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전도서 6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낙을 누리지 못하는 소유의 허무(전 6:1-6)

체데크 2021. 5. 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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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6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낙을 누리지 못하는 소유의 허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덤으로 부귀영화를 받아 누린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솔로몬보다 더한 부를 누린 사람은 없습니다.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세상에서 모두 소유했지만 마지막은 허망할 뿐임을 말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없으면 허무하다는 것을 전도서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아도 구원받지 못하면 마지막은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 마지막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낙을 누리지 못하는 소유의 허무(전 6:1-6)

 

1절 예쉬 라아 아쎄르 라이티 타하트 하솨메쉬 베랍바 히 알 하아담

전 6: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6:1

폐단 - 솔로몬은 앞 장(5장)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주시는 선물을 편안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선한 일인지 보여 주었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의 폐단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일이며, 현재의 극히 위급한 경우에는 투자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일을 위해 저축하는 일이다. 이것은 솔로몬이 "해 아래에서" 친히 본 "폐단이다"(1절). 

"해 아래에는" 아주 많은 악이 있다. 해 위에는 악이 없는 세상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 께서는 "자기의 태양으로 하여금 선한 것" 위에도 비취게 하시고 "악한 것 위에도 비취게 하시는데" 이것은 악을 더욱 가중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이 일할 수 있도록 촛불을 켜 두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재능(달란트)을 게으름과 무익함 속에 묻어두고 그 불빛을 낭비해 버리기 때문에, 그 불빛을 받을 가치가 없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자기 신복(臣服)들의 태도를 주시하여 이러한 폐단이 공중(公衆)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일반 대중은 이런 자들의 낭비벽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하고 이들의 인색함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한다는 것이다.

몸 안의 혈액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재물이 유통되지 않고 정체(停滯)되면 나쁜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솔로몬은 전도자로서 폐단이 행해지는 것을 관찰하였는데, 이는 그것을 견책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폐단은 그 당시에 "흔하였다." 은과 금은 매우 풍부하여 사람들이 재물에 대한 애착은 덜 가질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시대도 또한 평화로운 때였고 어떤 어려움도 엿보이지 않는 때였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축재에 대한 유혹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어떤 섭리도 부패한 애착심 즉 세상과 세상의 일에 대한 육욕적 마음을 치유시킬 수 없을 것이다. "재물이 증가하면" 우리는 "거기에 마음을 쏟기 쉽다." 이제 이 인색한 자들에 대해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 '중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라브''풍성', '충분한', '증가하는' 등의 뜻이나 본절에서는 '(사람에게) 무겁게 압박하는', '무겁게 임하는'이라는 뜻으로 유추되어 사용되었다(Moffat, Eaton). 영역본들도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weighs heavily, NIV, lies heavy, RSV). 그런가 하면 혹자는 이'일반적인'(common, KJV)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Luther).

2절 이쉬 아쎄르 이텐 로 하엘로힘 오세르 우네카심 베카보드 베에네누 하세르 레나페쇼 미콜 아쎄르 이트아베 베로 야쉘리테누 하엘로힘 레에콜 미메누 키 이쉬 노크리 요칼레누 제 헤벨 바홀리 라 후

전 6: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6:2

어떤 사람은 ... 악한 병이로다 - 5장 말미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을 언급한 바 있거니와(5:18-20), 여기서는 온갖 부귀를 지니고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폐단을 소개한다. 왜 그러한 폐단에 빠지는가에 대해서는 본절에 명시되어 있지 않. 아마도 갑작스러운 재앙, 싫증, 혹은 과욕 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절'누리게 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먹다', '소비하다'의 뜻이(eat, KJV, NASB). 그러나 일부 영역본 중에서는 이를 의역하여 '즐기다'(enjoy, VIV, RSV)는 뜻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일부 주석가들도 이를 지지한다(3:10;15:16 참조, G.A. Baton, E.A. Eaton).

수전노라도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가 살펴보라.

하나님은 그에게 "재물과 부요함과 존귀를 주셨다"(2절).

"재물"과 "부요함"은 흔히 세상에서 "명예"를 얻게 해 준다. 그것이 설사 하나의 형상에 불과하더라도 "금으로 만든 상(像)"이라면 "모든 민족과 국가와 언어들이 그것에서 엎드려 경배" 할 것이다.

