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 히브리어 마가복음 강해설교 중에서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광야에서 베풀어 주시고 배고픔에 있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만나를 하늘로부터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그 입에 말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모세와 같은 구원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후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벳새다 지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밤이 되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풍랑이 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여 놀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니 두려워말라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도 나 홀로 인생의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났습니까? 고민하면서 열심히 혼자 앞으로 나가려고 노를 젓고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처럼 나에게도 찾아오십니다. 그러면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두려워 떨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나에게 찾아오셔서 인생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인생의 풍랑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의지함으로 인생의 고된 풍랑을 이겨내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릴리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막 6:45-52)
막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본절부터 제52절까지는 예수께서 오병이어 이적의 현장을 급히 떠나셨다는 사실과 물 위를 걸으신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누가복음을 제외한 마태복음과(마 14 :22-33) 요한복음에도(요 6:14-21) 기록되어 있으며 마태복음에 가장 상세히 나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했다고 했는데 우츠 213 동사이다. 재촉하다, 서두르다, 좁다라는 뜻이다. 문법은 동사 히필(사역능동)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이다. 히필형을 쓴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서둘러서 배에 태워 반대편인 벳새다로 보내려고 하셨다는 의미다. 남성 3인칭 단수는 예수님을 말한다.
무리들이 흩어지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뒤따라가실 의도로 "제자들을 재촉하사……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었다". 사람들은 흩어지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돌려보내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수고를 허비해야 하였다. 그들은 지금 좋은 만찬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곁을 쉽게 떠나려고 하지를 않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어느 때까지라도 그리스도와의 교제만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잔치는 미래의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45, 46절에는 예수께서 서둘러 그리고 제자들을 강요하여 무리와 떨어지게 하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병행 구절인 마 1 4 : 22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예수 자신을 정치적 메시아로 보고 왕으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요 6: 13, 14),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간의 육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된 메시아관을 거부하시고 급히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셨다. 이러한 예수의 태도를 통해서 볼 때 예수를 실패한 정치 혁명가로 보는 일부 사람들의 견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를 알 수 있다.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본문에서 ‘무리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3 인칭 복수 여격 대명사인 ‘아우토이스’이므로 이것을 직역하면 ‘그들에게’가 된다. 이는 예수께서 작별하신 대상이 ‘무리’ 일 수도 있고 ‘제자들’ 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실 예수는 제자들과 무리들 이 두 대상과 모두 작별하셨다(45 절). 또한 ‘가시다’로 번역된 ‘아펠멘’ 은 분리 · 이탈의 전치사 ‘아포’와 ‘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르코마이’에서 유래한 합성 동사 ‘아페르코마이’의 부정 과거로서 ‘그가 가버렸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작별하신 후에’ 해당되는 분사 ‘아포탁사메노스’와 함께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 떠나가는 것을 인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예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홍분에 휩싸인 제자들이나 무리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영광에 도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도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로 떠나가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신 직후에 기도하러 혼자 산에 가신 것은 무리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시도로 인하여 일어날 수도 있는 시험의 마음을 다스리고 십자가 대속을 통한 전인류의 구원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신다고 했는데 히브리어 단어는 팔랄(동사) 6419는 기본 어근이며, '중재하다, 개입하다, 기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4회 나오며, 피엘형과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문법은 전치사 동사 히트파엘 부정사연계형이다. 히트파엘을 사용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기 위해서이다. 부정사연계형은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셨다는 의미다. 앞으로 어떻게 사역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기도할 때 히트파엘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하여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야 한다.
막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그리스도께서 혼자서 기도하러 가시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산만함이나 허실을 피하시기 위해 조용한 곳에 찾아가실 필요는 없으셨지만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기 위해 홀로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시었다. 그리고 골방이 필요하시어 산을 찾아가시었다. 선량한 사람은 하나님과 홀로 있을 때 말고는 혼자 있을 수 없게 된다.
