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여호와의 이름 중에서 여호와 삼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삼마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에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삼마(יהוה שמה)”(겔48:35)
♣명제: 여호와께서는 새 예루살렘에 거주하시는 분이다.
♣목적: 여호와께서는 거듭난 자의 심령의 성전에 거주하신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서의 마지막 장이며 마지막 구절입니다. 에스겔서를 마지막으로 끝내면서 ‘여호와 삼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제사장 가문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을 바라보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난 후에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나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나누어졌는데도 이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의 왕국은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고 악한 왕들이 나타나면서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러다가 가장 악한 왕이 나타나는데 아합 왕입니다.
이때에 음녀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종교를 장악하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게 됩니다. 이렇게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살다가 결국 앗수르에 의하여 B.C. 722년에 나라가 몰락되어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동족이 하나님께 진노받는 것을 보았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악한 왕들이 나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다가 남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남 유다가 멸망을 당할 때에 예루살렘의 성전도 함께 무너지고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흩어지게 됩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통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음란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기 위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통이 찾아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세상에서 이방인들에게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고통당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방인의 땅인 바벨론에 잡혀가서도 하나님의 선지자 사역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곳에 계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화려하게 만들었던 여호와의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되어 도저히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장소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파괴된 성전을 보면서 슬퍼하게 되었고 모두가 흩어져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이 완전하게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야 할 새로운 땅까지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완전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것은 유형의 교회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유형의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영원하지를 못합니다. 이 세상에도 많은 유형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완전하지 못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함께 공존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시면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활되어 영원히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난 후에 새로운 땅과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분배받은 땅을 소유하고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형의 것이기 때문에 이방민족에 의하여 모두 멸망당하고 빼앗겼습니다.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땅을 분배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곳에 계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무형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겔48: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만드시고 이곳에 성전을 건축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었습니다. 이 문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만들었습니다.
계21:10-12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예루살렘의 성읍은 사도 요한이 보았던 새 예루살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성령에 이끌려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빛이 지극히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다고 말씀합니다. 크고 높은 성곽에는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는 열두 천사가 있고 문들 위에는 이름을 썼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쓰여 있습니다. 이 거룩한 성이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영원한 무형의 교회입니다. 이곳은 온전히 구원받은 백성들만 있는 곳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들어가는 곳입니다.
‘여호와 삼마’ יהוה שמה(예호와 삼마 3074) 여호와 삼마이며, יהוה(여호와 3068) 여호와라는 뜻과 שם(샴 8033) 거기, 그때,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그럼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예루살렘의 성읍에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만들었던 성전에 계시지 않고 새로운 성전에 영원히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첫 번째 성전은 율법을 중요시하면서 율법에 매여 있던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이 땅에서 멸망당하여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가 없고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율법적인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고 자신의 영광들만 취하는 교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새로운 성전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바로 부활되어 가는 무형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많이 생겨나는 교회입니다.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럼 무형의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다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이 성전이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시간이 지나면서 허물어졌고 예수님 당시에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화려하게 헤롯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이 성전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성전을 헐어버리면 주님께서는 사흘 동안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콧방귀를 내면서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는데 네가 어떻게 삼 일 동안에 세우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육적인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된 새 예루살렘의 성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위해서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곧 심판받고 무너질 성전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들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삶에 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들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는 것을’ שכן(샤칸 7931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단수) 정착하다, 거주하다, 머물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 가운데 거주하셔서 머물러 계시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성령이 함께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끝까지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게 됩니다. 그래서 ‘샤칸’이라는 단어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장막과 같은 나의 몸과 영혼에 함께하셔서 임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전 땅과 이전 하늘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율법의 장막에 있는 자들은 심판을 받아 고통당하는 삶을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듭나서 부활된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상급을 받아 새 땅을 분배받아 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복음 안에 있는 자들이며 새 언약에 있는 자들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새 언약을 받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성전에 함께 계시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셨다고 했습니다. ‘거하시매’ 라는 단어가 שכן(샤칸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즉시 임하여 거주하시고 정착하셔서 더 이상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까지 인도하셔서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난 자들은 구원이 취소가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새 예루살렘의 성읍을 보여주시고 이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이렇게 부름을 받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가셔서 살리려고 할 때에 예수님이 너의 오라비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자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의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안다고 말했을 때에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습니까?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새 언약을 받은 백성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며 생명이시고 죽었던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אמן(아만 539 정관사, 동사, 히필, 분사능동, 남성, 단수)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다, 믿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부활하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어 그분을 의지하고 지지하며 충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이렇게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는 자들은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신 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 이유가 정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만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믿음을 자신이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허락해주셔서 부활하신 주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히필 사역 능동과 분사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여호와 삼마’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אמן(아만 539 동사, 히필,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신뢰하다, 견고하다, 확신하다, 바라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내가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죽어도 살아나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이것을 믿으며 마지막 날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직접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히필 사역 능동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시간 나에게도 묻는 질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함께 하시며 영원히 떠나지 않고 부활될 것과 죽어도 살아나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떠한 세상의 외부적인 환경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이 확고하여 주님만을 따라갈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저와 여러분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거기 있다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의 심령의 성전에 계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 확신을 얻은 자들에게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된다는 이런 것에 미혹되어 믿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말에 믿음이 흔들려 나의 행위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는 계시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새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여호와께서 삼마 하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내 몸의 성전을 더럽히지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처음부터 책으로 원하는 분은 체데크바이블칼리지에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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