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1장 주일설교] 다윗의 후손 아비야 왕(마 1:7)

체데크 2021. 5.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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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장 주일설교 중에서 다윗의 후손 아비야 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족보에 올라온 왕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비야 왕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림자를 찾는다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주님을 깨닫게 됩니다. 아비야의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오늘도 아비야 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모형을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비야 אביה(아비야 29)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다.

 

명제 : 아비야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목적 : 구원받은 백성들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은 것이다.

 

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르호보암은 영적으로 은혜를 넓혀주시고 육적으로도 축복의 지경을 넓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르호보암은 분열왕국의 1대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연륜이 있는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청년들의 말을 들어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힘들게 백성들을 치리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북쪽으로 10개의 지파가 올라감으로 북이스라엘이 탄생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 해지며 형통하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 된 습성입니다. 르호보암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간의 죄악 된 인성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 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이 르호보암이 아들을 낳았는데 아비야라는 인물을 낳게 됩니다. 아비야도 구속사 계보에 올라간 인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야는 왕으로 등극하여 3년의 짧은 통치를 하게 됩니다. 이 왕의 평가는 악한 왕으로 평가가 됩니다.

 

대하 11:18-22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 그가 아들들 곧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을 낳았으며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웠으니 이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로 삼아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더라

구속사 계보에 올라가는 왕들 중에 육적으로 장자가 올라가는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아비야도 마찬가지로 육적으로는 네 번째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게 됩니다. 르호보암의 첫 번째 부인인 마할랏의 소생인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육적으로는 아비야의 형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비야를 영적계보에 올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속사 계보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속사 계보에 올라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비야는 르호보암 왕의 두 번째 부인의 아들로 태어나게 됩니다.

 

대하 11:20-21 그 후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장가들었더니 그가 아비야와 앗대와 시사와 슬로밋을 낳았더라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성경은 기록하기를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르호보암이 장가들어 아비야를 낳게 됩니다. 르호보암은 아내가 8명이며 첩이 60명을 거느렸고 아들이 28명이고 딸이 60명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첩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자녀들 중에 하나님은 아비야를 구속사 계보에 올려주신 것입니다. 아비야가 잘나서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왕이 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야를 구속의 반열에 올려주셨습니다.

 

아비야는 אביה(아비야 29) 아비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ב(아브 1) 아버지, 라는 뜻과 יה(야흐 3050) 여호와,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다, 라는 뜻입니다.

 

아비야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속사 계보에 올라갈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왕이 자신의 이름처럼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모시지 못하고 하나님을 버리게 됨으로 하나님은 아비야를 폐위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겨우 3년의 통치밖에 남 유다를 이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야는 성경에 다른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상 15:2-3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성경은 아비야의 다른 이름으로 아비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얌은 예루살렘에서 3년 동안 통치했는데 르호보암의 모든 죄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얌אבים(아비얌 38) 아비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ב(아브 1) 아버지, 라는 뜻과 ים(3220) 바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바다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비얌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얌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저질렀던 죄악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비야의 이름과 아비얌의 이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추적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어드렸던 분입니다. 아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헌신하셨던 것입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을 죽이는 저들의 영혼이 불쌍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부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에서 모두 이루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야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제대로 섬기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모든 뜻을 이루어드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오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사장들이 양을 선택하여 죽이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데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모든 뜻을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마지막 저녁에 드리는 제사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양 되시는 제물로 하나님께 죄악 된 몸으로 온전하게 번제의 제물이 되어 주셔서 영원한 속죄로 대속해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셨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에 죄악 된 몸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5:21-23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무도 심판하지 않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백성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말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며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말로 쉽게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인지 어떻게 믿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럼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징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징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설 수가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야 왕은 잘될수록 죄를 짓고 강성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자신의 아버지 르호보암이 지었던 죄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왕권의 유지가 3년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מוסר(무싸르 4148) 징계, 책망, 가르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סר(야싸르 3256) 잘못을 고치다, 훈련을 받다, 깨우치다, 연습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왜 징계를 주실까요? 매를 쳐서 고통을 주시려고 징계를 주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잘못을 고치시게 되는데 이 잘못을 고치려면 하루에 끝나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는데 최소한 60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죄를 지었던 인생에서 의로운 인생으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몸에 좋은 습관을 익히기 위하여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을 통하여 삶에서 계속적으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징계입니다.

 

야구선수들도 운동장에 나가기 위해 엄청난 배팅 연습을 하게 됩니다. 똑같은 배팅을 계속해서 연습하는 이유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배팅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나쁜 배팅은 버리고 좋은 배팅으로 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감독의 지시 하에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하여 피나는 연습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피나는 신앙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훈련, 기도의 훈련, 언어의 훈련, 인격의 훈련, 찬양의 훈련, 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좋은 신앙의 습관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징계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좋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평안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야김이 어려서부터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지 않는 것이 너의 습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습관은 여호와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눅 22:39-42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올라가셨는데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에서 습관은 매일매일 올라가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똑같은 좋은 습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쁜 습관들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하여 징계로서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처음에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좋은 습관이 몸에 익혀지면 더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비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공경하고 모시면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허락하셨을 때도 묵묵히 어린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림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렸고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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