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누가복음 22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이 잡히심(눅 22:1-71)

체데크 2022. 5.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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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에서는 가룟 유다의 배반이 나오면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에서 새 언약의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심(눅 22:1-71)

 

1-23, 마지막 유월절 식사

[1-2]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오기 전날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장자 재앙을 내리신 날을 기념한 절기이다. 그 날 애굽 사람들의 장자들은 다 죽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집문의 상하와 좌우 기둥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라졌고 심판의 천사들이 건너갔기 때문에 유월절이라고 부른 것이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예수님의 공적 전도사역 기간 동안 네 번째의 유월절이 가까웠다(2:13; 5:1; 6:4; 11:5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무슨 방책으로 죽일까 연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은 제사장들 중에서 선택된 지도적인 인물들로서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과 회원들이었고,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 사본을 만드는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롭게 행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연구하고 있었다. 의롭고 선한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은 악한 일이었다. 또한 백성의 여론을 의식해서 그럴듯한 명분을 찾아서 그를 죽이려 한 것은 더욱 악한 일이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를 죽이려 한 것은 가장 큰 악이었다.

신약성경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까닭을 증거한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12:14; 5:16 전통본문). 둘째로,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5:18; 26:65-66). 셋째로,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악하다고 하시므로 그를 미워하였다(7:7). 넷째로,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27:18; 15:10).

[3-6]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동의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최측근의 제자들인 열 둘 중의 한 사람의 배신이었다. 그는 일반 사람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들었을 것이고 그의 기적들을 다 보았을 것이고 인격적 감화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을 때에 그는 상식과 양심을 벗어난, 배신이라는 악한 행동을 하였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였다. 마태복음 26:15에 보면, 유다가 먼저 그들에게 돈을 요구했고 그들은 은 30을 주었던 것 같다(NASB, NIV). ‘30’은 은 30스타테르(120데나리온)이든지 아니면 은 30세겔(60데나리온)을 가리키는 것 같다. 유다는 유대 지도자들과 약속하고 무리가 없을 때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 그들은 백성의 반대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예수를 민첩하게 처치할 시간을 찾고 있었다. 유다는 확실히 돈을 사랑하였고 3년간 따라다녔던 주님과 선생님을 배신했다. 하나님 없는 자들, 경건을 저버린 자들의 특징은 돈과 육신의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가룟 유다의 배신의 이유를 몇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그의 불신앙이다(6:64). 그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었다. 둘째는 그의 돈 욕심이다(26:15; 12:6). 그의 돈 욕심이 결국 그를 배신자가 되게 하였다. 셋째는 사탄의 활동이다(눅 22:3; 13:27). 악한 일 배후에는 언제나 사탄의 활동이 있다. 넷째는 하나님의 작정이다(눅 22:22).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있다.

[7-13]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유월절과 무교절은 엄격히 말하면 시간적 차이가 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114일 저녁이며 무교절은 115일부터 7일간이다. 유대인은 하루를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로 보았기 때문에 유월절과 무교절은 시간적으로 붙어 있다. 유월절 저녁이 되면 무교절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때때로 동일시된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계획한 일과 유월절 양 잡는 날은 일치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것은 구약의 예언과 예표가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처럼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죽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을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지시대로 성내에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한 남자를 만나 그 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자리를 갖춘 한 큰 다락방을 제공받아 마지막 유월절 식탁을 준비하였다. 그 준비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신적 지식의 영광이 드러났다.

[14-20]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열두](전통본문)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나를 기억하면서 이를 행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그의 열두 제자들과 함께 이 마지막 유월절 음식 들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그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속죄사역을 이루셔야 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장차 천국에서 기쁨을 충만히 누릴 것이다.

예수께서는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16, 18). 하나님의 나라는 두 단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신약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물론 그것은 아직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주 예수님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떡을 가져 감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그는 유월절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는 자신의 몸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실 것이다. 에베소서 5:2, “그는[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주께서는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성찬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의식을 행해야 한다. 이 의식의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을 기억하는 데 있다. 즉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고난 당하신 일을 기억하는 데 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

저녁 먹은 후 주께서는 잔도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는 유월절 식탁에서 마시는 포도즙이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자신이 내일 십자가 위에서 흘리실 피로 표현하셨고 그 피는 새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었고 그것이 율법이었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믿는 자들과 맺으신 언약이며 그것이 복음이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둘 다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피로 죄사함을 얻는다.

