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은 하박국 설교문 중에서 나의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나의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가?”(합3:16-19)
● 명제 : 나의 속사람의 기쁨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 목적 : 나는 속사람의 기쁨을 원하는가? 아니면 겉 사람의 기쁨을 원하는가?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는 백성들은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소망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심령과 영혼에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들이 볼 때에 전혀 부족한 것이 없음에도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심령에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나갈 힘이 떨어져서 자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새로운 힘을 부여해 주십니다. 이 힘은 매 주일마다 강단에서 내려오는 복음의 말씀으로 새 힘을 주십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나의 영혼은 시들해지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성이 끊어지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원죄에서 회복한 인생들은 주님의 소망의 복음을 들을 때에 힘이 생기고 마음에 기쁨이 넘치며 인생을 살아갈 때에 동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겉 사람은 세상의 정욕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안에서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싸우게 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만 겉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나에게 오는 기쁨은 어떤 기쁨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합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는 들었다고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엄청난 환난이 몰려온다는 것을 하박국 선지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민족들이 치러 올라올 때에 환난이 올 것을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민족에게 환난을 당한 뒤에 70년이 차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원하신다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있지만 바벨론에 의해서 육체는 환난을 당해야 합니다.
‘흔들렸고’ רגז(라가즈 7264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떨다, 흔들리다, 두려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은 환난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창자가 흔들릴 정도로 소스라치고 있습니다. 바벨론 민족들로부터 당할 환난을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바벨론 민족들과 같은 엄청난 환난이 육체에 몰려올 수 있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나에게 닥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바벨론과 같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습니다. 아직 나에게 닥치진 않았지만 그 파장이 불러올 것들을 생각할 때에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기도가 우리에게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닥칠 육체의 고난을 이미 알기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환난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환난이 닥치게 됩니다. 이럴 때에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의 환난이 올 때에 주님 안에 있으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기다리므로’ נוח(누아흐 5117 동사, 칼,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휴식하다, 쉬다, 평안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 군대들이 몰려오는 환난 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마음이 평안하고 안식을 얻으며 휴식기에 접어든 사람처럼 환난 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은 이미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자신은 그 환난 날을 기다리면서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 군대와 같은 환난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습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는 환난 날일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생활하면서 나가는 자체가 우리는 환난입니다. 이런 환난 날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 나는 평안하게 안식을 누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있어서 주님 안에 있으니 하나님께서 평안한 마음을 주시고 휴식할 수 있도록 나의 영혼을 쉬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제부터 내 주 안에서 속사람이 평안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박국 선지자는 환난 날을 근심 걱정으로 기다리는 것보다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갖고 기다립니다. 환난이 닥쳐오면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지고 밭에는 먹을 것이 사라집니다.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는 소가 없어집니다. 육적인 환난이 오면 육체가 먹을 것이 사라집니다. 고통과 고난이 닥치기 때문에 괴로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무화과 열매와 포도송이와 올리브 열매는 매주 중요합니다.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양식입니다.
환난 날이 오면 육체의 먹을거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육적 소망이 모두 끊어진 상태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의 먹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먹거리가 사라지면 육적인 소망도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닥친 환난이 나의 사업에 위기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들이 가질 소망이 무엇일까요? 세상의 육체의 소망일까요? 아니면 나의 속사람이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는 현재 당면에 있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갖겠다고 다짐합니다.
합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즐거워하며’ עלז(알라즈 5937 동사, 칼,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연장형) 크게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 개가를 올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환난 날이 와서 육체가 먹을 것이 사라지고 양과 소가 없어도 자신은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더 믿게 되고 환난에서 구원하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크게 기뻐하고 춤추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개가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현재 나에게 닥친 환난이 있습니까? 육적인 문제가 터져 힘들고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기뻐하고 개가를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고 즐거워하면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기회는 환난의 때입니다. 육적인 환난이 나의 신앙을 더 뜨겁게 만들고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제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속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하십니다.
‘기뻐하리로다’ גיל(길 1523 동사, 칼,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연장형)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사는 우리가 언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구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육적인 환난 날에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구원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현재 나의 육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꼬이고 있으며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면서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면 때가 되매 환난을 이기게 되고 큰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내가 바라볼 것은 육적인 열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합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시고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신다는 표현은 무엇일까요? 환난 날에 높은 곳에 다니면서 환난을 이기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사슴이 험하고 높은 지대를 올라 다니는 것처럼 환난이 험악하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환난과 맞서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슴과 같게’ אילה(아얄라 355) 암 사슴 이라는 뜻이며 אול(울 193) 권세 있는 자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박국 선지자를 사슴과 같게 하셔서 높은 지대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사슴처럼 환난을 짓밟을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셔서 권세 있는 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처한 환난의 문제도 하나님이 나를 사슴과 같게 하셔서 민첩하고 빠르게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십니다. 환난이 아무리 크고 험난할지라도 나는 사슴처럼 돌아다니게 됩니다. 사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험난한 곳을 누비면서 돌아다닙니다. 나에게 닥친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사슴은 높은 지대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발을 이렇게 민첩하게 만들어 주시고 사슴이 높은 지대에서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처럼 환난 날에 두려움을 주시지 않으면 나에게 닥친 환난을 얼마든지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다니게 하시리로다’ דרך(다라크 1869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밟다, 행진하다, 인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셔서 자신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현재 육적인 환난이 왔지만 주님 안에 있으니 환난의 문제들을 짓밟고 다닐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도 해결해 주셔서 앞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행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히필형은 하나님께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힘을 주셔서 환난을 짓밟고 다닐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계속해서 내가 높은 곳을 다니는 사슴처럼 두려움 없이 나에게 닥친 환난을 이기고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체의 기쁨과 즐거움은 잠시 잠깐입니다. 육체가 누리는 것은 이 땅에서 잠시이지만 속사람이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은 영원합니다. 나의 속사람이 구원을 얻고 주님과 함께 있으면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비록 현재 환난이 나에게 닥쳤어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무화과 열매가 없고, 포도송이가 없고, 올리브 열매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고, 양과, 소가 없어도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사업과 내가 하는 일이 현재 힘들고 어려워서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게 됨으로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의 기쁨과 즐거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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