"부와 재산과 명예"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의 섭리가 주시는 선물이다. 이러한 선물은 하나님께서 비와 햇빛을 주시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일부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귀는 그것을 선용하지 않는 많은 사람에게도 주어진다. 그것을 편안히 사용하고 그 부귀로써 하나님을 섬길 만한 지혜와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못한 많은 사람에게도 주어진다. 평범한 섭리가 베푸시는 선물은 특별하신 은총이 거부된 많은 자에게 수여되는데, 이 특별하신 은총이 주어지지 않으면 섭리가 베풀어 주시는 선물도 흔히 이익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것이다.

3절 임 욜리드 이쉬 메아 베솨님 라보트 이흐예 베라브 쎄이헤이우 예메 솨나이브 베나페쇼 로 티세바 민 하토바 베감 케부라 로 하예타 로 아마르티 토브 미메누 하나펠

전 6: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6: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 낫다 하노리 - 구약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24:60; 29:31-35; 30:1,2; 27:14; 127:3-5). 그리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살며 장수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되었다(20:12; 11:9,21; 31:20; 34:12; 49:9; 10: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것은 외적 조건이나 환경보다 마음의 실제 상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준다. 또한 매장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기는 것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죽을 경우 가나안 땅에 매장되어 하나님의 기업의 축복권 안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던 열망에 비추어보면 훨씬 쉽게 이해된다(23:1-20; 25:8,9; 47:29,30; 50:12,13,25). 그리고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매장되지 못하는 사실 자체는 매우 불행한 사태로 여겨졌으며(14:19,20; 16:4,5 참조), 반면 열조의 무덤에 안치되는 것은 큰 영예로 여겨졌다(왕상 13:22; 14:18-20).

"그는 자기 심령의 모든 소원에 대해 부족함이 없다." 섭리는 그에게 너무나 관대하셔서 그는 "마음이 원하는" 만큼이나, 또는 그보다도 더 "소유하게 된다"(시 73:7). 그러나 그는 더 중요한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는 은혜를 바라지 않는다. 그가 소원하는 전부는 육욕의 충족이며, 또 그는 그것을 얻는다. 그의 "배"는 이들 "감춰진 보물로 꽉 채워진다"(시 17:14).

그는 수많은 자녀를 갖도록 되어 있다. 즉 그는 "일백 명의 자녀를 낳을 것이다." 그 자녀들은 그에게는 "전통에 가득히 들어 있는 화살"과 같아서 그의 가문을 유지시키는 힘이 되며, 자기 집의 명예요 신망이다. 그는 자녀들로부터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있고, 이 세상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불멸성을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자들이 자녀가 없으며, 있는 자녀도 모두 빼앗긴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그들은 "자녀로 가득하다"(시 17:14).

그의 행복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해 그는 "많은 해(年)를 살도록" 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사는 날이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은 햇수(年數)로 계산되기보다는 날수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해의 날수는 않다." 따라서 그의 체격은 강건하며 나이는 매우 느리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가 누리는 날은 더욱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천 년을 산다고" 되어 있는데(우리가 아는 바로는 어떤 사람도 여태껏 그렇게 살지 못하였다), 아니 "천 년의 갑절을 산다고" 되어 있는데, 2 천 년은 고사하고 그중 조그만 기간만 하여도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 재물로부터 모든 선을 찾을 줄로 기대하는 자의 어리석음과 그 재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을 발견하겠다고 기대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4절 키 바헤벨 바 우바호쎄크 옐레크 우바호쎄크 쉐모 예쿠세

전 6: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6: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덮이니 - '헛되이 왔다가'란 어머니의 태 속에서 불행한 죽음을 당함으로 이 세상에 짧은 순간이나마 목적 없이,, 아무런 유익한 결과 없이 존재한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두운 중에 가매''어두움 속으로 가'(departs in darkness, NIV;goes into darkness, RSV;goes into ovscurity, NASB)의 뜻으로서 죽음의 영역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나'란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어떤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칭이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한 인격 그 자체를 내포하고 있는 바, 낙태된 자가 어두움 속에 사라져 가버림으로 그의 존재 자체가 망가져 버림을 뜻한다.

