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로마서 5장 강해 설교말씀] 칭의(稱義)의 결과(롬 5:1-21)

체데크 2022. 1. 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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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에서는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죄에 있을 때에는 전혀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아난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양자의 영을 받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칭의(稱義)의 결과(롬 5:1-2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디카이오덴테스 과거분사)이라는 원어는 칭의(稱義)가 점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고 단회적임을 보인다. ‘누리자라는 말(에코멘)은 어떤 사본들과 역본들에 누리느니라’(에코멘)고 되어 있다. 칭의의 결과 중 하나는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사람들은 죄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과 불화(不和)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해 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큰 특권이며 복이다. 그것은 에녹과 노아와 욥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이다(5:21-24; 6:9; 29:4).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는 칭의(稱義)의 은혜를 가리킬 것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이제 칭의의 은혜 안에 서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은혜 안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어야 하며, 결코 이 은혜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 칭의의 은혜가 곧 구원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믿고 구원얻는 것은 그를 통하여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칭의의 결과 중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장차 올 영광스런 천국,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신과 견고한 소망에서 나온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지만(3:23),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얻은 성도는 이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천국의 영광은 성도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인 것이다.

[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鍊鍛),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평안할 때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연단이라는 원어(도키메)연단의 경험’ ‘연단된 인격이라는 뜻이다. 환난이 성도의 신앙 인격을 단련하여 그의 소망을 확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성도는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 환난은 온전한 인격을 위해 유익하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성도의 소망은 헛되지 않다. 그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헛된 꿈이나 망상이 아니다. 성도의 소망이 확실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과 같다.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확증이시다.

[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善人)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확증하셨음이니라].

우리가 불경건과 죄 가운데서 연약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이며 그 사랑을 체험한 것이다. 우리가 연약하고 경건치 않았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사랑인가! ‘그 선인(善人)’(투 아가두)은 앞에 말한 의인을 가리킨다고 본다. 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확증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9-11]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장차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확실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구원의 확신은 성도의 기쁨의 근거가 된다. 성도가 장래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을 것이며 고난 중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성도는 미래의 구원을 확신하므로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근거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오고 그의 마지막 진노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다. 바울은 또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다. 칭의의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릴 뿐 아니라, 또한 미래의 구원의 확실한 보증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요 천국을 소망하며 항상 기뻐하는 삶인 것이다. 본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에 대해 증거한다. 첫째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린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둘째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우리가 천국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은혜 때문이며 환난 중에도 낙심치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달려 죽으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한다. 넷째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장차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것도 확신한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현재 하나님과 담대히 교제하게 할 뿐 아니라, 마지막 심판대에서의 구원도 확신케 한다.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그 안에서 혹은 그것에 근거하여](에프 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러므로라는 말은 21절 전체에 연결되어서 이러므로 한 사람 아담으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의와 영생이 왔다는 뜻이라고 본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그 한 사람이 아담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간의 타락의 사건을 가리킨다. 인류의 죄와 사망은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담의 첫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이었다. ‘그 안에서라는 말은 한 사람 아담 안에서 혹은 그의 범죄에 근거해서라는 뜻 같다. 인류의 대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의 결과로 죽게 되었다.

[13-14]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본문은 문맥상 삽입적 성격을 가진다. 인간의 사망의 원인은 죄이다. 율법이 없었던 모세 이전에도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다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죄인은 누구나 다 죽는다.

[15-16]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왜냐하면]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죽었으나]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넘쳤음이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定罪)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살았고, 또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죄와 정죄(定罪) 아래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의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하였다.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인류를 지배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로 말미암아 생명이 많은 사람을 지배할 것이다. 이것이 칭의의 결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의 선물을 풍성히 받아 영생을 얻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6)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그런즉이라는 말은 본절이 이 단락의 요점임을 보인다. ‘한 범죄한 사람의 범죄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고 의의 한 행동한 사람의 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라는 말은 직역하면 생명의 의롭다 하심에인데, 그것은 의롭다 하심의 결과가 생명임을 보인다. 의와 생명은 함께 간다. 죄는 사망이요 의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생명의 칭의이다. 즉 칭의의 결과는 영생, 다시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15절부터 18절까지 반복되는 말씀은 한 사람 아담의 죄가 어떻게 온 인류에게 전가(轉嫁)되었는지를 증거한다. 아담의 죄는 온 인류의 죄이었다. 이것이 원죄(原罪)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 이 원죄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 또 모든 사람이 정죄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증된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그러나 정반대의 내용으로, 이 본문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어떻게 믿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은혜로 풍성히 넘치도록 전가(轉嫁)되었는지를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많은 사람을 대신한 속죄이었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자기 목숨을 주셨고(20:28), 그의 피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신피이었다(26: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된 것이다.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죄는 불순종이다. 죄악된 세계의 특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이다. 순종은 의요 불순종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과 의를 요구하신다. 노아는 순종하는 의인이며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갈렙도 그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최고의 모범이시다. 그는 창조주로서 피조물인 인간 부모에게 순종하셨고 율법을 주신 자로서 친히 율법을 준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그의 순종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의가 되셨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이 의 안에 거해야 하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며 거역하는 자가 되지 말고 잠잠히 믿고 순종하되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가진 진리가 진리일진대, 우리는 하나님과 성경 교훈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20-2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을 몰랐을 때는 죄가 적었으나 율법을 알게 되므로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들과 우리 본성의 전적 부패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고 넘쳤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의 크심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의 정도에 비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죄사함을 많이 받은 자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7:47). 이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많은 죄의 사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얻었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죄들은 크고 심각하였으나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는 크고 놀라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첫 사람 아담의 죄의 전가(轉嫁)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대해 증거하며, 또 우리가 받은 의롭다 하심의 결과로서 영원한 생명을 증거한다. 첫째로, 온 인류의 대표자이며 시조(始祖)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다 죄인이 되었고 죽게 되었고 정죄함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언약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원죄(原罪)이다. 둘째로, 우리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였다. 셋째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 영생이다. 죄는 죽음이요 의는 생명이다.

[사무엘상 3장 주석 강해설교] 사무엘을 부르심(삼상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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