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아스 왕 설교말씀의 믿음 행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아스의 믿음의 행위”(왕하13:14-19)
명제 :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행위를 보여주어야 했다.
목적 : 원죄에서 구원받은 자는 성화의 믿음의 행위를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
요아스는 북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이며 예후의 후손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세운 왕국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으며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런 신앙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뒤에 이어서 나오는 모든 왕들도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습니다. 요아스 왕도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범죄 하였으며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서 행하였습니다. 여로보암보다는 악하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악한 왕입니다.
이런 요아스 왕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국력이 쇠약해졌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의 압박이 문제였습니다. 아람 나라는 항상 북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공격하여 북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신앙의 지주 역할을 했던 엘리사가 죽을병에 걸리게 됩니다. 요아스는 엘리사를 찾아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들도 신앙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신앙의 멘토가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처럼 올바른 복음의 길로 인도해 줄 때에 신앙의 멘토를 따라서 십자가 복음의 길로 가면 됩니다.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요아스의 믿음의 행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아스가 취했던 행동이 어떤 행동이었으며 왜 엘리사를 화나게 만들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의 멘토가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면 엘리사처럼 신앙의 멘토자도 화가 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올바른 주님의 길로 들어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왕하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도 때가 되매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이 정확하게 어떤 병인지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내려와 자신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아스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는 엘리사가 죽는다고 하니 너무나 슬퍼서 찾아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엘리사는 북 이스라엘의 신앙의 멘토자였으며 요아스의 믿음의 아버지였습니다. 이런 자가 병이 들어 죽는다고 하니 앞날이 캄캄해졌기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요아스에게는 현재 엘리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쇠약해진 국가를 지켜줄 자가 엘리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려고 엘리사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가 아람에게 공격당하여 왕권이 빼앗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찾아왔는데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의 길에 살고 있으면서 나의 원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면서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처한 육적인 문제가 걱정이 되어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주님 앞에 서지는 않습니까? 요아스는 엘리사를 영적인 믿음의 아버지로 섬긴 것이 아니라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아버지로 섬겼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으로 믿고 섬겨야 합니다. 영적인 죄악의 문제들은 접어두고 육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잘못된 신앙과 믿음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왕하13: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말합니다.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요아스는 활과 화살들을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활과’ קשת(케쎄트 7198) 활, 무지개, 라는 뜻이며 קוש(코쉬 6983) 덫을 놓다, 미끼를 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활을 가져오라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요아스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 활은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무기입니다. 이 무기를 가지고 적을 죽일 수 있습니다. 요아스는 아람 군대들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아스에게 덫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을 잡을 때에 미끼를 놓듯이 아람 군대들을 잡을 수 있는 미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이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까요? 현재 아람 군대와 같은 사탄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원죄의 죄악들이 있습니다. 사망의 늪에 빠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활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활에는 무지개라는 뜻이 있습니다. 활이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무지개라는 뜻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고 홍수로 심판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무지개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무지개 언약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믿는 자는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이것이 올무가 되어 죽게 됩니다. 홍수 심판 이후 인간들은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거의 100년쯤에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무지개 언약을 믿지 못한 자들이 탑을 하늘에 쌓아 홍수가 나도 자신의 능력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자신들의 의로 하늘에 닿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무지개’라는 단어가 קשת(케쎄트)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다시는 원죄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로 바벨탑을 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활을 가지고 오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구원을 받고 다시는 원죄로 돌아가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활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화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사탄의 무리들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하13: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합니다.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왕이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습니다.
‘활을 잡으소서’ רכב(라카브 7392 동사, 히필,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타다, 올라타다, 잡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사가 활을 잡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전쟁에 나갈 때에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나갈 것을 말합니다. 활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직접 활을 잡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멘토자로서 걱정하지 말고 활을 잡으라고 말합니다.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요아스는 아람 군대로부터 승리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활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에게 문제는 아람 군대와 같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는 활을 잡아야 합니다. 이 활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는데 나귀의 작은 것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귀를 타시나니’라는 단어가 רכב(라카브)입니다. 우리는 나의 모든 원죄의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활을 잡아야 합니다. 이 복음의 활을 통해서 우리가 아람 군대와 같은 원죄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활을 잡지 않으면 원죄의 고통과 사망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왕의 손 위에 얹고’ שום(숨 7760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두다, 보존하다, 덮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활을 잡으라고 말해 놓고 활을 잡으니 즉시 자신의 손을 왕의 손 위에 덮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반드시 아람의 군대들을 하나님께서 무찔러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변함이 없는 약속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아스처럼 원죄의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주셔서 엘리야가 왕의 손에 얹듯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원죄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모든 원죄를 씻겨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주셨습니다.
