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27편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다윗의 승리 확신에 대한 선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혹독한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사울 왕은 시련도 없이 왕이 되다 보니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환난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원수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다윗과 같이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어 승리를 확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의 승리 확신에 대한 선언(시 27:1-6)
1절 레다비드 아도나이 오리 베이쉐이 미미 이라 아도나이 마오즈 하야이 미미 에프하드
시 27:1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 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1
1-3절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강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확신이 너무도 강하여 어떠한 두려움도 그를 짓누를 수 없을 정도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 다윗은 여호와를 빛에다 비유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삼하 22:29에서는 하나님이 `흑암을 밝혀주는 등불'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흑암이 대적들의 위협과 그로 인한 수치를 상징한다면 `빛'(등블)은 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한다(Craigie).
나의 구원이시니 - `빛'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구원'은 구체적으로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다윗은 이 질문으로써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 수 없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위협하던 대적들의 힘이 약하여서 그가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대적들의 수는 많고 그 힘은 매우 강하였다(3절).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를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이러한 확신을 소유할 수 있었다.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 여기서 `능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오즈'는 `피난하다'는 의미의 동사 `우즈'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일반적으로 `안전한 장소', `피난처'를 의미한다(18:2; 28:8; 31:21). 그런데 `마오즈'의 어근을 `아자즈'(강하다)로 볼 때 `마오즈'는 개역 성경이나 대부분의 영역 성경처럼 `힘'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즈'가 본서에서 `피난처'또는 `거처'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으므로 본 구절에서도 `피난처'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내 생명의 피난처이시니'라고 번역되는 편이 좋다. 이와 같이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생명의 피난처로 삼음으로써 강한 대적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37:39; 느 8:10; 렘 16:19; 나 1:7).
2절 비크로브 알라이 메레임 레에콜 에트 베솨리 차리 베오예바이 리 헴마 카쉘루 베나팔루
시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27:2
2, 3절은 다윗의 원수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에 기록된 동사의 시제들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2절은 과거의 승리를, 3절은 미래의 승리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Craigie). 그리고 과거의 승리는 다윗에게 있어서 확신의 뚜렷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내 살을 먹으려고'라는 구절은 다윗이 그의 원수를 사나운 맹수에다 비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7:2; 17:12; 욥 19:22). 즉, 원수들은 사나운 맹수와 같이 그를 삼켜 버리려고 했었다는 것이다(Briggs, Kraus). 이와 달리 혹자는 이 표현을 원수의 `비방하는 말'에 대한 비유라고 해석했으나(Craigie) 지금까지 진술 내용이 생명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왔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브'는 `접근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전투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아마도 원수들이 다윗을 포위했거나 그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까지 접근했다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Calvin, Briggs). 한편,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저들이 패배했거나 또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Briggs).
이처럼 원수들은 다윗을 죽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였고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3절 임 타하네 알라이 마하네 로 이라 리비 임 타쿰 알라이 밀하마 베조트 아니 보테아흐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 `군대' 나 `진 칠지라도'와 같은 단어에서 우리는 다윗을 위협하는 원수들의 많은 수와 그 세력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과거의 놀라운 체험에 근거해 앞으로 벌어질 어떠한 원수들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두렵지 않다고 했는데 문법을 칼(능동태)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다윗은 어떤 원수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계속해서 원수가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4절 아하트 솨알레티 메에트 아도나이 오타흐 아바케쉬 쉬브티 베베이트 아도나이 콜 예메 하야이 라하조트 베노암 아도나이 우레바케르 베헤칼로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 원문에는 `한 가지 일'(아하트)이 맨 앞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본 구절에서 `한 가지 일'이란 단어가 강조되어 있음을 뜻한다(Briggs, Rawlinson). 그리고 `청하였던'이란 말은 완료 시제로서 다윗이 이 `한 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요구하여 왔음을 의미한다.
곧 그것을 구하리니 - 여기서 `구하리니'는 `청하였던'의 완료 시제와는 달리 미완료 시제이나, 따라서 이 두 단어를 연결시켜 해석하면, 다윗은 `한 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구하여 왔으며 아울러 앞으로도 이를 계속해서 구할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Delitzsch, Rawlinson).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끈질긴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Calvin).
내 성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 이는 다윗이 끈기 있게 소원한 한 가지 일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생전에'란 `평생 동안에'를 의미한다. 그는 앞으로 생존할 모든 날 동안에 여호와의 집, 곧 성소에 거하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처럼 성소에 상주(常住)할 것을 소원했다는 것은 아니며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겠다는 소원을 의미한다(Delitzsch, Lange, Calvin). 한편, 성소를 사모하는 다윗의 마음에서 현재 성소에 돌아올 수 없는 그의 어려운 처지를 엿볼 수 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암'은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등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 이 단어를 조금씩 달리 주석한다. (1) 혹자는 이를 영안으로 바라본 하나님의 `계시'에다 적용했으며(Delitzsch), (2) 또 어떤 학자는 공예배 시 경건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에다 적용했으며(Briggs, Rawlinson)), (3) 다른 사람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시로 보았다(Craigie).
여기에서 (3)의 견해는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의 앙망함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전쟁 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본 구절이 성전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아름다움'은 `계시'의 의미보다 성전 예배 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 (2)의 견해가 가장 적절하다.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 여기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르'는 본래 `조사하다'(investigate), `숙고하다'는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열망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충족될 수 있다.
5절 키 이츠페네니 베수코 베욤 라아 야세피레니 베세테르 오홀로 베추르 예로메메니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 원문 서두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본절은 다윗이 한 가지 일(4절)을 청하였던 그 실제적인 이유롤 보여준다. 본 구절은 물론 문자 그대로 환난 때에 다윗이 성소에 숨으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는 환난 날에 성소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Rawlinson, Calvin).
즉, 여기서 `초막', `장막'이라는 말은 다윗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한다. 여기서 `초막'(草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코'는 `덮다'는 의미의 동사 `사카크'에서 파생한 명사형으로 이스라엘이 광야 시절에 나뭇가지로 엮어 지은 집을 말한다(레 23:42). 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Lange).
바위 위에 높이 두시 리로다 - `바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는 `거대한 산'을 의미하는 말이며 이는 여호와의 별명이기도 하다. 이 바위는 사막의 모래밭과 같이 변형되지 않으며 어떠한 환난의 폭풍우가 몰아쳐도 언제든지 견고하다. 이는 곧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윗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안에서 안전히 거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6절 베아타 야룸 로쉬 알 오예바이 세비보타이 베에즈베하 베오홀로 지브헤 테루아 아쉬라 바아자므라 라아도나이
시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6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 승리의 영광에 대한 시적 표현이다.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 `즐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루아'는 축제 시에 부는 `나팔 소리'를 의미하는 단어로서(TWOT) 여기서는 축제의 기쁨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Kraus). 따라서 `즐거운 제사' 란 축제의 기쁨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로서 `감사의 제사'(107:22) 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Delitzsch).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여기서 다윗은 대적에 대한 승리로 인한 축제의 기쁨을 노래와 찬송으로 나타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찬송 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마르'는 `악기를 연주하다'는 의미도 가진다(TWOT). 이로 보아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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