을 흘려야 되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돔 족속을 파멸시킬 사자를 반드시 보내십니다.
‘보내심을 받고’ (שלח샬라흐 7971 동사, 푸알,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보내다, 통보하다, 갚다, 이간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에돔 족속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나라들 가운데에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이 사자는 에돔 족속의 멸망을 통보하여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간질했던 죄악 된 행동들을 보복하여 갚아주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나라들 가운데 사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푸알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완료 시제는 에돔 족속을 심판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오직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에돔 족속과 같은 율법주의자를 심판하기 위해서 마지막 날에 반드시 재림하게 됩니다. 주님은 재림하셔서 선택된 백성들은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율법주의자들은 심판하여 불못에 던져 넣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는 에돔과 같은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대신 주님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힘이 없지만 주님은 강력한 힘을 가진 분입니다.
옵1:2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보라고 합니다.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기 때문에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교회에서 큰소리치며 호령을 했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이 심판하셔서 에돔 족속을 가장 작게 만드신 것처럼 권세를 작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너를 하였으므로’ (נתן나탄 5414 동사, 칼,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남성, 2인칭, 단수) 주다, 갚다, 세우다, 던져 넣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해진 에돔 족속을 여러 민족 중에 가장 작은 나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대가로 갚아주고 있습니다. 여러 이방 민족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 백성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들을 자신들이 똑같이 당하게 됨으로 하나님은 멸망의 풀무 불에 던져 넣어버리게 됩니다.
칼형은 하나님이 이방 백성들을 통하여 직접 나라들 가운데 매우 작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완료 시제는 다시는 용서하지 않는 심판을 감행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반드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 호령했던 자들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고 가장 낮은 자리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다시는 회복이 되지 않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멸시를 받느니라’ (בזה바자 959 동사, 칼, 분사수동, 남성, 단수) 멸시받다, 경멸하다, 가볍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많은 나라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교만하게 다른 나라들을 비웃고 경멸했던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칼형은 에돔 족속이 다른 나라들에게 경멸과 멸시를 직접 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분사수동은 멸시를 받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경멸이며 하나님이 에돔 족속에게 허락했기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에돔 족속은 이미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한 DNA가 그들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우습게 보는 것이 이미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조상인 에서 때부터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창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밖에서 돌아와 배가 고플 때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떡과 팥죽으로 팔게 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는 단어가 (בזה바자)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경멸했습니다. 이런 에서의 행동이 그의 후손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교만해짐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하고 이방 민족들에게 경멸과 무시를 당하고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에돔과 같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경멸하고 모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멸하여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시고 많은 사람 앞에서 무시와 경멸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남을 경멸하고 정죄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옵1: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바위틈에 거주하고 높은 곳에 사는 에돔인들이여! 네가 마음에 말하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에돔 족속은 바위를 파서 집을 짓고 살았으며 높은 구릉지대에서 살기 때문에 적들이 쳐들어오기가 싶지 않았습니다.
‘너를 속였도다’ (נשא나샤 5377 동사, 히필,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남성, 2인칭, 단수) 미혹하다, 속이다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의 사람들은 자신들 마음의 교만 때문에 스스로를 잘못된 곳으로 미혹하여 하나님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속임을 당해 죽음의 길로 간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교만해졌기 때문에 죽음의 길로 갔습니다.
또한, 이들은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이방 백성들을 미혹하여 공격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히필형은 자신들 스스로 교만이 마음에 가득 차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는 의미입니다. 남들이 제지를 해도 제지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완료 시제는 자신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한 교만이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자아도취에 빠져 있음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율법주의자들도 에돔 족속과 같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신이 가장 거룩한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자신 외에는 높은 자가 없고 자신의 신앙이 최고인 줄 알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율법적인 신앙을 억지로 따르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교만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위틈에 살기 때문입니다.