전도자는 이런 사람보다는 낙태된 자가 더 낫다고 본다. "낙태된 자 즉 모태로부터 무덤으로 옮겨지는 아이가 "그보다 낫다." 썩을 때까지 매달려 남아 있는 과일보다 익기 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이 더 낫다. 수난 중의 욥은 역경 속에 있는 자기보다 "낙태된 자"의 형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욥 3:16). 그러나 솔로몬은 여기에서 이 세상의 호의를 베푸는 최대의 번영 하에 있는 속인의 상태보다 출생하기 전에 죽은 자가 더 낫다고 선언한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낙태된 자"의 형편이 매우 슬프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4, 5).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왜냐하면 이 세상에 대해 말하자면 태어나자 곧 죽어버리는 자는 헛되이 태어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중에 가버린다." 아무도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거의 주목하지도 않는다. 유산되기 때문에 그는 "이름"도 없으며, 설사 이름이 있더라도 곧 잊혀질 것이며 망각 속에 매장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신체가 흙에 덮이듯 그의 이름도 "어두움으로 뒤덮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5절) 태중의 암흑으로부터 무덤의 어두움으로 곧장 가버린다. 이것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 일이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대의 즐거움과 존귀함이 되는 것을 가져보지도 못한다. 고의로 무지하게 하는 자들이나 일부러 아무것도 알지 않는 자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낙태되는"자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5절 감 쎄메쉬 로 라아 베로 야다 나하트 라제 미제

전 6: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5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평안함이라 - 낙태된 생명도 불운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살면서 온갖 불행과 고통을 맛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뜻이다.

'평안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하트''안식', '조용함', '평온함' 등의 뜻을 지닌다. 한편 본절에서 전도자가 낙태된 자의 행복에 대해 언급한다고 해서 그가 낙태나 죽음을 옹호하는 비관론자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4:2,3 에서도 암시한 바와 같이 비관론적으로 언급한 것은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서 느낀 허무함을 염두에 두고 상대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9:4,5 참조).

6절 베일루 하야 엘레프 솨님 파아마임 베토바 로 라아 할로 엘 마콤 에하드 하콜 홀레크

전 6: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6:6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아니냐 - 여기서 '천 년의 갑절'이라는 기간은 인류 초기의 인간들의 삶의 년수와 비교해 보더라도 엄청난 기간이라 할 수 있다(5:1-32). 이처럼 오랫동안 장수를 누리더라도 마음으로 진정한 낙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면 낙태된 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본서 기자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낙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을 것이다(5:18). 본절에서 '낙을 누리지''토바 라아'는 문자적으로 '선을 보다'(have seen good, KJV)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의 뜻은 본서에서 '토브'가 이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며 낙을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2:13,24; 5:18 참조). 또한 '한 곳'이란 3:20과 같은 말로서 구약에서 모든 인간들이 죽을 때 가는 곳으로 여겨졌던 '음부'(37:35; 14:13; 89:48)를 가리키는 듯하(Lange, Delitzsch, G.A. Barton, M.A. Eaton).

그럼에도 전도자는 낙태자의 처지를 욕심 많은 수전노의 형편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 "이 낙태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안식이 있다." 왜냐하면 "전자"에게는 안식이 다소 있으나 "후자"에게는 안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자는 곤란과 불안이 없지만, "후자"는 끊임없는 동요 속에 있고 곤란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 곤란도 스스로 만든 자작지얼(自作之)인 것이다.

생명이 짧으면 짧을수록 안식은 더욱더 길어진다. 우리가 사는 날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더욱 줄어들며 우리가 아는 고난도 더욱 적어진다. 살다가 八十이 되어 죽는 것보다 네 살 어린아이로 죽는 게 더욱 좋다. 왜 "전자가 더욱 많은 안식을 누리는지"에 대해 그가 제시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한 곳으로 돌아가 휴식하게 된다는 점과 또 전자가 더 빨리 휴식을 취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6절).

"천 년을 사는" 자도 한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어린 아기와 같은 장소로 돌아간다"(3:20). 무덤은 우리 모두가 만나게 되는 장소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처해있는 형편이 각기 다르더라도 그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동일한 판결 아래 있고, 외견상으로는 동일한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묘지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침묵의 땅이며, 암흑 지대이고 산 자에게서 분리되는 곳이며, 잠자는 땅이다.

그곳은 빈자와 부자, 귀한 자와 천한 자, 식자와 무식한 자가 공동으로 모이는 집결지이다. 요절하는 자와 장수하는 자는 무덤에서 만나며, 다만 전자는 무덤으로 급행하고 후자는 더 느린 차로 갈 따름이다. 이 양자의 티끌은 섞여서 구별되지 않고 누워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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