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인물 설교문 중에서 요셉의 설교 중에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애굽에 팔리는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감(창 37:25-28)
♣명제: 요셉이 팔려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역을 위해 빌라도에게 넘겨짐을 예표 한다.
♣목적: 요셉은 야곱과 형제들을 위해 애굽에서 생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의 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사람입니다. 야곱에게 가장 사랑받던 아들이며 또한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게 했던 아들입니다. 요셉의 나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요셉의 나이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7의 숫자적 의미를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아 보겠습니다. 17은 승리, 영적 질서의 완전, 성령의 임재,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나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가서 보디발의 노예로 살게 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지만 유대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 공생애의 사역을 하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승리이며 영적 질서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적 승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고난주간에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의 삶만 안다면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의 모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셉이 형제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셉은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의 시기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갔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기하고 질투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의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편안하게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로서 상인들입니다. 애굽에 가서 상품들을 파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이스마엘에게 요셉을 팔아버리고 있습니다.
‘길르앗’은 (גלעד길르아드 1568)입니다. 이 단어는 (גלעד갈에드 1567)입니다. 이 단어는 (גל갈 1530) 돌무더기, 라는 뜻과 (עד에드 5707) 증거, 증언, 증인, 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의 상인이 길르앗에서 온다는 것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스마엘의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죽음과 같은 돌무더기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거가 되고 증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다는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27:1-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께서도 요셉처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결박당하셔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짐을 당하셨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기 위하여 넘겨짐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동족들에 의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괴롭힘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며 하나님 앞에서 증거와 증인이 되어 원죄에 빠졌던 내가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죄악에서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스마엘 상인들이 낙타에 싣고 가는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향품’은 (נכאת네코트 5219) 향료, 라는 뜻입니다. 어근은 (נכא나케 5218) 맞은, 상처 받은, 괴로워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 향료는 잘게 부수어 만든 가루입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에 가서 고통을 당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잘게 부수어져서 채찍에 맞으시고 상처를 받았으며 괴로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는 기쁨과 즐거움의 향 재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의 상한 심령과 상한 영혼을 위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거룩한 향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나에게는 기쁨의 향품이 되어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유향’은 (צרי체리 6875)입니다. 어근은 (צרה차라 6869) 괴로움, 환난, 고난, 고통, 고통하는 소리, 라는 뜻입니다. 이스마엘 상인이 요셉과 함께 유향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애굽에서 요셉의 삶이 괴로움과 환난과 고통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받아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고통과 환난의 날이 닥치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해야 하며 아무 죄도 없이 주님은 마음속으로 통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고통과 고난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몰약’은 (לט로트 3910)입니다. 어근은 (לוט루트 3874) 덮다, 가리다, 숨기다, 감싸다, 라는 뜻입니다. 요셉을 이스마엘의 상인들이 몰약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서 보호해 주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은 요셉을 숨겨주셔서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의 원죄들을 덮어주시고 은폐하여 숨겨서 감싸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나의 죄가 보이지 않게 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나를 덮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를 보시고 죄가 없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상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향품과 유향과 몰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상품들입니다.
창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에 유다가 동생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고 제안을 합니다. 요셉도 우리의 동생이며 혈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살리자고 제안한 사람은 르우벤과 유다였습니다. 그럼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갔기 때문에 장자에서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그다음이 시므온과 레위입니다. 이들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살인하여 장자에서 박탈되었습니다. 그 다음이 유다입니다. 유다는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요셉을 살리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자입니다. 만약에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다 자손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신약에서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입니다. 요셉의 보호 아래 사생애를 준비하신 분이 유다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공생애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요셉을 살려주는 것은 신약의 요셉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한 가뭄에 유다가 죽지 않고 요셉을 통해서 살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된 것입니다.
창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결국 요셉은 형제들에 의하여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는데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이십에 팔리고 있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죄도 없이 애굽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은 이십에 요셉이 팔려간 것에 대한 영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은’은 (כסף케쎄프 3701) 은, 충분한 대가, 속전, 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을 팔고 형제들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이십 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충분한 대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의 대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속죄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은 이십 개의 속전을 받은 것입니다. 원죄에서 해방되는 속전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원죄가 없는 것입니다. 이 은이 나의 영원한 속죄의 대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은과 같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속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을 20개 주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20의 숫자적 의미는 기대, 기다림, 구속,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십 개의 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속죄를 기다리면서 천국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속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땅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세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을 믿는 것이 은을 20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성취가 되었습니까?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렸습니다. 은 삼십은 노예의 값이었습니다.(출21:32)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노예의 값어치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노예의 값어치밖에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입니다. 이런 분을 노예의 값으로 팔아버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에 팔아버린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숫자 30은 알맞은 순간, 그리스도의 피, 헌신, 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버린 것은 하나님의 때에 가장 알맞은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하여 예언되었던 대로 가룟 유다를 통해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헌신하심으로 죽었던 내가 살아났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 의하여 은 20에 팔린 것은 바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은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먼저 애굽에 가서 야곱과 형제들을 가뭄에서 살리는 준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원죄에 빠져 죽었던 영혼들을 살리시는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요셉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고통이 아니었다면 내가 절대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요셉을 애굽에 보내셔서 세상의 가뭄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영적인 가뭄에서 영혼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시면서 항상 주님께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아 산 설교문]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숫양”(창22:13) (0) | 2020.07.04 |
---|---|
[성경인물 이삭 설교문] “젖을 떼는 날에”(창21:8-9) (0) | 2020.07.04 |
[성경인물 야곱 설교문] “야곱에서 이스라엘로”(창32:22-28) (0) | 2020.07.04 |
[성경인물 야곱 설교문] “영원히 이스라엘이라 하라”(창35:9-15) (0) | 2020.07.03 |
[성경인물 그두라 설교문] “그두라의 헌신”(창25:1) (0) | 2020.07.02 |
[아브라함 설교문]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0) | 2020.07.02 |
[이삭 설교문] “그랄의 은혜”(창26:1-4) (0) | 2020.07.02 |
[야곱 설교문] “마하나임이라 하라”(창32:1-2) (0) | 2020.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