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가서 강해설교말씀] 예루살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상반신을 찬양(아 7:3-5)

체데크 2022. 8. 3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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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상반신을 찬양(7:3-5)

 

명제: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신부의 상반신의 모습을 보면서 찬양하고 있다.

목적: 주님의 신부들도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아름답다고 칭찬을 들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신부의 하반신을 아름답다고 찬양하고 이제는 신부의 상반신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은 솔로몬이 술람미 신부를 사랑하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술람미 신부가 신랑을 만나지 못했다면 절대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찬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신부를 모욕하고 괴롭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내가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억누르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술람미 신부의 상반신을 보면서 칭찬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우리들도 이와 같이 주님의 신부로서 구속사 관점에서 어떻게 세상의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야 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7: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술람미 신부의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방이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아이에게 젖을 먹여 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신부가 생명을 잉태하여 낳았다면 이제는 젖을 통하여 양육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암사슴의(체비야 6646) 노루, 암사슴,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체비 6643) 영화, 영광,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두 유방이 암사슴의 쌍태 새끼와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부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신랑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부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에 근심이 생기게 됩니다. 신부의 두 유방이 암사슴과 같다는 것은 결국 신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마지막 날에 신랑으로부터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부는 반드시 자녀를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이런 신부에게는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많은 생명들을 낳아서 양육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신랑 되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를 하고 말씀으로 양육하여 마지막 날에 신부가 받을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새끼 같고(오페르 6082) 어린 사슴,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파르 6080) 먼지가 되다, 먼지를 날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유방이 암사슴의 쌍태 새끼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열심히 양육한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부의 역할을 했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자신의 영화를 위하여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기 때문에 신부는 열심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양육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세울 것도 없이 오직 신랑 되신 예수님만을 드러내고 나타내면 됩니다. 모든 공로를 예수님께 돌려드리고 신부는 조용히 하나의 티끌처럼 사라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했더라도 이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술람미 신부의 목은 상아로 만든 망대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과 같으며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와 같다고 예루살렘의 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상아(8127) 상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샤난 8150) 가르치다, 날카롭다, 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목이 상아로 만든 망대와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고대근동에서 망대의 역할은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높이 쳐놓은 성벽을 말합니다. 또한 포도밭을 지키기 위하여 망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둑들이 포도밭에 들어와 포도송이를 따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상아는 고대 근동에서는 아주 값비싼 물건 중에 하나입니다. 솔로몬도 상아로 왕좌를 만들었습니다.

 

목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머리와 몸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면 몸에서 수행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목입니다. 목이 부러지면 모두가 마비가 되는 것입니다. 목이 상아 망대와 같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장인들이 연장을 매일 같이 갈고 닦아서 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날마다 연구하여 날을 세워 어디에 있든지 복음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에 가장 귀한 상아로 만든 망대와 같이 사탄의 적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해야 할 자들이 바로 나라는 것을 이 시간 깨달아야 합니다.

 

연못 같고(베레카 1295) 연못, 저수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라크 1288) 무릎을 꿇다, 찬송하다, 송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눈을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헤스본은 요새와 현명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바드랍빔은 큰 무리 가운데 한 여인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술람미 신부는 많은 무리들 중에 한 여인으로 선택함을 받은 지혜롭고 현명한 신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이 연못과 같다는 것은 맑고 투명한 술람미 신부의 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들도 정직하고 투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신부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부의 눈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눈은 많은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눈이 주님을 사랑하는 눈이 된다면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인 내가 세상의 사람들을 경멸하는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고 신부를 모욕하면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나는 축복받은 자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 선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기 바랍니다.

 

다메섹을 향한(차파 6822 VQPAMS) 살피다, 감찰하다, 파수하다, 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신부의 코가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코는 숨을 쉴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가 막히면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없어 죽게 됩니다. 그럼 주님의 신부들은 항상 주님과 호흡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펴서 세상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과 항상 영적인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으로 세상에 파견된 자들이 바로 주님의 신부입니다. 그래서 레바논의 망대와 같이 세상에서 사탄의 무리들이 주님의 양들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망을 보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과 호흡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부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코로 호흡을 하는 주님의 신부들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전파하여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에서 영적으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신랑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레바논 망대 같구나(레바논 3844) 레바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라반 3835) 하얗게 되다, 정결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 속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신부들의 코는 레바논 망대와 같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과 호흡함으로 매일 같이 속죄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깨끗하게 속죄함을 받고 하얗게 된 것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 덕분이라는 것을 내가 숨을 쉬는 한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망대와 같이 높은 곳에서 죄인들을 정결케 하시는 분은 오직 신랑 되신 예수님밖에 없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신부의 말을 듣고 숨을 쉬게 될 것이며 영적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영적으로 숨을 쉬도록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신부들이 해야 될 사명입니다.

