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1장 설교말씀 중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위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주님께서 신부인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의 그림자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매일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위한 사랑의 고백”(아 1:15-17)
♣명제: 솔로몬의 사랑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 하는 메시지이다.
♣목적: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나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하여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몰약을 담는 향주머니와 같다고 말하였고 엔게디의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신부가 신랑에 대한 최고의 찬양을 올려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귀한 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말을 듣고 신부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하여 볼 때에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나를 향하여 사랑의 고백을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주님은 나를 향하여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만왕의 왕께서 천한 자를 향하여 사랑하고 있다는 이러한 표현이 정말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계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은혜입니다.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분이 나를 찾아오셔서 사랑한다고 나의 귓가에 속삭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예쁘다고 두 번이나 연거푸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눈에는 정말 술람미 여인이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의 눈을 보고 비둘기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라고 말합니다. 신부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눈을 보면서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같구나’ יונה(요나 3123) 비둘기,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눈을 보고 비둘기 같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비둘기는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던 날짐승입니다.
레12:8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율법에는 해산한 여인이 가난하여 번제를 드릴 때에 어린 양을 드리기 어려우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처지가 가련하고 가난한 처지에 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솔로몬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육적인 모습이 가난하고 자신의 위치가 다른 사람보다 밑에 있다고 하여 기죽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의 눈빛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솔로몬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유대 랍비들은 아름다운 눈은 아름다운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38: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이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고침을 받은 후에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제비와 같이 학과 같이 지저귀고 비둘기 같이 슬피 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자신은 고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의 눈을 보면서 비둘기 같다고 말하는 것은 술람미 여인의 처지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오직 신랑인 솔로몬만을 찾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솔로몬 왕을 통하여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의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비둘기의 개념은 한번 짝을 이루면 평생토록 함께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암컷이나 수컷 중에 한 마리가 먼저 죽어도 절대 다른 비둘기와 짝을 맺지 않고 평생 혼자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정절의 새로 유대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영적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까?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바라보면서 비둘기 눈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현재 세상에서 지혜가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여 가난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앙망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신랑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용서를 구하고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우상과 짝하지 않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죽을 때까지 모시면서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전도를 보내시면서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순결하라’ ακεραιος(아케라이오스 185) 순결한, 섞지 않은, 흠 없는, 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비둘기 같이 지혜로우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κεραννυμι(케란뉘미 2767) 섞다, 혼합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시는 의도는 세상에서도 절대 죄악들과 물들지 말고 영적으로 순결하여 흠 없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우상들을 혼합하여 더러운 것을 전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니 진리의 말씀인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한 상태입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는 오직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순결하고 세상과 혼탁하게 섞이지 말아야 되며 특히 거짓된 비 복음을 받아들여 나의 영적인 신앙이 진리인 예수님의 신랑을 버리고 거짓된 신랑을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아1: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야!라고 말하면서 너는 예쁘고 화창하다, 라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얼굴 표정이 신랑을 만나니 밝아지는 것입니다. 신부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신랑을 만날 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솔로몬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다가 이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침상은 푸르다고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침상은’ ערש(에레스 6210) 침상, 자리, 라는 뜻입니다. 이 침상은 커튼이 있는 아치형의 침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밀실로 인도하여 이미 준비된 처소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 침상을 통하여 솔로몬과 하나가 되고 지금까지 억울했던 모든 일들과 힘들고 지쳤던 것들을 위로받고 고침 받는 것입니다.