왕하13: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손을 얹고 약속한 후에 동쪽 창을 열라고 합니다. 창이 열리자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화살을 쏘라고 합니다. 요아스가 화살을 쏘자 엘리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요아스가 아람 군대를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의미 없이 쓰여지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동쪽 창을 열라고 했던 의도가 무엇일까요? 동쪽은 아람 군대들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곳을 향하여 화살을 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동쪽 방향에 있는 아람 군대들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도 동쪽에 있는 창을 열어야 합니다.
‘창을’ חלון(할론 2474) 창, 창문, 이라는 뜻이며 חלל(할랄 2490) 꿰뚫다, 꿰찌르다, 더럽히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동쪽의 창은 십자가에 고통당하시고 나의 죄 때문에 더럽힘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해 줍니다. 요아스가 동쪽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는 것은 결국 사탄을 잡을 때는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을 잡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하여 예언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리스도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찔림은’ 이라는 단어가 חלל(할랄)입니다. 창문이라는 단어의 어근과 같습니다. 우리가 원죄의 사망과 싸워 승리하려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통당하신 주님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요아스도 아람 군대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구원의 화살’ תשועה(테슈아 8668) 구출, 구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요아스가 동쪽의 창문을 통해서 화살을 쏜 것은 아람 군대로부터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화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화살을 쏘면 나를 영원히 죽게 만들었던 원죄와 사탄으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죄악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다시는 원죄와 사망으로 돌아가지 않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원죄에서의 해방입니다. 요아스는 엘리사로부터 아람 군대를 반드시 무찌른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요아스의 행동에 대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데 성화 구원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왕하13: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엘리사는 왕에서 화살들을 집으라고 말합니다. 요아스가 곧 집으니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말하기를 땅을 치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요아스는 땅을 세 번 치고 그쳤습니다. 우리가 활은 무지개 언약처럼 복음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활은 영원한 십자가 언약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화살은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행하여할 성화 구원을 의미합니다.
‘화살’ חץ(헤츠 2671) 화살, 이라는 뜻이며 חצץ(하차츠 2686) 분리하다, 구별하다, 나누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단수를 사용했습니다. 원죄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과 분리되어 죄악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로부터 나누어져야 합니다. 화살은 복수를 사용함으로 자 범죄를 해결하는 성화 구원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내 마음대로 세상에서 자 범죄를 지으면서 살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땅을 치소서’ נכה(나카 5221 동사, 히필,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치다, 죽이다, 격파하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무조건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명령합니다. 땅을 친다는 행위는 요아스에게는 아람 군대들을 쳐서 죽이고 격파하여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어떤 의미도 말하지 않고 무조건 화살로 땅을 치라고 명령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원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는 이 땅에서 세상의 정욕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면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았으니 내 멋대로 자 범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우리는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구원받기 전에는 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들이 구하는 것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에 행동했던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 범죄를 짓지 말고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따라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세 번 치고’ נכה(나카 5221 와우접속사.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치다, 죽이다, 격파하다, 라는 뜻입니다. 요아스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즉시로 땅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세 번만 때리고 멈췄습니다. 요아스가 왜 멈췄을까요? 이미 엘리사로부터 아람 군대를 이긴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안도감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하니 시큰둥했습니다. 자신은 이미 받을 약속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땅을 때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때렸습니다. 마음에 우러나오지 않는 행위를 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원죄에서 해방되었다고 기고만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이 세상에서 성화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하는데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재 요아스의 행동이 이와 같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요아스는 어떻게 됩니까?
왕하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화를 내고 있습니다.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했더라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 번을 쳤기 때문에 아람 군대를 세 번만 이기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혼구원을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성화 구원을 이루어 나갈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상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만 치고 끝나게 됩니다.
왕하13: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요아스는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을 회복하게 됩니다. 요아스가 믿음으로 여러 번을 쳤더라면 아람 군대를 모두 무찌르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람 군대를 세 번만 이기고 끝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성화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자 범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내가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요아스가 땅을 세 번만 치니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원죄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는 세상의 정욕과 쾌락과 우상 숭배에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좋았던 것들과 작별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방인들이 구하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위하여 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면 이와 같이 큰 상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먼저는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했더니 하나님은 나에게 큰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할 것이니 이렇게 큰 상을 주세요. 라고 하는 이런 기도는 원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화살을 땅에 치라고 하는 것처럼 먼저는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행한 후에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성화의 믿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을 받아 누리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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