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히스기야의 신앙 본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라”(왕하 18:4)
● 명제 : 겉 사람의 신앙이 아닌 속 사람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 목적 : 눈에 보이는 우상을 제거하고 신실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육체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과 화려한 것을 더 좋아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세상의 화려함을 따라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도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의 화려함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따라갑니다. 노아 시대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선택하여 결혼했습니다.
신앙인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선택했지 영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까요? 교회도 세상을 따라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육적인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을 따라가는 시대에 오직 복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신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됩니다.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신앙을 따라가서 영적으로 타락했던 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넓은 문으로 갈 때에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넓은 문은 멸망의 길이요 좁은 문은 생명의 길입니다. 세상이 발전해 가면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오직 생명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럼 이 시간 우리는 히스기야의 신앙을 통해서 나의 신앙도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왕하18: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성경은 기록하기를 히스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오세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십 구년간 다스렸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이며 스가리야의 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어머니인 아비라는 이름을 통해서 히스기야의 신앙을 발견해 보겠습니다.
‘아비’ אבי(아비 21) 아비이며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비는 아하스와 결혼하여 히스기야를 낳게 됩니다. 아하스의 신앙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하스는 우상의 길을 따라갔고 성전을 폐쇄하고 산당을 재건했습니다. 아비는 자신의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히스기야가 아버지인 아하스의 길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철저한 여호와 신앙의 길을 가르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의 길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너의 아버지라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쳤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아비를 보면서 자녀에게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가르쳐야 할 것을 배우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좋은 우상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신앙이 아니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겉 사람의 신앙이 아닌 속 사람의 신앙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왕하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히스기야가 어머니 아비로부터 여호와 신앙을 철저하게 배웠더니 자신의 아버지의 길로 가지 않고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다윗의 길로 가게 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동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맘몬에 많이 빠져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도 돈을 따라가는 신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교회는 더 크게 짓기 시작했고 교인은 재물과 학벌과 권력에 눈이 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육적인 눈이 열려 갈수록 영적인 눈은 멀어져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재물의 우상을 따라갈 때에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서 영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왕하18: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찢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백성들의 신앙을 위하여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찢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신앙을 따라가던 자들이 그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놋뱀을 우상화하고 있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에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놋뱀을 우상시하면서 분향하고 있습니다.
‘주상을 깨뜨리며’ שבר(샤바르 7665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깨뜨리다,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주물로 만든 형상을 깨뜨려 부수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주상을 섬기는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깨뜨려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와우접속사는 주물로 만들어진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깨부수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엘형은 주상을 깨뜨려버렸는데 완전하게 박살 내어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주상은 기둥을 말합니다. 사울도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념비를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열심히 기념비를 세우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완전히 부셔버리고 여호와 신앙을 따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서 율법의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율법적 신앙을 주상을 깨버리듯이 부셔버려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나타내는 믿음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부수고’ כתת(카타트 3807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치다, 빻다, 부수다, 분쇄하다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 시대까지 백성들은 모세가 만든 놋뱀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뱀이 치료의 신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놋뱀을 보고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살아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놋뱀을 우상화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이 우상시하는 놋뱀을 쳐서 부수고 분쇄하여 곱게 빻아 없애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사라지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서게 하는 신앙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는 백성들이 놋뱀을 더 이상 우상시하지 못하도록 온전하게 빻아서 사라지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피엘형은 사람들이 우상화시켰던 놋뱀을 부수고 깨뜨려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교회는 십자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놋뱀에 관심을 갖듯이 십자가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실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십자가가 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믿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눈에 보이는 신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왕하18: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하여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 당시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따라갔지만 히스기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계명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히스기야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떠나지 않고 주님이 명령하신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신앙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왕하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히스기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앙을 지키면서 살았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눈으로 보기에 힘 있고 능력 있는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시매’ היה(하야 1961 와우접속사.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이 일어나다, ~이 되다, ~이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임하셔서 함께하시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임하여 평생에 떠나지 않고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칼형은 여호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을 가질 때에 주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평생 동안 나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도와주시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재물의 우상을 따라갈 때에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따라가면 됩니다.
‘형통하였더라’ שכל(사칼 7919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지혜롭다, 총명하다,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 하시니 히스기야가 가는 곳마다 형통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능력이 있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혜를 주시고 총명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히필형은 히스기야가 가는 곳마다 형통하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히스기야의 평생에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형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고 지혜를 받아 형통의 복을 받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눈에 보이는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저가 배반하고’ מרד(마라드 4775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반역(배반)하다, 반항하다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그 당시 힘 있는 앗수르 왕을 배신하고 반역해버렸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눈에 보이는 우상과 같은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와우접속사는 히스기야가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앗수르 왕을 절대 섬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배반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앗수르 왕과 같은 눈에 보이는 능력의 세상 왕인 재물과 권력을 섬기지는 않습니까? 이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만 섬겨야 합니다. 재물의 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내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앙을 따라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내 평생에 나를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형통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율법적인 신앙을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는 신앙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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