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4장 주석강해설교]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사탄의 시험(마 4:1-25)

체데크 2021. 8. 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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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4장 주석 강해설교 중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사탄의 시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 동안 사탄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 사탄의 시험을 받으면서 모두 통과하신 후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합니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사탄의 시험(마 4:1-25)

 

1-11,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심

[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 . . .

그때에 예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그는 전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인류 역사의 실패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짐으로 시작되었다(3). 그러므로 이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의 사역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시작되는 것은 합당하였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는 존재한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신화나 상징적 존재가 아니고 실재하는 존재이다. 그는 인류 역사의 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함으로 온 세상을 죄와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사탄은 오늘도 교회를 부패시키고 속화시키고 택한 백성들을 미혹케 하려 한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현재 마귀와의 영적 전쟁 중에 있다. 에베소서 6:10-11,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4]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 .

예수께서는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다. 시험하는 자, 곧 마귀가 그에게 나아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성경말씀을 사용하셨다. 그는 세 번이나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시며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자신의 신적 권위를 사용하지도 않으셨고, 그 대신, 기록된 성경을 인용하셨다. 성경말씀은 실로 우리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며(119::105), 우리의 신앙생활에 정확 무오한 법칙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음성이다. 또 성경은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그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6:17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말씀은 마귀의 온갖 시험에 대한 대답이요 해결책이다.

여기에 성경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는 오늘도 우리와 우리의 교회를 향하여 도전하며 넘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거기에 대처할 우리의 방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성경의 정확한 지식이 주요한 방책이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적절히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귀의 교묘한 시험과 속임수를 격퇴할 수 있다. 마귀는 예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하였다. 마귀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존칭어가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자라는 개념이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분이라면 돌에게 명령하여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의미하는 바는 심지어 마귀도 알고 있는 바이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단순한 존칭어가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마귀는 예수님의 이 신분과 거기에 내포된 신적 속성과 능력을 빌미로 그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의 말대로 왜 한 번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는가? 그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그는 왜 그런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셨는가? 우선 그는 마귀의 말을 따라 행하실 이유가 없었다. 마귀가 해보라고 한다고 할 이유가 없으셨다. 우리는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실상 그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그의 신성을 사용한 적이 없으셨다. 말씀이신 그가 사람이 되신 것은 오직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마귀의 말대로 하지 않으신 더 큰 이유는 육신의 양식 문제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떡이 없으면 죽지만 그것은 육신의 죽임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몸만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10:28).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모든 가치를 두고 사는 것 같다. 그들은 영적 생활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고(19:23-24), 또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하였다(딤전 6:10). 돈이 전부인 줄 아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다. 떡이 없으면 육신의 생명을 해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의 영혼이다. 영혼은 범죄함으로 죽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는다. 영혼의 새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영혼의 가치를 알자.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그들의 영혼의 가치를 똑같이 귀하게 여기자.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영혼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자.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양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자.

[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 . . .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귀도 성경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마귀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거나 바르게 적용하지 못한다. 오늘날도 마귀의 종 된 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인용하지만,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바르게 적용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마귀가 성경을 잘못 인용하고 잘못 적용할 때 성경의 다른 말씀에 의해 반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전체의 빛 아래서 읽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딤후 3:16). 성경의 참 저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성경에는 통일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전체적 빛 아래서 부분들을 이해해야 하고 명확한 교훈의 빛 아래서 불명확한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성경을 전체적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성경말씀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같이 주를 시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고전 10:9).

또 기적을 추구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배고플 때에 먹고 피곤할 때에 쉬고 돈이 필요할 때에 일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신비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고전 1:22-23),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이다. 기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떨어지기 쉽다. 더욱이, 기적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신앙적 교만과 자랑과 명예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매우 경계해야 할 악한 일이다.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며 허풍과 과장이 심한 것 같다(벧후 2:18; 16).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교훈하신 성도의 바른 모습과 다르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적주의에 떨어져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을 감추고 은밀히 선한 일을 힘써야 한다.

[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 . . .