[21-23]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人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예수님을 배반할 자가 그 유월절 식탁 자리에 있었다. 주께서는 인자(人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큰 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의 죄는 큰 죄이었지만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는 일이 되었다.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선하고 악한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는 일들이 된다. 범죄의 책임은 분명히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시다. 악을 행하는 자는 그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와 죄악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사람의 악행이 하나님의 뜻을 실패케 하지는 못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웃을 죽이지 말고 이웃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지도 말자.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 없는 뜻이다. 더욱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벌을 받을 큰 악이다.

둘째로, 우리는 돈 욕심을 버리고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가룟 유다는 믿음 없음과 돈 욕심과 사탄의 시험으로 예수님을 배신하는 자가 되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또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한다(4:7). 우리는 돈 욕심을 버리고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그가 흘리신 피는 새 언약의 피이었고 우리는 그 보혈로 죄씻음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자. 또 그에게 항상 감사하고 우리의 온 마음과 몸과 힘과 생명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며 또 모든 죄를 멀리하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다시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그의 대속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떠나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이 다 이루어짐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만세 전에 작정하시고 다 이루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가룟 유다가 배신한 것도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되어졌다. 그의 악행이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악행에 대해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공의의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악한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선한 일을 위해 쓰임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24-46,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24-27]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이는]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있음이노라].

예수께서 조금 전에 자신이 한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암시하신 때에 제자들이 누가 크냐 다투었으니 참으로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다. 제자들의 문제점은 명예심과 교만을 버리지 못한 데 있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문제점이다. 교만은 사람 속에 가장 뿌리깊은 죄악이다. 그것은 마귀의 죄이다(딤전 3:6). 세상에서는 큰 자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지만, 교회에서는 큰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23:11-12).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주께서 자신을 속죄제물로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2:5-8).

[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과 미움을 당하셨으나,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과 함께하였다. 주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보상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나라를 그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실 것이며, 그들로 장차 충만한 즐거움과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주를 위해 일한 일꾼들은 자기의 일하는 대로 상을 받을 것이다(고전 3:7-8).

[31-34]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하였다. 그는 그때로부터 오늘날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는 베드로를 시험하였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다고 고백했으나 그는 그 날 밤 주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 그것은 큰 실수와 범죄일 것이다.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그렇게 범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의 활동은 제한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1:12; 2:6). 우리는 믿음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연약해서 실수하고 범죄할 수 있으나, 죄를 깨닫는 순간 그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버리고 그것을 떠나야 한다. 우리는 회개할 때 다른 이들을 굳세게 할 수 있다.

주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의 중보 기도는 오늘날에도 효력이 있다. 주께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신 내용은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생명줄이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음이 없으면 영생도 없다(3:36).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는(요일 5:4) 이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35-38]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열두 사도들은 주의 명령대로 전도의 길을 떠났을 때, 부족한 것이 없었다. 우리가 믿음 중심,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만 산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먹을것과 입을 것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6:33). 히브리서 13: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하였다. 물론, 제자들은 계속 기적적 보호와 공급을 체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는 많은 기적들에 관해 말하지만 기적주의는 아니다. 제자들에게는 궁핍과 핍박과 죽임 당함도 있을 것이다. 이 후에 제자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돈을 벌어야 하고 정당한 인간적 방편들을 무시하지 말고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은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또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메시아께서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을 것이 기록되어 있다(53:12). 그러나 여기에 대속(代贖)의 이치가 있었다.