본절 전체에서 헬라어 직설법 동사는 ‘엔’ 하나이다. 이 동사의 주어는 ‘배’ 즉 ‘토 플로이온’과 ‘예수’ 즉 ‘아우토스’ 둘이다. 그리고 ‘엔’은 미완료 과거 시제이므로 원어 성경의 의미대로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배는 계속적으로 있었고 예수는 홀로 계속적으로 계셨다’가 된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위에서 역풍을 맞아 힘들게 노를 저으면서 계속 그 바다 가운데 정체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산에서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고 계셨음을 본문은 하나의 직설법 동사만을 사용하여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히브리어로 예수님이 홀로 있었던 단어는 바드(명남)는 바다드(909: 분리하다, 고립되다)에서 유래했으며, '분리, 부분, 일부'를 의미하며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막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櫓)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였다. "바람이 거스리므로"(48절).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어 보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이후에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방으로 파송될 때에 예상할 수 있는 고난에 대한 예표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이때에 그들을 거스르는 바람을 향하여 보내는 것 같을 것이다. 그들은 이 역풍을 향하여 노 젓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찬 물결과 싸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원수들에 의하여 핍박을 당하는 파도에 부딪침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을 그렇게 역풍의 고난 가운데 보냄으로써 예수께서는 그러한 고난에 대해서 그들을 훈련시키어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시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교회는 자주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위로를 받을 수 없는'바다에 떠가는 한 척의 배와 같을 때가 많은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데도 바람과 물결이 우리에게 거슬러 올 수 있다. 그러나 주께서 성산에서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힘겹게’로 번역된 헬라어 ‘바사니 조 메누스’의 기본형 ‘바사니조’는 ‘시험하다’, ‘가혹한 고문으로 괴롭히다’ (마 8:29) 는 의미를 지닌다. 본문에서는 현재 분사 수동태로 사용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란 의미이다. 특히 현재 분사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고 계신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은 역풍으로 인하여 노를 젓는 일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한편 ‘노 젓는 것을’에 해당되는 ‘엘라우네인’의 기본형 ‘엘 라우노’는 기본적으로 ‘몰다’ (눅 8:29)는 뜻으로 가축이나 마차나 배를 앞으로 몰고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거슬리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매우 힘든 장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아말(동사) 5998은 기본 어근이며, '일하다, 노동하다, 힘써 일하다, 수고하다, 고생하다'를 의미한다. 문법은 동사 히트파엘 분사능동 남성 복수이다. 히트파엘형을 사용한 것은 제자들이 풍랑과 힘겹게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빨리 바다를 지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분사능동은 제자들이 각각 힘겹게 노를 저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남성 복수는 제자들을 말한다. 예수님이 걸어오셨는데 할라크 1980 동사이다. 문법은 히트파엘형을 사용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의 고난을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온 것을 말한다. 주님은 내가 인생에서 풍랑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구원하려고 나를 찾아오신다.
막 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셔서 그들을 방문하시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계시는 그 곳에서 바람의 강세를 측정하시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능한 한 사랑의 정을 나타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하시어 그들을 보살피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이 직접 그들에게 걸어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밤 사경 쯔음"까지 즉, 새벽 세 시 될 때까지는 그들에게 오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시간에야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자기 백성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방문이 오래 지체되더라도 마침내 그분은 오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절정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방문하실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비록 구원이 더딜지라도 우리는 이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밤 사경이" 즉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 하라리.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정녕 응하리라"(합 2:3).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를 질렀다. 차아크(동사) 6817은 기본 어근이며, '소리치다, 부르짖다, 부르다', 니팔형에서 '부름 받다, 소집되다', 피엘형에서 '큰 소리로 외치다', 히필형에서 '함께 모이게 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형이 사용되었다. 문법은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이다. 와우접속사는 시제를 바꾸어서 해석하는 문법이다. 미완료 시제이니 완료로 해석하면 제자들이 즉시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는 말이다. 남성 3인칭 복수는 제자들을 말한다.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그들에게 알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요기를 북돋아 주시고 그들의 무서움을 진정시켰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주 다정하게 그들을 향하여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하시었다.
(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모르게 된다.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즉 "내니라. 나는 너희의 주니라. 나는 너희 친구니라. 나는 너희의 구속주이며 구주니라. 그리고 괴로움이 많은 이 지상에 왔고 지금 너희를 돌보기 위해 성난 바다에 찾아온 바로 나니라."
