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6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인을 떼시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을 떼시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6:1-8)
♣명제: 인을 떼는 것은 교회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목적: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지 깨달아야 한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를 나타내고 있는 책입니다. 반면 교회의 모든 상황을 말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계시록의 기본 바탕은 성막과 교회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신 것도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보여주시지 않고 앞으로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두루마리에 인봉 된 것을 보고 뗄 자가 없어 통곡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천사가 와서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일곱 인을 하나씩 떼어 나가실 것입니다.
7이라는 것은 완전과 휴식과 성령의 임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완전하게 끝이 날 것이며 종말의 끝에는 휴식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은 영원한 천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영원한 휴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영원한 구원을 받고 주님과 천국에서 영원토록 휴식을 갖으며 살게 됩니다.
(계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데 어린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인으로 봉한 하나를 열어 보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실 분은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때에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네 생물은 바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복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외칠 때에 크게 외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라’ ερχομαι(엘코마이 2064) 오다, 나타나다, 라는 뜻입니다. 명령법, 현재, 중수디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상징하는 네 생물이 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하여 복음을 들으러 오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 영혼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명령하여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지금 당장 주님 앞으로 나오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을 모두 놔두고 즉시 복음 앞으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복음은 지금 당장 들어야 살아나는 것입니다.
중수디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주님 앞에 나오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되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 6: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사도 요한이 본 것은 흰 말을 보았습니다. 그럼 흰 말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에게 흰색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바로 순결, 정결, 흠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말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쟁과 힘을 상징했습니다. 말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전쟁을 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도구입니다. 그래서 말을 가지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과 애굽이 말을 이용하여 전차를 몰고 다니면서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입니다.
흰 말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바로 복음을 가지고 있는 주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김 받고 복음의 권능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면류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상급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활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활은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전쟁무기로 영적으로는 바로 복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복음을 가진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 환난과 핍박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도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 인을 뗄 때에 흰 말을 탄 자가 나왔다는 것은 바로 초대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성령을 받고 죽기를 각오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던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런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받고 세상과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없이는 절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탄과 싸워 승리할 수 없습니다. 복음이 사라지면 세상에서 밟힐 뿐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계 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 인을 떼실 때에 둘째 생물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도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 생물이 나오라고 명령을 하니 붉은말이 나왔습니다. 그럼 붉은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붉은색은 속죄입니다. 하지만 붉은색은 고난과 핍박을 상징합니다. 붉은말을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핍박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붉은색이 상징하는 것이 속죄라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핍박하고 고난을 주어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붉은말을 타고 있다는 것은 권세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는 순교의 교회였습니다. 12제자들은 복음을 지키며 전파하다가 죽어갔습니다. 안드레는 스키티아에서 돌에 맞은 후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빌립은 스키티아에서 20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돌 십자가에서 순교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서 순교했습니다. 도마도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작살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에 붙잡혀 사형을 당했습니다. 베드로도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서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당했습니다.
‘허락을 받아’ διδωμι(디도미 1325) 주다, 하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성도들을 핍박할 수 있습니다. 욥을 핍박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설법은 사탄이 핍박할 권세를 하나님께 받고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이런 사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핍박할 권세를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런 권세를 주고 성도들을 핍박하게 하는 것일까요?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외부의 고난과 고통을 이기고 주님을 따라갈 만한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환란을 이길 만한 믿음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큰 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칼은 바로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란과 핍박 속에도 복음을 받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할 때는 핍박받을 때입니다. 이때는 더 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적과 이적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야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 더 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셋째 생물이 말하면서 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앞으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것은 검은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검은색의 개념은 두려움과 절망과 환난을 상징합니다. 밤에 강도들과 도적들과 사나운 맹수들이 다니기 때문에 두려워했고 전염병이 밤을 타고 이동하여 밤에 마을을 덮쳐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검은 말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죽음을 말합니다. 영적 기근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이 사라져 버리고 먹을 양식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교회가 먹을 양식이 없음으로 두려워지고 영혼의 기갈로 인해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검은 말을 탄 자의 손에는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울을’ ζυγος(쥐고스 2218) 멍에, 저울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על(올 5923)입니다. 이 단어는 עלל(알랄 5953)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삭 줍다, 갈증을 채우다, 조롱하다, 모욕하다, 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기근의 시대가 되니 먹을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저울을 가졌다는 것은 멍에를 맨 것인데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며,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면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먹을 것이 없으니 이삭을 줍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굶주린 배를 겨우 채우는 것이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기저기 동서남북으로 다녀 힘들게 영적 갈증을 해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복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먹고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먹고 광주리에 가득 남았습니다.