시41: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붙들어 주시고 병든 자들이 누워있는 침상에서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병든 자가 침상에서 고침을 받는 위로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병상에서’라는 단어가 ערש(에레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 함께 침상에 누우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과 죄악들과 병들의 짊이 솔로몬을 통하여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영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면서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살았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다 보니 영적으로도 탈진하여 나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태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자신의 밀실로 인도하여 함께 누워 자는 것입니다. 나의 죄악의 병을 고쳐주시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탈진된 것도 다시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예수님을 통하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거처가 예비되면 신랑인 예수님은 신부인 나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만 살 수 있는 밀실을 만들고 침대를 만들어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런 침상에 신랑과 함께하니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세상의 위로가 아니라 신랑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푸르고’ רענן(라아난 7488) 신선한 기름, 푸른, 청청한, 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우리의 침상이 푸르다고 말하는 것은 이곳에 신부가 들어오면 사시사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푸르면서 청청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선한 기름을 공급하여 신부에게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가뭄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푸를 것입니다. 세상에 가뭄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주님으로부터 신선한 기름을 공급받아 항상 영적으로 만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침상을 떠나게 된다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예수님의 침상에 함께 있는 신부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되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됩니다. 항상 신랑으로부터 새로운 기름을 공급받기 때문에 영육으로 푸르고 청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침상에 함께 하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렘8: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죄를 지으면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어지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어지며 그 잎사귀가 말라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침상에 함께 눕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신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랑을 쳐다보고 다른 신랑을 따라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은 반드시 잎사귀가 말라버려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침상에 올라가 함께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1: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과 함께 사는 집이 백향목 들보와 같고 잣나무 서까래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솔로몬의 표현을 통하여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백향목’ ארז(에레즈 730) 백향목,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רז(아라즈 729) 견고하다, 단단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향목은 소나무 과의 상록수로서 보통 24m-30m 또는 40m씩 자라며 그 곁가지는 10m씩 뻗어 있습니다. 특히 이 나무는 줄기가 곧게 뻗어 자라고 나무의 질이 견고하여 양질의 건축 목재로써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성전을 지을 때에도 백향목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영원히 살 집은 절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백향목은 나무 중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 정도로 견고하고 기품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랑은 신부와 함께 살 집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지어 영원히 신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신부는 예수님이 준비한 처소에 있으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되어 단단하기 때문에 벌레가 먹지 않는 것처럼 신앙이 좀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침상이 있는 집에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신앙이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들보’ קורה(코라 6982) 들보, 지붕, 이라는 뜻입니다. קרה(카라 7136) 들보를 놓다, 만나다, 임하다, 만나러 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백향목 나무를 가지고 신부와 살 집의 들보를 만들었습니다.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들보는 아주 중요합니다. 지붕을 씌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보를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튼튼한 집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신부인 나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셔서 준비하는 거처는 백향목으로 만드는 들보처럼 아름답고 견고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만드신 후에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데 이 들보를 놓는다는 의미는 신부와 신랑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나를 만나러 오시는 것입니다.
백향목 들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인생들을 신랑의 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드리자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견우와 직녀가 서로 헤어졌다가 음력 칠월 칠석 날에 견우와 직녀를 서로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을 잇대어 만든다는 다리가 오작교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서까래로구나’ רחיט(레히트 7351) 서까래, 널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רהט(라하트 7298) 물구유, 속이 비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침상이 있는 집은 잣나무로 서까래와 널판을 만들어 집을 지었습니다. 잣나무도 역시 소나무 과의 상록수입니다. 이것은 보통 17m-20m 정도로 자라며 일반 솔잎보다 두꺼운 다섯 잎을 내고 나무질이 견고하고 색깔이 좋아서 백향목처럼 건축 재료로 잘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백향목과 잣나무는 번영과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나무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은 집은 영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집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물구유에 물이 가득 채워져 갈증 날 때도 이 물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가뭄에도 절대 목마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나의 심령에 생수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의 영혼과 마음과 육신에는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럼 이렇게 내가 성령 충만하여 내 마음에 생수가 넘쳐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것을 비워야 합니다. 추악한 것을 비워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부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신방은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부터 내 욕심을 버리고 신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모든 생각도 신랑만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신랑과 신방에 들어왔는데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영적인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상의 신랑을 섬기지 않고 오직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신랑만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견고하게 지은 영원한 천국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세상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내 마음에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성령의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럼 비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짓된 우상을 쫒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신혼 방에서 매일 같이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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