 

7:5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술람미 여인의 머리는 갈멜 산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며 솔로몬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멜 산 같고(카르멜 3760) 갈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케렘 3754) 포도원, 포도나무,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갈멜 산은 이스라엘 지역 중에서 제일 비옥한 지역입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지역이 갈멜 산입니다. 술람미 신부의 머리가 갈멜 산으로 비유된 것은 신부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넴 출신의 천박한 여인이 솔로몬 왕을 만나 귀한 귀족의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딸들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천박한 출신이었습니다. 죄악에 빠져 영원히 죽었던 인생입니다. 그런데 신랑 되신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신분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귀족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귀한 포도나무가 심어져있는 포도원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반겨주는 인생으로 바뀐 것입니다.

 

드리운 머리털은(달라 1803) 머리털, 비천한 자, 가장 가난한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달랄 1809) 천하다, 쇠약하다, 늘어뜨리다, 가련하게 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술람미 신부의 내려진 머리털은 가장 비천한 자와 가난한 자와 같이 쇠약하게 내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솔로몬 왕을 만나기 전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머리털에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윤기가 없게 됩니다. 머리털에 영양을 주지 않으면 머리털이 힘이 없어서 푸석푸석해지는 것입니다. 술람미 신부의 삶이 이런 머리털과 같은 인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왕을 만나면서 인생이 비천한 자가 아니라 귀한 자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은 가장 가난한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비천하고 쇠약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힘이 없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힘이 생겼습니다. 머리털에 힘이 생기고 윤기가 나게 된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장 비천한 자가 가장 귀한 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주 빛이 있으니(아르가만 713) 자주색으로 물들인 것, 자색 옷, 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자주색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또한 왕들이 입는 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막에서 휘장을 만들 때에 자색이 들어갔습니다.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가시관을 엮어서 씌웠습니다. 자색 옷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또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술람미 신부의 머리털이 자주 빛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님 때문에 비천한 자에서 귀족의 신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들은 머리털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윤기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전에는 윤기와 영양이 없어서 머리털이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었다면 이제는 다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나의 머리털에 임하여 윤기가 나고 영양이 가득한 주님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비천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는 가장 천한 자도 아니며 가장 가난한 자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고 가장 부자인 자가 된 것입니다. 신부의 머리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입니다.

 

향유옥합을 깨에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주었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마리아도 천한 인생이었지만 구원을 받고 난 후에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향유 옥합을 깨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였습니다. 귀한 귀족의 자녀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가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주신 일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어느 곳에 있든지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 머리카락에(라하트 7298) 머리털, 물통, 물받이,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신부의 머리카락에 매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신부의 머리털이 윤기가 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천한 신분이었던 여인이 가꾸고 꾸미니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신랑이 바뀐 신부를 보고 마음이 감동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영적의미가 있습니까? 주님의 신부들도 술람미 신부와 같이 천박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으니 신부의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보시고 감동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을 담아두는 물통과 물받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신부의 사상이 온전히 신랑 되신 예수님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의 복음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통은 물을 받아두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상을 완전하게 신랑 되신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세상 어디에 있든지 신랑만을 나타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신부의 삶이 있으면 절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습니다. 나의 행동과 모습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난다면 주님이 칭찬받고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술람미 신부의 몸의 상반신을 통하여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도 이와 같은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삶이 진정 신부의 삶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칭찬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신부의 잘못된 행동이 신랑의 얼굴을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실수가 세상에서 주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얼굴에 욕을 먹이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려면 오직 십자가 복음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같이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세상에서도 주님을 증거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직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가서 강해설교문] 예루살렘의 딸들이 술람미 여인의 모습에 감탄(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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