(2)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의 가까이 계신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 지식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하여금 폭풍 가운데서도 넉넉히 안심케 할 수 있고, 더 이상 두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왜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여야 하겠는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다면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만일에 우리의 잘못을 특별히 그리스도에 관한 우리의 허물을 돌이키게 된다면 우리의 두려움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창세기 21장 19절 과 열왕기 하 6장 15절 이하를 참고하라.
(3) 폭풍우가 이는 무서운 날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비록 먹구름과 어두움이 우리를 엄습할지라도 우리는 능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니"라 말씀하시었다. 그는 당신이 누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들은 양이 그들의 목자의 음성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주의 음성을 알아낼 수 있었다(요 10:4). 아가서에서 그 신부는 거듭해서 서슴지 않고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라고 말하였던 것이다(아 2:8; 5:2).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원어에 "에고 에이미"로 나와 있는데 그대로 번역한다면 "내가 그니라, 또는 나니라"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려고 하실 때에 당신의 이름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셨던 것이다(출 3:14). 그리고 이 말씀은 지금 자기의 제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무력으로 당신을 잡으려고 나온 자들에게 "내로다"하실 때에 그들은 물러가 땅에 엎드리게 되었던 것이다(요 16:6). 예수께서 믿음으로 인해 자기를 붙들러 나온 자들에게 "내가 그인 줄을" 알라고 하셨으며 그들은 이 말씀대로 그를 믿게 되었고 위로를 받게 되었다(요 8:28-30).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두려워하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야레(동사) 3372는 기본 어근이며,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3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문법은 동사 칼 미완료 남성 2인칭 복수이다. 칼형을 쓴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미완료 시제는 예수님이 왔으니 지금부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예수님이 나와 함께 있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막 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그리스도께서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그 배에 오르시어 그들을 편안하게 하시었다. 그들이 주를 모시게 되자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예수께서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자마자" "바람이 그치었다". 이 앞에서 그들이 조난을 당하였던 폭풍에서는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던"것이다(막 4:39).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런 의례적인 명령은 하시지 않았으나 바람이 갑자기 그치게 된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을 비록 언제나 동일한 격식과 관찰에 의해서 하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수행하실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령하심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람은 그와 같이 그치게 된 것이며 우리는 그와 같은 고요함에 대해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배 안에 계시기 때문이며 "부지중에" 그리스도의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아 6:12).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천국에 이르게 될 때에 바람은 곧 그치는 것이다. 저 높은 곳에는 바람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배에 올라오셨을 때 풍랑이 그쳤다. 샤카크(동사) 7918은 기본 어근이며, '가라앉다, 감소하다, 줄다, 중지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온다. 이 동사는 얼마 나오지 않는 동사이다. 문법은 동사 칼 완료 여성 3인칭 단수이다. 칼형을 쓴 것은 풍랑을 말한다. 완료 시제는 예수님이 오시자 풍랑이 완전히 멈추었다는 것을 말한다. 여성 3인칭 단수는 바람을 말한다.
막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했다. 헬라어로는 ‘페포로메네’의 기본형 ‘포로오’는 ‘돌(stone)’을 뜻하는 ‘포로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되는 동사로서 성경에서는 ‘완고하다’(고후 3: 14) 또는 ‘완악하다’(롬 11 :7)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강퍅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로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분사 완료 수동태로 사용되어 ‘이미 그 마음이 완고해져 있는’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완료 분사와 의미상 연결되어 있는 직설법 동사 ‘엔’ 은 ‘에이미’의 미완료 과거로서 이미 완고해진 그 마음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벳새다 들녘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참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 깨달았더라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기적을 이미 체험했으면서도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행하시는 주님의 실체를 바로 깨닫지 못함으로 마음이 완악해져 있는 자들은 그 후에 벌어지는 주님의 어떤 신기한 행동들을 통해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히브리어 사칼(동사) 7919는 기본 어근이며, (a) '지혜롭다, 총명하다, 이해하다', 지혜롭게(통찰력 있게, 신중히) 행하다, (b) '교차하여 (십자로) 두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회 나오며, 칼, 히필,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문법은 동사 히필 완료 공성 3인칭 복수이다. 히필형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둔감하여 지혜롭지 못함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알지 못했다. 오병이어 기적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이것을 깨달았다면 물 위를 걸어오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믿어야 한다.
[시편 34편 설교말씀] “주님의 이름을 높이라”(시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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