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아리마대 요셉 설교문] 예수의 시체를 달라(마 27:57-61)

체데크 2020. 9. 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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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리마대 요셉 설교문 중에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는 말씀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달라(마 27:57-61)

 

명제: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한 것은 새 생명을 소망한 것이다.

목적: 현재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믿음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하셨습니다. 이미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죄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생애의 기간에 요셉의 아들로서 인생을 완전하게 사셨고 공생애의 기간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단 한 번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원한 죽음에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여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한 사람도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육적인 준비를 한 사람이라면 아리마대 요셉은 영적인 것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속죄를 이루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면서 육적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모두가 육적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제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리마대 요셉과 여인들만 있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죽음이 두려워 사라졌던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신앙과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을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나 혼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리마대 요셉처럼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여 새 생명을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여 새로운 생명의 소망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예수님이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3시가 됩니다. 이때는 금요일이며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에 들어가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해가 저물었다는 것은 안식일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토요일 저녁에 마치게 됩니다. 이때에 아리마대 출신인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공회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다리는 자라’ προσδεχομαι(프로스데코마이 4327) 영접하다, 기다리다, 풀려나기를 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사람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죄에서 풀려나 해방을 얻은 자가 된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주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다 보니 하나님께서 아리마대 요셉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미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천국이 아리마대 요셉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매일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이 땅에 구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 주님을 소망하면 나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처럼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매일같이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27: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아리마대 요셉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로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의 시체를 내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을 눈치 보면서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체를’ σωμα(소마 4983) 몸, 시체, 육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σωζω(소조 4982) 구원하다, 구원을 얻다, 보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몸을 달라고 했는데 이 몸은 바로 생명을 살릴 몸이며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영화의 구원을 이룰 몸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몸을 달라고 하는 직접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몸을 장사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정한 자들이 예수님의 몸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나의 믿음과 행동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몸을 통하여 새 생명의 소망을 가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도망을 쳤지만 아리마대 요셉은 과감하게 빌라도에게 나가 예수님의 몸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몸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부정한 독수리들이 모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검은 시체입니다.

‘주검이’ πτωμα(프토마 4430) 주검, 시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πιπτω(핍토 4098) 박살나다, 무너지다, 망하다, 잃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하여 죽은 시체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주님을 원망하면서 부정했던 자들이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저주를 받은 자들의 시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에게가 아니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광야 1세대들에게 40년 동안 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 한 자들에게가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체가’ κωλον(콜론 2966) 시체, 지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κολαζω(콜라조 2849) 벌주다, 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원망 불평하여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죽은 시체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이 땅에서 멸망을 받아 시체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 멋대로 인생을 살다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결국 시체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요구했던 예수님의 몸은 σωμα(소마)입니다. 이것은 다시 부활하여 생명을 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빌라도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πτωμα(프토마)도 아니요, κωλον(콜론)도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σωμα(소마)의 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지내신 몸을 무엇으로 달라고 하십니까? σωμα(소마)입니까? 영원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πτωμα(프토마)의 몸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영원히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자이며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주님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κωλον(콜론)의 몸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자신이 잘못하여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이 몸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몸을 요구할 때에 σωμα(소마)의 몸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주로 이 땅에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영광의 주로 오시는 주님을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σωμα(소마)의 믿음입니다. 내가 죽어도 사는 신앙이 바로 σωμα(소마)의 신앙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믿느냐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σωμα(소마)의 말씀입니다. 너도 죽으면 소마의 몸으로 될 것을 믿느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느냐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몸을 요구할 때에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나를 데리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주님의 프토마의 몸을 요구하거나 콜론의 몸을 요구하고 있다면 구원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의 소마의 몸을 소망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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