‘바위’ (סלע셀라 5553) 바위, 절벽입니다. 이 바위는 높은 곳에 위치한 고 반석을 말합니다. 70인역에는 (πετρα페트라 4073)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럼 영적으로 에돔 족속이 바위에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의지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듣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을 말합니다. ‘반석’이라는 단어가 (πετρα페트라)입니다. 에돔 족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도 없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를 세운 자들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런 교회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앙 고백하여 세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틈에’ (חגו하가브 2288) 틈, 은신처이며 피신하다라는 어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위틈에 살고 있다는 것은 가장 높은 곳이며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피신할 수 있는 은신처에 살고 있음을 말합니다. 에돔 족속은 스스로 바위틈에 은신처를 만들고 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교회에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면서 바위틈에 은신처를 만들고 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주의 교회를 만들어 놓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나는 바위틈으로 피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행위의 구원을 부르짖는 자들은 거짓 바위틈에 숨어서 이것이 은신처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사는 자여’ (שכן샤칸 7931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단수) 정착하다, 거주하다, 머물다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은 높은 산에서 거주하면서 교만해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칼형은 에돔 족속이 세일 산에 거주하면서 자신들의 성읍을 만들어 요새화 시키고 교만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분사능동은 세일 산에 살면서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함을 비웃으면서 스스로 편안하게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주님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였기 때문에 내 안에 주님이 거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거하시매’라는 단어가 (שכן샤칸)입니다. 에돔 족속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은 행위로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거하신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에돔 족속도 반석 위에 스스로 집을 짓고 높은 곳에 살면서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반드시 멸망 당하게 됩니다.
‘능히 나를 끌어내리겠느냐’ (ירד야라드 3381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내려오다, 강림하다, 함락시키다, 낮추다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은 높은 곳에 올라갈 만큼 올라갔기 때문에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합니다. 자신들 스스로 마음속에 말하기를 누가 나에게 쳐들어 와서 함락시킬 수 있으며 나를 낮추어 땅에 떨어뜨릴 자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히필형은 자신 스스로 교만이 차서 자기를 세일 산에서 떨어뜨릴 자가 없다고 자만에 차서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자신들은 절대 외부의 나라에 의하여 떨어질 일이 계속해서 없음을 말합니다.
교회의 율법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명예와 재물들을 누가 감히 떨어뜨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내 것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강림하신들 나의 것을 빼앗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여 자신의 왕국을 만들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인간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높은 곳에 거주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옵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에돔 족속에게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에돔 족속이 높은 산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땅에 떨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교회에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대적하면 안 됩니다.
‘네가 높이 오르며’ (גבה가바 1361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높다, 고귀하다라는 뜻입니다. 에돔 족속이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서 자신 스스로 고귀하고 귀한척하지만 결국은 떨어지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도 자신의 신앙이 고귀한 것처럼 말하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전혀 고귀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필형은 에돔 족속 스스로 교만에 차서 독수리처럼 하늘로 올라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한 번 오른 교만은 멈추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한 번 교만해지면 내려올 줄을 모릅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사고가 나서 자동차는 박살 나고 사람은 죽게 됩니다. 율법주의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가다가 마지막은 심판을 받고 멸망받게 됩니다. 에돔 족속이 별 사이에 깃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별’ (כוכב코카브 3556) 별이며 (כוה카바 3554) 타다, 그슬리다, ~에 낙인 찍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돔 족속이 별 사이에 깃들이다는 것은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심판받지 않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별은 주의 사자를 의미합니다.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은 주의 목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하고 주님의 의로 구원받은 목자들입니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이마에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에돔 족속과 같은 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별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마에 짐승의 표가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주의 목자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된 목자가 있고 하나님께 선택받은 목자가 있습니다.
에돔 족속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과 사는 위치가 좋았기 때문에 교만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나는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세상의 권세가 나에게 찾아왔다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처럼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만이 됩니다. 인간의 의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환경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재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권세를 가지고 교회에서 높아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별처럼 생각하여 스스로 주님의 자리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구원의 기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영적 장자의 명분을 경멸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됩니다. 만세 전에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을 경멸하는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가 되어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앞에서 겸손히 신앙생활하시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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