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가복음 헬라어 성경말씀] 예수님 공생애 하나님나라 선포(막1:14-15)

체데크 2021. 8. 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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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헬라어 성경말씀 중에서 예수님 공생애 하나님 나라 선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공생애 사역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했습니다. 마지막 종말이 가까이 오면서 우리는 회개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선택받은 백성이 심판받지 않도록 회개하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 공생애 하나님 나라 선포(막 1:14-15)

 

14절 메타 데 토 파라도데나이 톤 이오안넨 엘덴 호 이에수스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케륏손 토 유앙겔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 투 데우

성 경: [막1:14]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갈릴리 사역의 시작]

󰃨 요한이 잡힌 후 - '잡힌'에 해당하는 '파라도데나이'는 제1 과거 수동형으로 '넘겨졌다', '양도되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세례 요한이 그를 시기하던 종교 지도자들과 헤롯의 군병들에 의해 무참히 체포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만일 마가가 어떤 역사적 순서보다 신학적인 면에 좀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면(사실 마가는 6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요한의 죽음을 자세히 언급한다). 여기서의 '잡힌'것은 곧 그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마가는 요한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에 든든한 고리를 엮어두고 있는 것이다. 즉 그 두 사람은 모두 불의한 자의 손에 의해 죽음으로써 그 최후를 맞는다. 따라서 예수의 갈릴리 사역이 막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십자가의 짙은 피 내음이 풍겨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의로운 요한이 잡혔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의 불의(不義)한 시대상을 반영해 준다. 예수는 나중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가 바로 그분이라고 평하셨다(11:11). 그러나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적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지 그의 위대성을 인정받고 들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마친 후 역사의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공히 예수의 공생애 시작은 세례 요한의 투옥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마 4:12;눅 3:19, 20). 즉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께서 요한의 사역이 종결된 후 당신의 공적 사역을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마가는 선구자 요한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마가는 본문을 통해 예수 생애에 있어서 공생애 초기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사실 본서의 기자 마가의 시각은 그리스도의 전체적 생애를 설명적으로 해설하려는 데 있지 않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날까지 인간들을 위해 어떻게 사역해 오셨는가를 부각시켜 종으로서의 예수의 진면목을 밝히려는데 집중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처럼 공생애 초기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을 생략하는 것은 그의 기본적인 저작 의도에 따른 결과라 할 것이다. 한편 광야 시험과 요한의 잡힌 사건 중간에 발생한 내용에 대해서는 요 1:35-4:42를 참조하라.

󰃨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 그리스도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오신 때는 세례 요한이 잡힌 사건과 관련이 있다(4:1-3, 43 참조).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사실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사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임을 알게 되셨을 때,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셨다(특히 가버나움을 중심함, 4:13). 예수께서는 자신이 유대지방에서 그처럼 크게 알려진다면 그것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강한 시기심을 자극하여 급기야는 그들의 증오심으로 말미암아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적절(適切)한 죽음의 순간이 오는 즉시 자기 목숨을 버리실 준비를 갖추고 계셨지만(요 10:11,15,18;13:1) 아직 그때(호 카이로스)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갈릴리 지방에는 예수께서 자신의 우리(cage) 안으로 인도해 들여야 할 잃은 양들이 많이 있었다(10:16).

󰃨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 내내 전파하신 메시지의 주내용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다른 사본에는 이를 '천국 복음'이라 일컫기도 한다(마 4:23). 여기서 '전파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뤼쏜'은 현재 능동태 분사형을 취하고 있어 그 행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복음의 원천(주어 소유격)이시며 더불어 복음의 대상(목적 소유격)이심을 알 수 있다. 즉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며, 또 이 복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로 복음은 '좋은 소식' 곧 인류가 들어볼 최고의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곧 그리스도로 인한 죄사함과 구원 및 영원한 복락을 그 주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후 5:17).