[39-41]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께서는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다. 습관은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구별하여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교회의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는 습관 등은 좋은 습관이며 믿음의 성장에 유익하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께서는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이 세상에는 죄악된 일들과 마귀의 시험들이 많다. 이것들은 우리의 연약하고 부패한 본성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거역하고 범죄하게 만든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죄를 안 짓는 것이다. 기도는 바로 성도가 죄 짓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기도하는 자는 깨어 마귀의 시험을 대적하고 죄를 피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이다. 사도 바울도 종종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20:36; 3:15). 우리는 기도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성경은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많이 증거한다(시 3:4; 18:6; 27:7; 28:1; 30:2; 40:1; 29:12). 주께서는 우리가 끈질긴 강청의 기도와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다(눅 11:8; 18: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되, 시시때때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42-44]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예수께서는 인간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의 잔을 피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앞세우셨고 그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셨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보다 언제나 더 지혜로우시고 선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의 현실에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달게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8:28).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힘을 구해야 한다.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그의 힘을 도왔다. 예수께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고 땀은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힘쓰고 애써라는 원어는 고통 가운데서라는 뜻이다. 기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주께서는 고통 가운데서도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이 된다. 우리도 항상 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특히 고난과 환난의 날에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45-46]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해 잠든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주께서 잡히실 날 밤이었지만,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했다. 그들은 슬픔을 인하여 잠이 들고 말았다. 주를 진실히 믿고 따랐던 그들, 3년간이나 주님의 친 음성으로 은혜로운 교훈의 말씀을 받았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연약하였다. 인간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우리의 믿음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쳐 복종시키는 연습, 자기 부정과 순종의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겸손히 서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교만과 명예심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서로 섬길 수 있다. 주께서는 우리 중에 큰 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세상과 교회의 차이점이어야 한다. 세상의 정치가들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며 선전한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자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우리 주님 예수님 자신께서 친히 섬기는 자로 사셨다. 그는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속죄제물로 온전히 주셨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그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또 겸손히 서로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사탄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의 생명줄이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나,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한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믿음을 심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사탄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그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 힘입어 우리 자신의 믿음의 견고함을 위해 깨어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자신을 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힘을 주실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믿음으로 이길 뿐 아니라, 실제로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한다. 즉 우리는 시험에 넘어져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연약한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마음이 해이하면 죄에 떨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경말씀의 교훈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과 간섭하심을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고(눅 21:36)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하며(12:12)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살전 5:17)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6:18).

47-71, 잡히심, 심문 당하심

[47-48]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가룟 유다는 주께 입맞춤으로 그를 악한 무리에게 넘겼다. 그것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증거된 대로 그 무리와 약속한 군호’(sign)이었다(26:48; 14:44). 그는 그 무리에게 예수를 확인시켜 그를 잡게 하려고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거짓되고 위선적인 인사이었다. 3년간 주와 동행하며 그의 의롭고 선한 인격과 교훈과 행동을 친히 보았던 유다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배신하고 악한 유대 지도자들 편에 서서 예수를 체포하는 일에 앞장섰다.

[49-51]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요한복음은 검을 쓴 자가 시몬 베드로라고 증거한다(요 18:10). 그는 의롭고 선하신 주님을 잡는 무리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칼을 빼어 주님을 잡는 사람을 쳤다. 그것은 주께서 잡히셔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워 사형 선고를 받고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능욕과 채찍질을 당한 후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말씀하셨었다(20:18-19). 그는 잡히셔야 했고 죽으셔야 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의 가실 길이었다.

예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떨어진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 그는 자기를 잡는 자까지 긍휼히 여기셨고 그들의 악행을 참으셨다. 그는 천사들을 동원할 권세가 있으셨으나 그것을 쓰지 않으셨다(26:53). 도리어 그는 그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해주셨다. 여기에 그의 긍휼과 신적 능력이 다시 증거되었다.

[52-53]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어제까지 예수께서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셨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들은 무리 앞에서 그를 잡을 만큼 악하게 행동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양심은 그런 정도만큼 그들을 제재하였다. 그러나 이제 악한 자들의 때가 왔다. 어두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때가 왔다.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왔다. 그들의 양심은 통제력을 잃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한 죄를 짓고 있었다.

