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부활 주일 설교문]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제단”(출20:22-26)

체데크 2020. 7. 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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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에 활용할 수 있는 설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제단”(출20:22-26)

 

명제 : 토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몸을 상징하고 돌 제단은 신령한 몸을 상징한다.

목적 : 돌을 다듬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고통을 주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가 교회력으로 종려 주일을 지키고 고난주간이 끝나고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고 고통당하셔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받으셨던 고난의 깊이를 절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안다고 해도 빙산의 일각 정도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났다면 나에게 소망이 없겠지만 부활하셨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나도 주님처럼 부활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제단을 쌓아야 할 것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0: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다른 우상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앞날에 대한 걱정과 근심과 불안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상의 신랑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랑과 항상 살아야 합니다.

출20: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비겨서 은이나 금으로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싫어합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신상을 만들게 됩니다. 바벨탑을 쌓은 것도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쌓았습니다. 느부갓네살도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를 비겨서’ (את에트 854) ~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금이나 은 신상을 만들어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의미부여를 잘합니다. 신상이 하나님의 신령한 기운이 함께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신상을 절대 만들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상을’ (אלהים엘로힘 430) 하나님, 신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신상을 만들어 놓고 의미를 부여하면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אלהים엘로힘)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눈이 열려있지 않으면 우상의 신들과 하나님의 신을 혼동하여 분별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에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고 있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버립니다. 현재 이단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이와 같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하니 복음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그 말을 믿고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야차르의 신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의 신령한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אלהים엘로힘)을 정확하게 분별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간의 (אלהים엘로힘)과 진정한 하나님의 (אלהים엘로힘)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출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자신에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토단을 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흙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단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만든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야차르의 제단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드려지는 제단을 상징합니다.

 

‘토 단’ (אדמה아다마 127) 땅, 육지, 흙이라는 뜻입니다. 토 단은 흙으로 만들어진 제단을 말합니다. 흙은 땅에서 채취하여 제단을 만들게 됩니다. 인간도 흙에서 채취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땅의’라는 단어가 (אדמה아다마)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셔서 흙으로 빚어진 몸을 가지고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토 단을 쌓은 곳이 어디입니까? 골고다입니다.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야차르의 육체의 몸이 달리시고 그곳에서 화목제와 번제를 직접 드리게 되었습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골고다 언덕에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야차르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난을 지게 하신 것은 나의 원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전에 하나님 앞에서 지었던 죄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 않고 지나쳐서 간과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토 단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몸에 반드시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허물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요2: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예수님이 헤롯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 바꾸는 사람들을 보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을 헐면 주님이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 지었는데 네가 어떻게 삼일 동안에 일으킬 수 있냐고 말합니다.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런데 주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토 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 제단입니다. 이 제단을 쌓는 곳마다 번제와 화목 제물이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화목 제물이 되어주신 것을 항상 생각하고 기념하여 드려야 합니다. 교회가 토 단을 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너에게 임하여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념하게’ (זכר자카르 2142 동사, 히필,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기억하다, 상기하다, 기념하다, 자랑하다, 생각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토 단을 쌓고 그 위에 양과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곳에 함께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토 단을 쌓는 곳은 주님을 자랑하게 되고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몸에 십자가 대 못에 박힌 주님을 상기하게 됩니다. 히필형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랑하고 기념하는 예배에 함께하셔서 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미완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예배를 드리는 곳에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토 단을 쌓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자기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서 자신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는 교회에 나타나 복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제단을 쌓고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만나주십니다.

 

눅22: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야차르의 몸이니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를 기념하라’는 단어가 (זכר자카르)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하는 이유는 주님의 몸을 기념하여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몸을 상기하고 자랑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임하셔서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토 단의 제단을 교회에서 쌓아야 합니다.

 

출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께 돌로 제단을 쌓을 때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고 말합니다.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돌 제단을 쌓을 때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토 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야차르의 육체의 몸을 상징하는 제단이라면 돌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신령한 몸을 상징하는 제단입니다. 토 단은 부서지고 무너져야 하지만 돌 제단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듬은 돌로’ (גזית가지트 1496) 잘라냄, 절단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גזה가자 1491) 자르다, 베어내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몸이 십자가에서 잘라지거나 살이 베어냄과 같은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신령한 몸은 육체의 몸과는 달리 영광을 받으실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 제단을 쌓는데 다듬은 돌로 쌓게 되면 영광의 주를 다시 십자가에 다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영광의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신앙을 하는 자들입니다.

 

‘부정하게 함이니라’ (חלל할랄 2490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여성, 3인칭, 단수) 꿰뚫다, 꿰찌르다, 더럽히다라는 뜻입니다. 돌 제단을 쌓는데 정으로 돌을 쪼게 되면 그 제단은 부정하게 되어 더럽혀지게 됩니다. 어떠한 제물을 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돌 제단은 있는 그대로 드려야 합니다. 인간의 의를 집어넣어서는 안 됩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영광을 받으실 분이지 다시 십자가에서 꿰뚫려 고통과 고난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더럽히는 자입니다. 피엘형은 돌 제단을 완전히 인간의 의로 만들어 부정하게 해 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돌 제단에 인간의 의인 정을 들어서 쪼아버렸기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도 정을 가지고 돌을 쪼개어 제단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령한 몸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의로 생각하여 주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신화라고 생각해도 안 됩니다. 주님은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신령한 몸을 부정하면 주님의 몸을 모욕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출20: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토단이나 돌 제단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할 때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를 덮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옷을 입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체를 드러내면 죽습니다.

 

‘네 하체가’ (ערוה에르바 6172) 벌거벗음, 수치라는 뜻이며 (ערה아라 6168) 벌거벗다, 알몸을 드러내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단에서 제물을 바치거나 제사를 드릴 때 층계로 오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층계로 오르다가 벌거벗은 몸이 하나님께 노출되면 죄악의 수치가 드러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층계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완전한 죄가 사라지기 전에는 이 땅에서는 죄인입니다. 노아는 술에 취해 아무런 옷도 입지 않고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장막에서 잠을 잤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모든 죄가 사라진 의인이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토 단의 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몸을 통해서 자 범죄와 원죄가 사라지고 나면 돌 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신령한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되면 더 이상 벌거벗음의 수치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한 구원을 얻었고 부활의 신령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몸이 되기 전까지는 하체를 드러내는 수치를 하나님 앞에서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원죄가 사라진 죄인입니다. 자 범죄가 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나올 때 교만하게 층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을 입고 하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율법의 옷을 입고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고 나오는 사람은 층계로 올라오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하체가 보여 수치가 드러남으로 결국 진노를 받아 영원히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옷을 입고 토 단의 제단과 다듬지 않은 돌 제단을 쌓아 만찬을 통해서 주님의 몸을 기억하고 돌 제단을 통해서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부활의 소망을 갖는 신앙을 저와 여러분들이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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