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자료

[바울서신 성경공부자료] 데살로니가후서 기록 목적과 신학적 가치

체데크 2021. 8. 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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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바울서신 성경공부자료 중에서 데살로니가후서 기록 목적과 신학적 가치라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격려하기 위해서 바울이 편지를 썼습니다. 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을 오해하여 생업을 포기하고 잘못된 종말관에 빠져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시한부 종말론자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오해하여 생업을 포기하고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기록 목적과 신학적 가치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데살로니가 후서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전적으로나, 혹은 부분적으로 데살로니가 후서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은 개인의 주장에 따라 상이하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살후2:1-12은 말세론적 구절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받게 될 장래의 영광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도처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있어서의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둘째로 만약에 바울이 살전 4:13-18; 5:1-11을 기록했다면, 살후 2:1-12이 또한 그의 기록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한 사실로 보고 있음에 반하여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살후 2:1-12은 다음 경우들을 가리키는 구절이다. 네로-불법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당시 이미 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실제로 숨어 있는데 곧 되돌아올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베스파시안 황제를 가리키거나 혹은 트라얀의 시대나 확대해 가는 영지주의의 대세를 가리킨다. 이는 바울이 본 서신의 저자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넷째로 2:11-13에 나타난 전적 예정설은 비 바울적 구절이다. 다섯째로 데살로니가 후서는 아주 상당한 부분이 데살로니가전서의 반복이다. 이는 분명히 위조자의 짓이다. 여섯째로 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의 붓의 산물로 간주되는 참된 바울의 서신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 많은 점에서 상이하다. 특히 본 서신은 데살로니가 전서보다 훨씬 더 냉담하고 또한 훨씬 더 유대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일곱 번째로 문안(3:17)의 말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이는 분명히 위조자가 본 서신을 진짜 바울의 것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 시도이다. 그리고 또 지적한다면, 데살로니가 후서의 종말론이 A.D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생겨난 하나의 기독교적인 전망을 대표하는 이론으로서 살전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을 받고 있으며, 바울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적인 속성과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서신은 데살로니가 전서보다 구약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방인들 보다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본 서신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서신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증거를 말할 수 있다. 먼저 내적 증거로서는 1:1절과 3:17절에서 밝히고 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한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관심과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증가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감사(1:3,11,12; 2:13; 3:3-5)는 이미 그가 기록했던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자세와 동일하다(살전 2:11,12,17; 3:10)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주장(1:1)과 이전 교훈들에 대한 그의 언급(2:5,15; 3:6),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한 명령(3:1)등은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타난 그의 어투의 특성과 다를 바 없다(살전 1:1; 5:25)

그리고 외적 증거로는 순교자 저스틴이나 폴리갑,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감독, 교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본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최초로 신약성경의 정경 문제를 논한 마르시온 경이나 무라토리단편 그리고 고대 수리아 사본과 라틴사본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2) 연대

 

만약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정확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러 있을 때 써졌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그 이후에 다시 만났는지의 여부가 알려져 있기 않기 때문이다. 바울의 상황은 대체적으로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 때의 상황과 동일하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후서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써졌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전서 속의 자서전적 부분을 볼 때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는 것과 그 편지 자체가 일치한다는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로 본 서신은 환란이 극도에 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나 전서는 그 환란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본 서신에는 내부적인 어려움이 새로운 사실로 등장했으나, 데살로니가 전서에는 그것들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 그 반론들을 무시할 수 있다.

첫째로 본 서신에는 앞서 써 보낸 편지를 확실히 지적하는 구절이 있다(2:15)

둘째로 살전 4:1-12 ; 5:12-28에는 몇 개의 명령이 있는데 본 서신에서는 그 명령들 중 일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불순종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명백한 지시가 있다.

셋째는 살전 1:6 ; 2:13절에서는 데살로니가 인들이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본 서신 1:3절에서는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바울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거짓 서신에 대해 경계하면서 이는 본 서신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서신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3) 저작 장소와 수신인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 두 번째 서신 역시 고린도에서 썼다. 우리가 아는 한 그 후에는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있지 않았다. 베뢰아와 빌립보 교회가 이 서신의 수신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 동역자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에 구약의 인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베뢰아가 수신처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타당성 있는 주장으로 생각된다. 빌립보가 수신처라는 이론은 폴리갑의 인용문에 의해 뒷받침을 받는데 이는 폴리갑이 빌립보를 데살로니가후서의 여러 구절들의 수신처로 지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4) 신학적 가치

 

이 부분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신학적 가치와 동일하다.

 

2. 배경

 

데살로니가의 회심자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첫 번째 서신을 보냄으로써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그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자들을 계속적으로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이 두 번째 서신은 단지 데살로니가전서 보다 약간 뒤늦게 쓰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의 배경은 단지 가벼운 사건이 몇 가지 더 첨가되었을 뿐 데살로니가 전서의 배경과 동일하다(역사적 배경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참고하라) 바울이 아직 고린도에 있을 때 그는 이 교회의 형편에 대한 소식을 좀 더 듣게 되었다. 어떤 경로로 그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소식의 내용은 바울의 마음을 움직여 데살로니가후서를 쓰게 할 만큼 중요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저술 목적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온 순서가 정확하다고 가정한다면 데살로니가 전서는 게으름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바울이 기대한 만큼 효과적이지 않았으며, 재림에 대한 새로운 오해들이 발생하였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들은 주의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가짜 바울 서신을 받았으며, 그러한 인상을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잘못된 가르침이 바울의 이름과 연관되었고 바울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후서를 썼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이야기한다면, 바울은 첫 번째 서신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보내긴 했지만 그에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전보다 심한 핍박을 당하고 있었고 교회 내부의 신앙 문제는 더욱 악화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상황은 그리스도인에게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감에 따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실망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위조 편지와 거짓된 가르침들은 점점 심해지는 박해 상황을 볼 때 이미 종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핑계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지 않는 자들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쓸 때보다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본 서신을 써 보냈다.

첫째로 바울은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 때 주어질 상급과 형벌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고난의 상황에서 더욱 인내할 것을 권면하였다. 둘째로 바울은 종말이 이미 임했다는 그릇된 종말관을 반박하기 위해 주의 재림 시 있을 중요한 사건들을 명백히 밝혔다. 셋째로 바울은 종말을 핑계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 교회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상세한 교훈을 주었다. 넷째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두로나 혹은 서신으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들을 계속 고수해 나가도록 권고하고 잘못된 재림에 속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목적과 함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을 기도할 때에 기억해 주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에 맡기고 마음을 굳게 하여 언제 어떠한 처지에서나 은혜와 평강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좋은 소망을 품으라고 하는 구절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이와 같은 간단한 목적 개요로 비추어 볼 때 본 서신은 분명히 재림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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