마귀는 또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천하 만국의 영광을 누구에게 줄 수 있는가? 성경에서 마귀가 이 세상 임금’(12:31) 또는 세상의 신’(고후 4:4)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능력과 권세 아래서 어느 정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비록 마귀에게 어느 정도 그런 권한이 주어졌다 할지라도,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 도대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 언제까지 영광스러운 것인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것도 그가 그것을 누리는 동안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다 불타버릴 것이다. 그것들은 참으로 전도서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그 모든 것의 범주에 든다. 이 세상과 그 모든 부귀 영광은 다 지나간다. 이사야 40:6-7,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더욱이, 마귀가 예수께 엎드려 절할지언정, 예수께서 그에게 엎드려 절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들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귀를 섬길 수 없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성삼위일체 하나님뿐이다. 십계명의 1, 2계명은 하나님만 섬기고 그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죄악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상의 부귀 영광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6:24).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교훈하였다(요일 2:15-17). 인생의 참 본분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 계명과 교훈을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 아래서도 마귀와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님만 높이고 섬기고 영화롭게 하며 그의 명령을 힘써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공급하실 것이다.

12-17, 가버나움에서 전도를 시작하심

[12-17]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 . . .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이사야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말하였다(9:1-2).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갈릴리 지방에서 그의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로써 죄와 슬픔의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비로소 전파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는 천국이 가까웠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내용은 세례 요한의 전파한 내용과 동일하였다. 가까웠다는 말은 완료시제로서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다. 구약 다니엘서에는 메시아의 시대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건설될 것이 예언되어 있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천국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다. 왕이신 메시아께서 오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천국은 씨와 같이 뿌려지고 있고 누룩처럼 퍼지고 있다(13). 예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12:28). 이 천국은 전도와 영혼 구원을 통해 계속 확장되고 성장된다. 그러나 영광의 천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미래에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린다(22:20). 회개의 절박성은 특히 천국이 가까웠다는 데 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죄인들은 회개하고 그를 영접하느냐, 아니면 회개치 않고 그를 거절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사람이 죄 가운데 살면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죄를 회개해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 회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 곧 불경건하고 부도덕하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죽음이요 불행이었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생명이요 행복이다. 회개는 죄인이 그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미워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만 한다.

18-22, 제자를 부르심

[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 . . . .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이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 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 그들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다. 부름을 받은 그들은 다 어부들이었다. 주께서는 이 평범한 어부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전도자로 부르셨다. 주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번째 주요한 일은 제자를 삼는 일, 곧 전도자를 부르신 일이었다. 이 사실은 전도의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 전도자를 불러 훈련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인다. 전도는 하나님의 가장 중대한 일이며,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도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다(1:38).

예수께서는 전도자를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부름을 받은 그 어부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은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죄인의 영혼 구원이 전도자의 임무이며 전도의 목표다. 주께서는 나를 따르라는 초청의 말로 전도자를 부르셨다. 전도자는 주의 부르심을 통해 세워진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전도자들을 부르신다. 그러나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단순한 초청 이상이다. 그것은 주의하시는 일을 보고 배우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전도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 즉 주님의 발자취를 보고 배우는 자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전도자로서 준비되고 훈련되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부르시는 그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부르신 그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렇게 응답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전도의 가치, 전도자의 가치를 참으로 알고 그 일을 사모하자. 또 전도의 일을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치자.

23-25, 예수께서 하신 일

[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 . .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세 가지 일을 하셨다. 첫째로, 그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을 가르치셨다. 둘째로, 그는 천국 복음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전파하셨다. 셋째로, 그는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그에게는 병자들을 온전하게 고치시는 신적 능력이 있었고 또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셨으므로, 그는 병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고 다 고쳐 주신 것이다. 그의 소문은 온 수리아에 퍼졌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자 그는 그들을 다 고쳐주셨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를 따랐다. 오늘날 교회들과 목사들도 주님의 사역과 같은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모든 성경 즉 하나님의 모든 교리와 생활 교훈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 대한 바르고 충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전하는 일이다. 이것은 교회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곧 교회의 사명이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 안의 병환자와 가난한 자와 어려운 일 당한 자를 돌아보는 일을 해야 한다. 비록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병고치는 능력은 없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가지셨던 사랑과 긍휼의 심정으로 병환자나 가난한 자나 어려운 일 당한 자를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도 교회는 이 세 가지 기능을 잘 수행해야 하고 우리는 이 일들을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

[히브리어성경 시편 말씀] 하나님으로 인한 의인의 승리(시 18: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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