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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아도니야 설교문] “스스로 된 왕과 하나님께 선택된 왕”(왕상1:9, 1:45)

체데크 2020. 8. 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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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솔로몬과 아도니야의 설교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스스로 된 왕과 하나님께 선택된 왕”(왕상1:9, 1:45)

 

명제 : 스스로 왕이 된 자는 율법에 속한 자요, 선택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다.

목적 : 나는 율법에 속한 아도니야의 신앙인가? 아니면 복음에 속한 솔로몬의 신앙인가?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힘을 의지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아도니야와 솔로몬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다윗 왕을 통해서 정통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 구원을 얻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려야 합니다. 저와 목사님들은 스스로 목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목사가 된 것입니다.

 

아도니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왕상1: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아도니야는 학깃의 아들로서 다윗의 네 번째 아들입니다. 첫째는 암몬, 둘째는 길르압, 셋째는 압살롬입니다. 아도니야의 문제는 자신을 스스로 높여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왕이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높여서’ נשא(나사 5375 동사, 히트파엘, 분사능동, 남성, 단수) 교만하다, 높이다, 빼앗다, 노략하다, 탈취하다, 형벌 받다, 라는 뜻입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형인 암논과 압살롬이 죽자 마음에 교만함이 들어가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높여 하나님이 인정하지도 않은 왕의 자리를 탐하여 탈취하고 노략질한 것입니다. 결국 아도니야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왕의 자리를 빼앗아 형벌을 받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마음에 왕이 되겠다고 교만함이 들어가니 자신을 스스로 높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높이니 결과가 돌아온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와 같은 신앙은 율법에 빠져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을 높이고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사님들도 강단에서 율법을 전파하고 있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아도니야와 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인이라는 사실만을 깨달을 뿐입니다. 인간의 행실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아도니야가 자신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은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상1: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용모가 심히 준수하며 다윗에게 한 번도 책망을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의 아버지 다윗을 한 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다윗 앞에서 당당하며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왕의 자격이 있다고 교만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עצב(아차브 6087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남성, 3인칭, 단수) 몹시 슬퍼하다, 마음이나 가슴이 아파하다, 감정을 상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을 한 번도 마음이나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어 화를 내게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정도로 완벽하게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도니야의 나이가 대략 35세입니다. 이 나이까지 자신은 다윗을 화나게 하거나 마음에 근심하지 않도록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아도니야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또한 용모가 심히 준수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용모가 준수한 사람이 나오는데 사울 왕과 압살롬과 아도니야입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모는 준수하지만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반역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롬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아도니야와 압살롬과 사울과 같은 자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외모가 준수했다는 것은 외식 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고상한 척하지만 속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너희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도 다윗의 마음을 한 번도 아프게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율법을 범함으로 자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여 다윗을 욕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아도니야는 다윗의 얼굴에 모욕을 준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도니야처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런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 스스로 높이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때에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럼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장소가 어디입니까?

 

왕상1: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아도니야는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자신의 동생들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에느로겔’ עין רגל(엔로겔 5883) 정탐꾼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에느로겔은 예루살렘 근처의 샘이며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장소입니다. 아도니야가 에느로겔로 갔던 이유를 영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즉위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정탐꾼의 샘이라는 장소에서 왕의 즉위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마음에 초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탐꾼은 무슨 일을 합니까? 적을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은 다윗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탐꾼이 적을 감시하듯이 아도니야는 몰래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율법을 전하고 있다면 아도니야처럼 항상 마음에 불안함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얼마나 두렵고 괴롭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소헬렛’ זחלת(조헬레트 2120) 기는 것, 뱀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זחל(자할 2119) 기어가다, 두려워하다, 살금살금 걷다, 라는 뜻입니다. 아도니야가 소헬렛 바위 곁에서 왕의 즉위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아도니야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소헬렛 바위에 뜻은 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하나님 앞에서 뱀과 같이 교활하고 사악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왕이 되려고 하니 마음에 두려움이 있고 다윗과 솔로몬과 다른 신하들 몰래 살금살금 기어가서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만 초청하여 왕의 즉위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3: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아도니야와 같이 율법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을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다윗에게 말하면 인정해 줄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지금까지 다윗에게 한 번도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도니야의 착각입니다. 다윗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나의 행실이 준수하고 용모가 단정하다고 해서 구원이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며 교만한 행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도니야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고 다윗 몰래 왕이 되려고 살금살금 빠져나간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몰래 교회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 자신을 높인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도니야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상2: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솔로몬의 명령에 의하여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습니다. 자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높이고 왕이 되려고 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은 거룩하다고 말하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마지막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율법에 속한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에 속한 신앙을 해야 합니다.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높일 때에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솔로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솔로몬은 다윗과 하나님이 인정한 왕입니다.

 

왕상1:38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을 이끌고 다윗 왕의 노새에 인도하여 기혼으로 갔습니다.

 

‘태우고’ רכב(라카브 7392 와우접속사.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타다, 올라타다, 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노새에 올라타고 기혼으로 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노새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허락을 받아서 노새를 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며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혼으로 가기 위하여 다윗의 노새를 태운 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구원입니다. 아도니야와 같은 신앙은 자랑할 것이 많지만 솔로몬과 같은 신앙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의 법에서 나왔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윗의 노새에 탄 것도 자신이 탄 것이 아니라 타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솔로몬이 다윗 왕의 노새를 탄 것입니다. 우리가 목사가 된 것도 나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목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기혼’ גיהון(기혼 1521) 기혼이며 어근은 גיה(기아흐 1518) 터져 나오다, 쏟아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혼은 샘물이 나오는 곳입니다. 생수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곳입니다. 아도니야가 있었던 곳은 두려워 떨어서 망을 보는 샘물이었다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기혼은 생수가 터져 나오는 곳입니다. 솔로몬을 통해서 생수가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같은 신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인정하신 왕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아도니야의 신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신앙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신앙입니다. 나의 행위는 전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이제 저와 목사님들은 아도니야처럼 강단에서 율법을 전하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과 하나님 몰래 자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솔로몬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목사가 된 것입니다. 항상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들어가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목사님들은 솔로몬처럼 기혼 샘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교회의 강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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