(계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사도 요한이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한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도 말라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럼 이 음성의 뜻은 무엇일까요? 성경시대 사람들의 삶은 힘들고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서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하루 벌이가 없으면 굶어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의 품값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성경시대에 하루의 품값으로 밀 한 되를 사서 온 가족이 먹기에도 부족합니다. 보리 석 되를 사서 먹는 것도 턱없이 부족한 양식입니다. 보리는 원래 가축을 먹이던 것입니다. 기근이 왔을 때 사람들이 먹던 양식이 보리입니다. 보통은 밀을 먹었습니다. 하루 품값으로 보리까지 살 정도라면 가난과 기근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감람유는 올리브기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빵을 먹을 때 올리브기름에 찍어 먹었습니다. 포도주는 없어서는 안 될 양식입니다. 그 이유가 광야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음료수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해지고 기근이 오니 고급식품인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살 생각도 못하는 것입니다.
‘해치’ αδικεω(아디케오 91) 잘못 행하다, 불의를 행하다, 해롭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명령법, 과거, 능동, 단수입니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너희들이 살 생각조차 하지도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올리브기름은 성막에서 금 등대를 밝힐 때 사용하는 기름입니다. 포도주는 양식이면서 유월절 절기에 사용하던 것입니다. 능동법은 너희들이 하나님께 사용되는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땅에 기근과 가난이 왔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에 복음이 사라졌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암흑기와 같은 시대에 복음을 찾기 위해 돌아다녀도 영혼을 채울 수 없는 말씀만 있었습니다. 가장 비싸며 고급품인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와 같은 복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보리와 밀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것마저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리와 밀을 먹고 겨우 생명을 연장해 나가는 사람들과 교회가 있습니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 같은 고급의 복음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올리브기름과 포도주가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갈증 나서 죽어가는 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해야 합니다. 맛있는 올리브기름에 빵을 찍어 먹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이 충만해지는 것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이 없으면 교회는 병들게 되고 기근이 와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계 6:7-8)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넷째 생물의 음성이 들리면서 사도 요한에게 오라고 명령하는데 청황색 말이 보였습니다. 그럼 청황색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혼합주의에 빠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교회입니다. 이단의 교리에 빠지고 세상의 상담과 심리학에 빠진 교회입니다. 세속에 강단이 물들어간 교회를 상징합니다. 비 복음이 판을 치는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청황색 말에 탄 자의 이름을 보니 사망이라고 했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혼합주의에 빠진 교회는 영혼을 죽입니다. 영혼을 모두 음부의 불 못에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세상의 비 복음이 들어와 강단을 점령하고 율법주의들이 판을 치는 교회입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구원이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 없기 때문에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적인 것만 잘되면 복을 받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사망이 반드시 있고 음부가 계속 따라다니게 됩니다.
사망의 권세 자들이 받은 것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큰 권세를 받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들이 하는 짓은 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검은 잘못된 비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결국 많은 영혼들을 잘못된 검을 사용하여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비 복음의 칼을 흔들면 성도들은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복음의 칼을 흔들어 생명을 살려내야 합니다. 흉년이 든다고 했습니다. 배고픔과 기근이 오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교회가 영적으로 배고픔과 기근에 휩싸이게 됩니다. 많은 영혼들이 배고파 주림으로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수한 복음의 말씀을 먹어야 살아납니다. 십자가의 피의 복음만이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사망과 땅의 짐승들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청황색 말을 탄 자는 결국 사망을 몰고 오는 것이고 땅의 짐승들을 죽이는 것처럼 수많은 영혼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음부의 불 못으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혼합된 교회는 안 됩니다. 결국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나는 현재 어디에 서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좋은 것이 좋다.라고 말합니다. 교회도 세상과 타협하면서 좋은 것을 취해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교회입니다.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혼합주의가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에 물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빠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에 물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세속화되어가고 있다면 복음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오셔서 영혼의 피 값을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개인도 깨어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대충 신앙생활하면서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면 이제 복음의 말씀으로 깨어나 잠자고 있는 나의 영혼에게 일침을 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 우는 사자와 같이 나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굶주리며 비실거리면 어떻게 사탄과 영적 전투를 할 수 있습니까? 이제 교회와 개인이 깨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봉을 떼시는 것은 마지막 날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반드시 신앙과 믿음을 물을 실 때가 올 것입니다. 이때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도록 복음을 사수하고 지켜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9장 설교말씀] 부딪칠 돌(롬 9:30-33) (0) | 2020.10.22 |
---|---|
[요한계시록 8장 설교말씀] “일곱째 인”(계8:1-5) (0) | 2020.10.22 |
[요한계시록 15장 하나님 말씀] 일곱 재앙의 시작(계 15:1-8) (0) | 2020.10.20 |
[요한계시록 6장 하나님 말씀] “인을 떼시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계6:9-17) (0) | 2020.10.20 |
[로마서 10장 짧은 설교] 믿음이란?(롬 10:17) (0) | 2020.10.18 |
[요한계시록 5장 설교말씀]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계5:1-8) (0) | 2020.10.17 |
[요한복음 10장 짧은 설교] “자기 양을 부르느니라”(요10:1-6) (0) | 2020.10.17 |
[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 1:1-8) (0) | 2020.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