15절은 카이 레곤 호티 페플레로타이 호 카이로스 카이 엥기켄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메타노에이테 카이 피스튜에테 엔 토 유앙겔리오

성 경: [막1:15]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갈릴리 사역의 시작]

󰃨 때가 찼고 - 이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속사의 결정적인 시점을 맞았음을 시사해준다(4:4;1:9). 다시 말해 본문의 ''(카이로스)라는 말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변화되는 시기를 뜻하는 '크로노스'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호기(好期, opportunity), 즉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결정적 기회라는 뜻이다(R.C. Trench). 예수께서는 드디어 구원의 약속들을 성취하시고 그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으신 것이다. 이에 대해 슈바이처(Schweizer)는 말하기를 '그는 역사상 유래 없는 특정한 구원의 때를 성취하신 것이다'라고 묘사하였다. 특히 본문의 이 표현은 사 9:1,2의 말씀이 성취될 시간이 이르렀음을 알리는 엄숙한 포고령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단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초월적인 주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구약과 외경에는 직접 쓰이고 있지 않으나 그 사상은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다(15:18 ;29:10 ;43:15). 이런 사상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하나님의 왕권은 현재적 실재이면서(하나님은 현재 당신의 주권으로 통치하심) 더불어 종말적 완성임을 (하나님은 최후의 날 당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완전히 전멸시킬 것이다)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그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 관계가 상존함을 보게 된다. 즉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 초두에 그 나라가 '가까왔다'(15절)고 선포한 데 대해 바알세불 논쟁 시에는 그 나라가 '이미'임하였다고(마 12:28;눅 11:20) 말씀하신 바 있다.

즉 예수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지배가 이 땅에 임하신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의 또 다른 가르침에서는 그 나라가 여전히 미래적인 것임을 보게 된다(8:11;20:21). 실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tension) 관계의 해소는 어느 한쪽을 거부함으로써 이뤄지지는 않는다. 사실 그에 대한 양극단의 논리인 실현된 종말론은 그 나라의 미래성을, 철저 종말론은 그 나라의 현재성을 각각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한 개념이다( Bruce Metzger, The New Testament, p. 148 ). 어쨌든 본절에서는 그 나라의 도래가 대단히 강조되어 있다. 즉 그 나라는 공간적으로 (예수 안에서), 또 시간적으로(그 나라는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가까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가까워진 하나님 나라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Lane). 한편 마태복음에는 일반적으로 '천국'으로 되어 있으나(3:2;4:17;5:3, 10,19, 20) 마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라고 한 사실에(4:11, 26, 30;9:1, 47 )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의미상으로는 양자가 근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미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에서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음의 네 가지 개념들에 주목할 필여가 있다.

(1) 하나님의 왕권, 통치권 혹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주권이라는 개념이다(마 6:10;눅 17:21).(2) 완전한 구원, 곧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비롯되는 모든 영적이며 물질적인 축복의 개념이다(눅 18:30). (3) 교회, 곧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의미로 사용될 때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거의 동일한 것이다(16:18, 19). (4) 구속받은 우주, 곧 모든 영광으로 가득 찬 새 하늘과 새 땅의 개념이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최종적인 사역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의미한다(25:34). 

󰃨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이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전파한 메시지의 내용과 동일하다(4;3:2). 그러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의 복음은 동일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길 예비자였다. 여기서 '회개''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대면하고 있는 자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이자 구원의 핵심적 요소이다. 특히 이 중에서 '회개'는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요,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성자 예수와의 긴밀한 신뢰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양자 중 어느 하나의 결핍은 온전한 신앙 인격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한편 우리 말의 '회개하라'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지만, 헬라어 '메타노에이테'는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서 과거에 저지른 모든 악한 일에 대하여는 슬퍼하는 한편, 앞을 바라볼 것도 의미하고 있다. 즉 그것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 '마음과 생활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완전한 생활로의 전환'까지를 모두 내포한 포괄적 의미이다.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덧붙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회개의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믿으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메테'는 앞에 나온 '메타노에이테'와 동시적으로 작용을 하며 함께 역사한다(Lenski). 즉 진정한 회개에는 신앙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본문에 나타난 두 동사는 미완료 동사로서 계속적인 현재를 의미하며, 전자가 계속될 때 후자로 계속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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