[54-60]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비자(婢子)[여종]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예수를 잡으러 왔던 자들은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갔고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다. 사람들은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고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다. 그는 장담했던 대로 주님 가까이에서 그와 함께 당당히 그를 따르지 못하였다.

한 여종이 베드로가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며 말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같은 내용을 증거한다(마 26:69; 14:66, 67). 요한복음에는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8:17). 베드로는 그 여종의 말을 즉시 부인하였다.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그를 보고 너도 그 당이라”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말했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마태복음에 보면, 베드로는 그때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26:72).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말하였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말하였다.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의하면, 이 세 번째에는 베드로가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26:74; 14:71).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때에 닭이 곧 울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사람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였고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그렇게 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것을 보면, 사람에게 행위의 의()라는 것은 없다. 모처럼 쌓은 것 같은 의도 한번의 실수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인간은 의가 없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왔었다. 그는 믿음이 없었고 중생치 못했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수는 믿음이 있고 중생한 자에게 있는 연약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본문 54절부터 62절까지에서, 전통본문 원문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이 7번 나온다(54, 55, 58, 60, 61, 61, 62).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의 연약한 본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후 담대한 증거자가 되었다.

[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주님과 같은 뜰에 있었던 것 같고 주께서는 베드로가 그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것을 들으셨던 것 같다. 특히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며 주님을 부인하는 목소리는 주님께도 들릴 만한 목소리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주님은 그의 하는 말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께서는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그의 눈길은 베드로의 눈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연약과 부족과 주께 대한 불신실함을 뉘우치는 회개의 통곡이었을 것이다.

[63-65]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얼굴을 때리고](전통본문)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지키는 사람들은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얼굴을 때리고 물었다.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또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런 희롱과 매맞음과 모욕을 당할 잘못을 한 적이 없으셨으나 무지하고 악한 자들은 그에게 그런 악을 행하였다. 인간은 참으로 악한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으셨다(53:7).

[66-68]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확인하고 믿으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 실상, 저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벌써부터 결심하고 있었다(눅 19:47-48; 20:19).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은 무지하고 악하였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8:3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함을 회개치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모양은 가고 있었으나 그의 아들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였다. 그들의 경건한 모양은 위선에 불과하였다.

[69-70]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예수께서는 법정 앞에서 자신에 대해 엄숙히 증언하셨다. 공회 앞에서 하신 그의 증언은 자신의 신적 인격과 메시아 신분에 관한 것이었다.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는 요청에 대해, 그는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는 말로 긍정하셨고,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증거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일찍이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의 내용이었다. 베드로는 “주는[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16:16).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신 참 선지자시요, 우리의 죄를 위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참 제사장이시요, 우리를 다스리시고 원수 마귀로부터 지키시는 참 왕이시다.

[71]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예수님은 그가 친히 증거한 바로 그 분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증거한 바로 그 분이 아니라면, 그는 선한 선생이 아니고 사기꾼이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엄숙한 재판석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께서 진실을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증거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를 위해 참 선지자와 참 제사장과 참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자. 예수께서는 공회 앞에서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다. 신약성경은 일차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요 20:30-31). 아버지께서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와 세 제자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친히 음성으로 그 사실을 증거하셨다. 예수께서 많은 불치의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과 포도주와 떡 기적들과 풍랑을 잔잔케 하신 것 등은 다 그의 신적 인격을 증거하였다. 또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은 그의 신적 인격의 최종적 확증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라고 말했다(17:31).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본받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욕과 조롱을 받으셨고 매를 맞으셨다. 그는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 고난을 각오하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또 그는 주님 때문에 비방과 핍박을 당하면 복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시며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다(5:11-12).

셋째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자. 베드로는 그 밤에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않다가 주님 잡히시는 때에 멀찍이 주를 따랐고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비겁하고 비굴하게 부인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10:32-33).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베드로처럼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욥기 31장 주석 강해설교] 욥-나는 의롭게 살았다(욥 31:1-40)

 

[욥기 31장 주석 강해설교] 욥-나는 의롭게 살았다(욥 31:1-40)

욥기 31장에서는 욥의 결백 주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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