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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식 대표기도문] 주일예배 세례식 설교(고전 15:31; 사 53:4-6; 롬 6:3-7)

체데크 2023. 4. 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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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에는 세례식을 거행하게 된다. 우리가 세례식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받은 자가 표면적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예식이다. 성도가 구원받고 나면 세례를 받게 되는데 물세례를 통해서 구원을 확증하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구원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우편에 있었던 강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낙원에 임하는 구원을 받았다. 이 강도는 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 물세례를 받을 시간도 없었다.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물세례를 받음으로 구원받은 표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일예배 세례식 설교문(고전 15:31; 사 53:4-6; 롬 6:3-7)

 

나를 철저히 죽이자(고전 15:31)

세례식은 나를 철저히 죽이는 예식이다. 내가 죽을 때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난다. 우리 기독교는 죽고 사는 종교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기 위해서는 나의 죄를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 죄가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은 내 안에 예수님이 살 수 없다. 그럼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하는가?

※ 말씀으로 나를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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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이 나의 죄악을 죽일 수 있다. 말씀으로 들을 때 나의 죄를 회개하게 된다. 내 죄악의 자아를 죽이는 무기는 오직 성령의 검인 말씀이다. 세례를 받은 성도는 내 안에 있는 죄악의 자아를 복음 말씀으로 죽여야 한다.

2.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 의사가 칼을 가지고 있으면 암을 도려내어 수술함으로 병자를 살리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원죄의 죄인의 병을 고쳐서 살리게 된다.(히 4:12) 성도는 세례를 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듣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을 말씀으로 이겼다. 우리 마음에 있는 죄악의 세력들을 복음 말씀으로 이겨내야 한다. 마귀 사탄은 지금도 세례 받는 성도의 마음에 침투하여 미혹하려고 한다. 사탄은 예수님도 미혹하려고 했다. 성도는 항상 복음을 듣고 교회 안에서 항상 에수님만을 섬겨야 한다.

※ 기도로 나를 죽여야 한다.

1. 얍복강의 야곱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창 32:22-29) 야곱은 자기의 처자식을 모두 보낸 후에 홀로 얍복강에 앉아서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야곱과 씨름하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성도도 기도로 승리해야 한다. 기도할 때 나의 죄악들을 죽일 수 있다. 하나님과 항상 교통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다윗의 회개 기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시 51:1-17)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나서 하나님께 회개했다. 세례받는 성도는 옛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세례 받은 이후의 삶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기도는 옛 사람인 자아를 죽이고 새 사람인 예수님의 사람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나는 것이다. 오늘 세례를 받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를 죽여야 한다.

1. 십자가의 형틀은 사람을 죽이는 사형 도구였다. 예수님은 나의 무서운 원죄와 자범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다. 이런 분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여 죽은 것은 오늘 세례 받은 여러분과 성도들을 위해서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2. 주님의 십자가는 부활을 바라본 죽음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났다면 성도에게는 소망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성도에게도 소망이 있다. 세례받은 성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날에 나도 부활할 것을 소망해야 한다.

3.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이요,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인 것ㅇ르 믿어야 한다.(롬 6:3-6) 예수님의 죽음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나의 죄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나도 구원받고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살아날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죽여야 한다.

그의 죽으심과 평안(사 53:4-6)

이사야 53장은 고난의 메시아를 말씀한 장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00년 경에 고난 받을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했다. 예수님이 엄청난 고난을 받을 것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 우리는 고난 받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죽음이다.

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죽음이 인류에게 왔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끊어졌고 결국 육체가 930세를 살고 최초로 죽음을 맞이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 침투하여 여자를 꼬드겨 선악과를 먹게 했다. 여자는 그것을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아담이 먹으므로 죽었다.

2. 인간에게 찾아온 전쟁과 가난과 싸움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탄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문제가 생겼다. 아담의 첫 아들인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살인죄를 저질렀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3. 이런 죄악의 짐과 불행을 끊으려고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질고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못 박혀 죽었다. 이것을 믿는 자는 구원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이 있다. 성도는 나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에서 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찔림과 상함은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1. 십자가의 고통은 인류 최대의 고통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선포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버렸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버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 그의 찔림은 나의 허물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허물은 죄로 뭉쳐진 죄악의 덩어리다. 죄는 인간이 범했으나 그 처분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했다. 이 원죄와 자범죄를 담당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다. 나의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에 찔렸다는 것을 기억하자.

3. 그의 상함은 나의 죄악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양손과 양발에 대 못이 찔렸다.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이 꽂혀 모든 물과 피를 쏟아 주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나의 죄악 때문이다. 나의  원죄와 자범죄가 너무나 악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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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징계와 채찍 때문에 나에게 평안과 고침의 복이 왔다.

1.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죽었기 때문에 나와 하나님과의 단절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나를 화목하게 만들어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2.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니 사탄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사탄은 나를 옭아매어 원죄가운데 살게 했다.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끊어주셨다. 원죄의 죄악의 고리를 십자가에서 끊어주셔서 이제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3. 십자가의 희생은 나의 모든 불행을 제거하고 평안과 치유의 복을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다.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이 찾아왔다. 아직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에게 행복의 축복을 선물로 주셨다.

세례의 의미(롬 6:3-7)

세례는 헬라어로 밥티조라는 단어다. 담근다, 물에 빠뜨리다, 목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단강에서 맨 처음 세례를 주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이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처음에는 침례로 사람을 요단강에 담갔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오면서 물로 뿌려서 세례를 주는 세례예식으로 바뀌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침례나 세례는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침례는 진짜이고 세례를 가짜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침례나 세례는 같은 개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세례의 어원적 의미

헬라어 밥티조에서 유래한 동사적 명사들은 밥티스마, 밥티스모스가 있다. 밥티스마는 세례를 뜻한다. 이것은 외부적 행위뿐만 아니라 내적 의미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물 세례는 물론 성령 세례와 십자가의 세례를 가리킨다. 밥티스모스의 단어는 다만 씻는 행위만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례 예식이란 죄악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는다는 예표로 활용되었다.

※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의미가 있다.

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나는 개념이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과거의 죄악된 것은 버리고 새 생명을 얻었으니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과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도 있다. 성도는 마지막 날에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살게 된다.

※ 세례는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세례는 죄악된 삶을 깨끗하게 보혈로 씻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원죄가 있다면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죄악의 자리에 가면 안 된다. 복음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복음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자가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다. 성도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후회하게 된다. 세례 받은 자는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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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자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례받은 자는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화구원이다. 영혼구원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구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항상 예수님과 연합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세례 받은 성도는 항상 교회생활을 하면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천국에 소망을 품은 자가 되어야 한다.

[주일 예배 세례식 대표기도문] 세례예식 순서지와 세례식 대표기도문

 

[주일 예배 세례식 대표기도문] 세례예식 순서지와 세례식 대표기도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성도가 세례를 받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구원받는 표로 세례를 주게 된다. 세례는 물세례가 있고 성령 세례가 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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