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엘리야 설교문] “내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왕상18:30-40)

체데크 2020. 6. 22. 19:48
반응형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엘리야 설교문 중에서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한 사건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왕상18:30-40)

 

명제: 우상을 제거하려면 무너진 제단을 쌓아야 한다.

목적: 내 마음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는 자가 되자.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이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통일왕국시대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 솔로몬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들과 결혼 동맹을 맺으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이방의 우상들을 가지고 들어와 여호와 하나님의 신전 앞에 우상의 신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게 됨으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이후에 나라를 쪼개어 북 이스라엘 왕조와 남 유다 왕조로 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배경은 북이스라엘 왕조의 아합 왕 때의 사건입니다. 시돈의 왕 엘 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합과 결혼시킴으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정도로 우상을 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종이 나타나는데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갈멜 산에서 대결을 하게 됩니다. 바로 불을 내려 진짜 신을 가르자는 것입니다. 원래 바알의 신은 번개를 일으키는 신으로 인간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바알의 선지자들이 유리한 입장으로 도전을 신청했기 때문에 바알의 선지자들은 당당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결투는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의 싸움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바알신의 싸움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무리들과의 싸움입니다. 진리와 비 진리의 싸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적 의미로는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우상들과 싸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우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올 해는 주님이 기뻐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내 안에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왕상 18:30-31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엘리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금까지 바알을 섬기기 위해 쌓았던 제단을 허물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야곱의 12 아들들의 지파를 따라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제단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돌 제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도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수축하되’ (רפא라파 7495) 고치다, 치료하다, 되살아나다, 완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현재까지 여호와의 제단은 풀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런 제단을 다시 새롭게 단을 수축하고 있습니다. 이 제단을 다시 쌓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다시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있는 영혼들이 말씀으로 치료를 받아 온전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무너져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즉시로 돌 12개를 가지고 와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이 단을 쌓으면서 엘리야는 절대 이 제단은 우상의 제단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이 우상을 섬기는 제단으로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갈멜 산에서 다시는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단은 지금까지 완전하게 무너져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복원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장소로 만든 것입니다. 12의 숫자적 의미는 통치의 완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통치하셔야 만이 승리할 수 있는 민족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니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치하시고 올 한 해도 인도해 주셔야 만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서 여호와의 제단은 무너지고 황폐해져 잡초만 무성한 심령이 되었다면 이곳에 다시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해 주시고, 영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기도의 제단을 쌓고, 예배를 회복하는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내 마음 속에 여호와의 제단이 다시 수축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제단에 제물이 드려져야 합니다.

 

왕상 18:32-34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엘리야는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고 제단에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곡식을 둘 수 있는 도랑을 파고 나무를 벌여 놓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으라고 합니다. 또한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는데 12번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랑을’ (תעלה테알라 8585) 수로, 도랑,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לה알라 5927) 올라가다, 치료받다, 이끌어 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엘리야가 도랑을 파는 것은 곡식을 놓기 위해서입니다. 곡식은 소제를 나타내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 이유는 맷돌에서 곡식이 갈려져야 만이 고운 가루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제를 통해 하나님께 제사가 올라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영혼이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서 회복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재 죄악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의로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각을 떠서’ (נתח나타흐 5408) 조각조각으로 끊다, 나누다, 쪼개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있습니다. 송아지의 제물은 번제에 드리게 됩니다. 송아지의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송아지에게 안수하여 인간의 모든 죄들을 전가시키고 송아지는 죽음으로 불태워져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각을 뜨는 것은 송아지의 모든 부분들을 조각조각 내서 구분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이 있어야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송아지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고 우상에게 드려진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즉시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면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송아지의 모든 가죽을 벗기고 뼈를 추리며 내장과 정강이와 머리를 구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각을 뜨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았던 제물과 제사장의 역할이 없었던 것을 완전하게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하게 송아지의 각을 떴습니다.

 

우리도 내 안에 우상으로 채워졌던 제단을 허물고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다면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제물이 없으면 하나님은 나의 제사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릴 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제단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이 없는 것은 모두가 우상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그리하니’ (שלש샬라쉬 8027) 세 번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난 후에 소제와 번제를 드릴 제물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물을 부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통 네 개를 가지고 세 번 행하라고 명령했더니 사람들이 번제물에 물을 세 번째 붓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을 부으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불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바알의 신은 번개의 신이면서도 불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많은 거짓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사람들 몰래 번제 물 밑에서 불을 피워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작은 의심도 갖지 못하도록 물을 갖다 부으라고 했는데 총 12번의 물을 쏟아붓게 됩니다. 12는 통치의 완전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12라는 숫자를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야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행동에 옮겨 통 네 개로 세 번씩 제물과 나무에 물을 붓고 있습니다. 명령에 온전하게 반응한 것이며 이 세 번의 명령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기적을 믿게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말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물로 깨끗하게 씻어 온전하게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죄악들이 씻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에 여호와의 불이 내리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제단이 수축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제물이 있으면 성령의 불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상의 씨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왕상 18: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엘리야는 제단에 물을 붓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불로 제단에 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불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의 제물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모두 마르게 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두려워 엎드리면서 여호와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기손’ (קישון키숀 7028) 기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v/q(코쉬 6983) 덫을 놓다, 미끼를 놓다, 올무로 잡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나서 바알 선지자들을 붙잡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잡아서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죽이고 있습니다.

 

기손 시내는 갈멜 산 아래에 있는 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것에 대한 영적인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엘리야를 통해 갈멜 산에서 대결을 벌이게 한 것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기 위한 덫을 쳐 놓은 것입니다. 사냥꾼이 덫을 놓고 동물들을 잡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상의 선지자들을 불을 내리는 제사라는 미끼로 유인하여 올무로 잡아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좋아하면 우상입니다. 내 안에 조그마한 우상이 있다면 완전하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알의 선지자들을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올해는 내 안에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보혈이 내 심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무너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을 새롭게 쌓아야 합니다. 무너진 십자가 예배를 회복하고 사라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안 되는 예배는 죽은 예배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상담과, 심리학과, 문학과, 과학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강단들도 이런 것들로 물들어 간다면 죽은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기쁘게 하는 제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제단이 올 한 해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구원받은 자들의 심령과 강단에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 설교] “다윗과 요압”(삼하12:26-3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윗과 요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점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윗과 요압”(삼하12:26-31) ♣명제: 다윗은 예수 그리스��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